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手イ・ジサンが「語る」、3・11大震災とウリハッキョ | トンポ・トンネ 日々イモジョモ

トンポ・トンネ 日々イモジョモ

ブログの説明を入力します。

ソウル発「統一ニュース」(5・31)より転載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동백꽃처럼만 붉어라 너희들의 축구화
<칼럼> 이지상 성공회대 외래교수

 

도쿄 조선중고급학교에 갔었다. 동백꽃 붉은 기운이 한창 물오를 때였으니 몇 년 전 겨울 이었을 게다. 특별한 일정이나 목적이 있었건 것은 아니었다. 그해 재일 동포 신년 해오름식에 초대받아 공연을 했었고 동포들이 건네주는 술잔의 양 만큼 진한 민족의 정을 쌓아올린 다음날, 누가 봐도 “간밤에 꽤나 걸판지게 노셨군요”라고 물어볼 만큼 나는 초췌해있었다. 공식 일정이었다면 애초 사양했을 조선학교 방문은 간밤의 걸판 멤버였던 도쿄 조선중고고급학교(도쿄 조교) 음악선생님의 즉흥적 권유에 의해서 즉흥적으로 이루어 졌다.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의 건물들. 깨끗하게 정리된 교실. 다소 산만하게 그러나 때론 진지하게 수업하는 교원과 학생들, 이역만리 타국에서의 유랑을 민족교육이라는 지렛대 하나로 꿋꿋이 헤쳐 나가는 그들의 일분 일초는 추위가 더할수록 붉어지는 동백을 닮았다. 학교정문을 휘둘러 굵게 자란 동백나무를 오가며 매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엔 반 백년 넘게 우리말 우리글을 지켜온 재일 조선인의 자부심이 한껏 담겨있다. “나는 조선의 스트라이커”라고 외치는 독일 분데스리가 보쿰의 정대세나 국내프로리그 수원과 부산에서 활약했던 안영학의 눈빛도 그와 다르지 않다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축구는 일상이다. 이담에 커서 꼭 축구선수가 되려는 건 아니다. 해방후 학교가 처음 생길 무렵부터 지금까지 일본 내 조선인의 차별이 구체화 될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학교에 대한 테러협박, 여학생들의 교복 찢기와 욕설, 일본 학생들의 집단 폭행 등에 맞서 남학생들은 공부보다 싸움에 앞장서야 했고 그들의 분(憤)에 넘치는 혈기를 다듬어 주기위해 학교에서는 축구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도쿄 조고의 잘 다듬어진 인조 잔디 구장에서 축구연습을 했다. 패스와 볼 트래핑, 슈팅으로 이어지는 훈련코스를 넘나드는 학생들의 기본기가 아주 탄탄하다. 두 패로 갈라 경기를 치룰 때는 어느 아마추어 경기에서도 볼 수 없는 조직력과 현란한 개인기가 축구광인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도쿄 조고 축구부의 수준이 대단하군요.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안내하는 선생님께 넌지시 치사를 건넸더니 돌아오는 답이 의외다 “이 학생들은 학교대표가 아닙니다. 이 아이들은 체육수업중이예요”. 학교대표선수도 아닌 학생들이 이렇게 축구를 잘한단 말인가? 뜀박질이 서툴다던가. 헛발질에 공 무서워 뒷걸음질 치는 아이 하나 없이 죄다 선수 포스가 철철 넘치는데 그냥 체육수업 중이란다. 깜짝 놀라 왜 이렇게 축구를 잘하는가를 물었더니 “남자는 축구 여자는 무용”.

도쿄 조고 대표선수들의 실력은 2006년 전 일본 고교 축구선수권 대회 8강의 신화를 이룬 오사카 조고보다도 한수 위라고 했다. 다만 도쿄에 수준 높은 팀이 몰려있으니 예선 통과가 쉽지 않아 전국대회를 못 나갈 뿐 이라고.

지난 5월 29일 새벽 세기의 축구대결이 펼쳐졌다. 2011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불가촉 천민의 땅 카탈루니아에서 울분의 응원을 먹고 자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가난한 노동자들의 정서적 위안처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 국내뿐만 아니라 전 아시아적으로 관심을 모으게 된 이 경기의 중심은 단연코 박지성 이었다. 오사카 초급학교에 다니는 상호는 박지성이 자신의 우상이라고 했고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송현진 전 교장선생도 박지성을 모르는 동포 들은 없을 정도라고 했다.

달빛에 기대어 서로의 칼날을 맞세우다가 상대방 호흡의 빈틈을 여지없이 파고들어 승부를 가르는 무인의 단 일초식 처럼 축구는 이렇게 하는 것 이라는 걸 유감없이 보여준 바르셀로나의 숨막히는 결정력에 박지성의 맨유는 대포알을 막지 못하는 방패신세처럼 무릎을 꿇었지만 그 새벽 캔 맥주 몇 개를 비우며 경기를 지켜보는 나의 관심사는 정작 딴 데 있었다. “거기에도 축구장이 있는데 거기에도 축구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은 지금 이 흥미로운 세기의 경기를 보고 있을까?”

