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々少数派 -3ページ目

8・15在福岡韓国領事館前“ベトナム反戦像”設置闘争を終え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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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昨日8月15日の福岡・韓国領事館前“ベトナム反戦像”設置闘争については、大失敗だったとも大成功だったとも思う。
 まず大失敗の面について云うと、要は「九州ファシスト党〈我々団〉」の力量不足である。この闘争はせめて50人、できれば100人以上が結集しないとインパクトがなく、インパクトがなければ韓国で報道されず、韓国で報道されないんだったらやる意味がない。
 私が直前まで、学生向け「教養強化合宿」とか、あるいは刊行が迫っている新著『良いテロリストのための教科書』(青林堂・9月9日発売)の校正とか、今回の闘争と無関係な諸々でほとんど身動きがとれず、「こういうことをやるぞ」とツイッターで告知したのは本番3日前のことだった。私が音頭をとらなきゃいけない、つまり政治結社なのにこういう政治的な活動の指揮を委ねられるメンバーがいないという意味でも我々団の組織的力量はオハナシにならないし、また仮に例えば1ヶ月ぐらい前から呼びかけを始めていたところで、当日集まったメンバーはせいぜい昨日の倍ぐらい、たかだか20名ほどであろうという、結成から10数年を経ての地元福岡における影響力・動員力の面でもやはりオハナシにならない。
 ベトナム反戦をモチーフとした“像”そのものについて、ネット上ではかなり不評だったが、私としてはそれほど悪い出来ではなかったと思っている。ひとつには、そもそも私は“ショボくてバカバカしい”ものを期待していたということもある。それに写真や動画をとおしてではなく、実物をナマで見るとまた印象が違うんじゃないかという気もする。ショボいことはショボいんだが、過激派学生が今にも火炎瓶を投擲しようとしている勢いは感じられる造形なのである(胸が向いているほうではなく、火炎瓶を持った腕と反対側の方角に向けて投擲しようとしている、というのが写真とかからは伝わりにくいと思う)。
 ただ難点は材質である。持ち運びを考慮して軽いグニャグニャの素材で作られており、自立しない。例えば棒で支えて高々と掲げても形が崩れず、それを今回のようにイーゼルに立てかけるのではなく、1メートルぐらいの台座の上に固定して設置することができれば、あれはかなり出来のいい像だと思うし、これほど“不評”でもなかっただろう。
 大成功だと思ったのは、当日フタを開けてみると、我々団メンバーやその日常的なシンパ以外に、まあもちろん普段から交友関係のある面々であるとはいえ、左右からそれぞれ2、3人ずつが駆けつけてくれていたことである。期待はしていたとはいえ、やっぱりこの運動は左右から乗ることが可能なものであることを確認できた。
 で、昨日ひととおりやり終えた時点では、今後もちょくちょく繰り返そうと思っていたのだが、前記のとおり現時点での我々団の組織的力量を考えると、意味ある展開は無理である。
 本来なら、何十人何百人で登場して像を設置し、その後も数名ずつでシフトを組んで24時間態勢で像を守り続け、撤収しない。一時期の“反原発テント”みたいなものだ。じっさい韓国ではそういうふうに慰安婦像が次々と設置されてるんであって、こっちもやれなきゃいけない。とりあえず1週間ぐらい守り続けられれば韓国でも騒がれ始めるだろう。自民党政府は韓国に「慰安婦像を撤去しろ」と要求しているのだから、「そっちが撤去すればこっちも撤去させる」と騒ぎを利用できるんであって、警察も官邸の最高レベルの意向を“忖度”して、強硬な弾圧はしてこないかもしれない(というか、してきたらアホ国家である)。
 こっちは一貫して“自虐史観の輸出”を掲げるべきである。“反韓・嫌韓”では左からは乗ってこられない。例えばこっちもベトナム人少女の像なんかを設置して、韓国側と同レベルになってはいけない。“被害”を強調する像ではなく、自国政府の加害行為に抗議する運動を象徴する像であることが重要なのだ。中国なども含めて(もちろん日本も含めて)東アジア諸国がそれぞれの歴史を自己批判的に検証し始めてやっと、本来なら欧米列強にどう対抗すべきだったかを共に考える緒につくことができる。我々が目指しているのはそういうことであって、単に韓国の“反日”世論に直対応することではない。そのように目標を高く設定することで、左右共闘の運動も可能となるのである。
 が、繰り返すように九州ファシスト党・我々団には現時点でそのような運動を持続的に担う力量がない。
 もう1度だけ、今度は東京でやろうかと思う。8月末から9月前半にかけて私はまた東京に滞在する予定なので、その期間に韓国大使館前でどうだろうか。まだはっきり日程を決めているわけではないが、“欧米列強への抵抗”というモチーフも考え合わせれば、例えば“9・11”でもいい。
 東京なら、もしかしたら何十人かは集まってくれるかもしれない。いきなりその日から24時間態勢で像を守り始めるのは無理かもしれないが、その日とりあえず集まった面々で今後どうするか作戦を練ればいいと思う。私はすぐまた九州に帰るんだし、あとは任せる。
 参加したい人は warewaredan@mail.goo.ne.jp にメールを。
 具体的な日程、声明文をまた書き直すか今回のものを使い回すか、像も新しく作り直すか今回のものを(できれば自立するよう改造して)使い回すか、その他もろもろ、できればなるべく早い段階で東京の面々が主導する形で謀略を練って、当日に臨みたい。
 

