한국어 '비장'과 일본어 「悲壮」
제가 이 '비장(悲壯)이라는 한자어의 쓰임새도 한국과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알게 된 건 어떤 애니에서 아래와 같은 대사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肉親が刺されたというのに、この子達には、悲壮感も不安感もないね。상황 설명을 하자면 등장인물 중 하나가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해서 경찰이 조사를 위해 얘 집에 가서 보니 얘 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별일 아니라는 듯 "그런 건 침 바르면 나아요"라고 하니까 경찰이 내심 놀라면서 위와 같이 속으로 말한 겁니다. 근데 우리는 이런 때 '비장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죠? 아마도? 사실 어떤 한자어의 뜻을 사전을 통해 확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여러 문맥에서 쓰인 그 한자어의 뉘앙스를 지레짐작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오용이 정착되기도 하고요. 제 블로그에서도 소개했던 아련하다, 전전긍긍, 적재적소 등등 많은 오용 사례가 이런 이유로 발생하는 거겠죠.이 '비장'도 그런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비장'의 '비'가 '비극'이라고 할 때의 悲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라고 봅니다. 저 역시 옛날에는 그랬었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한국에선 예컨대 '비장한 표정'이라고 하면 뭔가 심각하고, 진지하고, 결의에 찬 표정이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물론 제대로 그 뜻을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따라서 국어사전에 나온 아래 예문들에 쓰인 '비장'에서 '슬픔'이라는 뉘앙스를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봅니다. 형용사 1. 슬프면서도 그 감정을 억눌러 씩씩하고 장하다. 비장한 결심. 그는 세계 제일이 아니면 죽는다는 비장한 각오로 업무를 시작했다. 강 대위는 비장한 표정으로 땅바닥에 지도를 펴 놓고 무전기로 작전 지시를 내렸다. 출처 <<이원규, 훈장과 굴레>> 오빠의 태도도 평소의 심약한 오빠답지 않게 강경하고 어딘지 비장해 보였다. 출처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런데 일본은 한자를 쓰니까 모든 일본인이 이 '비장'이라는 한자어는 기본적으로 '슬픔'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그리고 며칠 전에 하이네이티브 사이트에 일본인이 질문을 올렸습니다. 웹튠에서 이 '비장'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 뜻이 뭐냐고 아래와 같이 말이죠. 웹툰을 보다가 “비장..”이란 표현이 나왔는데 일본어로 무슨 뜻인가요? 심각한 장면에서 나왔고 의태어같은 느낌이에요그런데 어떤 한국인이 '비장한 눈빛', '비장한 최후를 맞이하다'라고 할 때의 悲壮가 아닐까 한다고 답변을 달았는데, 그 일본인이 의아했는지 아래와 같이 다시 묻습니다.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장면은 무슨 문제가 생겼는데 해결 방법이 최악의 방법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주인공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네”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이 경우도 ”悲壮“로 쓰이나요?이 일본인이 생각하기엔 일본에선 悲壮라는 한자어를 이런 식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의아해서 재차 질문을 한 것이죠. 그랬더니 다른 한국인이 아래와 같이 답변을 했는데 이 일본인은 2번 뜻이 맞을 거 같다고 아래처럼 말합니다.자기 생각엔 悲壮은 도저히 아닌 거 같고, 엉뚱한 2번 뜻이 맞는 거 같다고 말을 한 것이죠. 하지만 이 '비장'은 祕藏이죠. 그래서 제가 아래와 같이 답을 했습니다.이렇듯 일본인들은 이 '비장'이라는 한자어를기본적으로 '슬픔'이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아래는 '비장감'의 뜻을 묻는 외국 사람의 질문에 일본인이 답한 내용입니다.그리고 아래는 「君は悲壮感がなくていいなぁ。」가 무슨 뜻이냐는 외국인의 질문에 일본인이 영어로 답한 내용입니다. '비극적 분위기/느낌'이라는 거죠. I envy you, because you don't have a tragic atmosphere!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본 한자어 '비장'은 기본적으로 '슬픔'이라는 뉘앙스 플러스 '결연한 각오'라는 뉘앙스로 쓰인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