큰 지진이 있었다. 2011년 3월 11일. 토호쿠(東北)지역. 진도 9.0. 후쿠시마 원전 파괴 방사능 유출. 희생자와 이재민은 얼마나 되는지 모름. 쓰나미가 휩쓸고 간 폐허의 땅.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의 대 지진으로 인해 도쿄 조고 강당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토호쿠 지역의 중심 센다이조선학교의 중급생들은 사방의 벽에 금이 가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도 초급생들의 교실로 뛰어가 동생들을 온몸으로 껴안고 지진을 버텼다.

실로 재일 조선인들이 지진피해 지역 동포들을 돕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그들은 7.0의 지진으로 흔들리는 도쿄보다 더 흔들리는 쓰나미 지역의 동포들을 지원하기위해 급하게 모은 성금으로 생필품을 사고 끊어진 도로를 우회하고 위험지역 접근금지 표지판도 무시한 채 밤을 새워 달렸다. 10미터가 넘는 대형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고 이어 방사능 경보로 온 마을이 텅텅 빈 그때도 후쿠시마 조선학교의 교사와 학생 15명은 학교를 지켰다. 학교마저 비우면 언제 학교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당장은 죽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보다 우선한 것이다.

결국 이 학교는 폐쇄되고 인근 니이가타로 이전해야 한다. 센다이의 토호쿠 조선학교는 무너진 강당 대신에 좁은 식당에서 졸업식을 진행했어야 했다. 갓 입학한 어린 초급학교생 들은 갈라진 벽을 임시로 메운 교실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

당연히 거기에도 운동장이 있었다. 정대세의 싸인을 머리맡에 두고 안영학을 꿈꾸며 박지성의 골 세레머니를 흉내 내는 아이들이 운동장의 주인이었지만 지금은 지진으로 갈라지고 방사능으로 오염된 주인 없는 땅이 되었다.

지진피해조선학교와 함께하는 몽당연필(www.mongdang.org 공동대표 권해효.안치환.이지상)을 만들고 한달 반 “형~드디어 후원모금액이 5천만원을 넘었어요”라는 문자를 남기고 홀연히 후쿠시마로 떠난 집행위원장 김명준(장편다큐 우리학교 감독)은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의 10배나 넘는 땅에서 동포들의 소식을 전해온다.

무너진 교실과 강당, 갈라진 운동장 위에서도 여전히 힘차게 “아야어여”를 외치고 “대지는 흔들려도 웃으며 가자”를 구호 삼는 조선학교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만큼 아이들의 조국 어머니의 땅에 사는 나에게는 눈물이 된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는 조선사람 우리의 동무가 기다립니다. 우리의 학교가 기다립니다. 기다립니다.”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2시간도 넘는 통학 길에 오르면서도 서로를 다독이는 조선학교 아이들의 합창을 들으면 지금은 운동장을 잃어버려 맘껏 뛰지 못하고 축구화만 만지작거리는 고사리 손이 서럽다.

나를 위한 나의 욕심은 나의 몸을 갉아먹지만 타인을 위한 나의 욕심은 나의 뇌를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애간장이 탄다. 나의 뇌가 커질 수는 있으나 성과가 없을까봐. 일본의 국회조차도 지진 피해를 입은 조선인들 시설에 복구비의 반액을 지원하기로 결의 했다는데 그들의 고향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할까봐. 나보다 축구를 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나보다 통일을 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길까봐 두렵다. 추위가 더할수록 더 붉어진다고 했다 동백꽃. 그러니 그 말에 위안삼아 나는 조금만 더 두려워지려 한다.

몇 년 뒤 지진피해가 완전히 복구된 조선학교에 일일교사로 간다면 그때 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눌 것이다. “너희들 그때 축구 하고 싶어 어떻게 견디었니?” “선생니~임 그때 아버지 고향 분들의 도움으로 공 잘 차고 있어요 한번 같이 뛰어 보실래요?” “어라? 좋다 이놈들 한번 떠볼까...”

 
 
이지상 (가수, 성공회대 외래교수)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는 노래하는 사람
청년문예운동의 시기를 거쳐 노래마을의 음악감독.민족음악인 협회 연주분과장을 지냈고, 다수의 드라마.연극.독립영화 음악을 만들었으며 98년 1집 "사람이 사는마을"2000년2집"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2002년3집"위로하다.위로받다"2006년 4집 "기억과 상상"등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2010년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를 출간했다.

현재 시노래 운동"나팔꽃"의 동인으로 깊이있는 메시지를 통해 삶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음악을 지향하고있으며 성공회대학교에서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를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