8·15 재 후쿠오카 한국 영사관 앞"베트남 반전상"설치에 관한 한국을 향한 성명

  여러분들이 한국 내 일본 대사관·영사관 앞에 이른바"종군 위안부상(従軍慰安婦像)"을 설치하고 있는 것을 염두에, 우리는 2017년 8월 15일, 우리가 사는 지역(후쿠오카시)에 있는 한국 영사관 앞 길에 "베트남 반전상"을 설치하는 것을 시도합니다(일본에는 언론 자유가 없으므로 실제로는 설치할 수 없다고 예상하고 있지만).

  이 시도는 여러분들의 "종군 위안부상(従軍 慰安婦像)"에 대항(対抗)하고나 항의(抗議)할려는 의도는(전혀 없진 않지만)희박(稀薄)하고, 진정한 의도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융성하고 있는" 반한(反韓), 혐한(嫌韓)"의 단체·운동 상황에 대해서는 꽤 상세하게 알려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본 국내의 이른바"자학 사관(自虐 史観)"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여러분들에게 알려지고 있습니까?

  "자학 사관(自虐 史観)"은 일본의 역사학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자국의 역사를 비굴한까지 비판적으로 그리는 성향'에 대해서, "반한(反韓)"과 "반중(反中)"을 내세우는 일본의 자칭(自称)"애국자"들이 붙인 꼬리표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인상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오히려 이"자학 사관(自虐 史観)"파가 압도적으로 주류이었고, 이에 대항하는 형태로 90년대 후반 이후, "반한(反韓)·반중(反中)"을 내세우는 소수파(少数派) 여러 운동들이 표면적으로 눈에 띄게 되어, 눈에 띄기 때문에 소수파(少数派)인데도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학 사관(自虐 史観)"에서는 당연히 근대에서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인근 국가(近隣 国家)에 대해서 이룬 일련의 침략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비판적으로 묘사됩니다만, 사실 일본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역사 교육에서도 이런"자학 사관(自虐 史観)"적인 것이 주류(主流)이고, 학교 교육에서 사용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반한(反韓)·반중(反中)"을 내세우는 자칭(自称)"애국자" 들이 90년대 후반 이후 "비(非) 자학 사관(自虐 史観)"의 "애국적"인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하려고 하고있습니다. 그 일은 여러분들에게도 잘 전해지고있습니다만, 그들의 교과서의 학교 현장 채용율(採用率)은 현재도 몇%정도입니다.

  "자학 사관(自虐 史観)"는 일본 특유한 것이 아니고, 선진국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경향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도 60년대 말 이후, 그동안 미국이 원주민과 흑인에 얼마나 심한 행동을 거듭했는가를 반성적으로 검증하는 역사관이 주류가 되어 왔고, 그것은 근대사에서 비(非) 유럽 지역을 침략·수탈하고 온 과거를 가진 유럽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들 선진국의 "자학 사관(自虐 史観)"은 바로 60년대 후반의 "베트남 반전(反戦)"운동을 계기로 등장하고, 확산되며, 이윽고 정착(定着)한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베트남 반전(反戦)" 예전의 일본인 반전(反戦) 운동은 지배자의 제멋대로인 사정으로 비참한 전쟁에 다시 휘말리는 것은 싫다는 "피해자 시점"에서의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부정의(不正義)한 전쟁에 협력하는 일본은 베트남에 대해서는 가해자(加害者)가 아니냐"는 문제 의식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반전(反戦) 운동은 "가해자의 자기 비판(自己 批判)"의 측면을 강하게 갖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延長線上)에 곧 원래 제2차 대전에서 일본은 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인근 국가(近隣 国家)에 대해서는 가해자였지 않은가, 특히 조선에 대해서는 메이지 유신(明治 維新) 이후 계속 가해자로서 존재하지 않았는가, 더 뒤돌아보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출병(朝鮮出兵)도 고대의 백강 전투(白江戰鬪)도 침략이고, 조선에 대해서뿐 아니라 류큐(琉球)와 아이누(アイヌ)라는 일본 열도 내의 이민족에 대해서도……이러한 본격적(本格的)이고 종합적(総合的)인 "자학 사관(自虐 史観)"가 빠르게 형성되면서 적어도 아카데미즘(academism) 세계에서는 주류가 되어, 당연히 아카데미샨(academician)들이 주도하는 학교 교육에도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이제"자학 사관(自虐 史観)"은 선진국 공통의 일종의 "기호"가 되고 있습니다.

  나부끼고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적어도 일본에 전해지는 범위에서는 여러분에게는 아직"자학 사관(自虐 史観)"의 "소양"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항상"피해자"이고, 나쁜 것은 일본이다, 중국이다, 러시아다,,라고 하는 자국 중심주의 사관(自国中心主義史観), 즉 "자존 사관(自尊史観)"은 발전 도상(発展途上)의 후진국(後進国)에 어울린 것입니다. 그것으로부터 탈피(脱却)하지 않은 데는 여러분의 나라는 언제까지나 진정한 선진국(先進国)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 같은 2류 선진국에서도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죠.

  이번에, 한국 영사관(韓国領事館) 앞에 "베트남 반전상(反戦像)"의 설치를 시도하는 우리 그룹은 " 반한(反韓)·혐한(嫌韓)"을 내세우는 사람들과도 약간의 친분(親交)은 가지면서, 다양한 부분에서 거리를 두고 활동하는 일파(一派)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한국 내 일본 대사관(日本大使館)·영사관(領事館) 앞 등에 "종군 위안부 동상(従軍慰安婦像)"을 설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불쾌감(不快感)을 가지고 있는데(외교적으로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여전히"피해자 사관(被害者 史観)"를 벗어나지 못한 후진 국민(後進国民)인 현실을 과시되고, 연민(憐憫)의 감정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일의 책임은, 조선의 근대화를 저해하고 온(일본의 자칭"애국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본의 독특(独特)한 식민지 정책은 오히려 조선 반도의 근대화를 도운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즉 여러분 자신의 노력에 의한 자주적(自主的), 자립적(自立的)인 근대화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것입니다)우리 일본인에게도 있는 것은 아닌지,,이렇게 선진 국민(先進国民)이기 때문에 자학적(自虐的)으로 스스로를 몹시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진국(先進国) 선배(先輩)로서의 책임감부터(혹은 여러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는 '정직한 근대화'를 막은 것에 대한 죄악감(罪悪感)에서)여러분들에게 빨리 선진국민(先進国民) 다운"자학 사관(自虐史観)"의 소양을 가질 수 있도록, 그 일조(一助)로서 "베트남 반전상(反戦像)"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한국은 근대에서 항상 "피해자(被害者)" 이었어요? 한국은 베트남에서 "종군 위안부(従軍慰安婦)"에 비슷한 종류의 어리석은 짓을 행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물론 우리는 과거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인근 국가(近隣国家)에 대해서 행한 일련의 침략 행위(侵略行為)를 정당화(正当化)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소의 "말하고 싶은것", 혹은"여러분에도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은 있습니다. 원래의 원흉(元凶)은, 우리의 동(東) 아시아를 포함한 비(非)유럽 지역을 잇달아 식민지화(植民地化)한 구미 열강(欧米 列強)에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이나 중국이나 조선도 이에 맞서야 했던 것은 자명(自明)하죠. 원래 우리는 한마음으로 구미 열강(欧米 列強)의 침략에 대항해야 할 떼에, 당시의 각각의 국정에서, 대항에 치고 나가려는 타이밍이 비뚤어지고, 원래 중국 문화권의 최후진국(最後進国)이었던 일본이 왠지 선두에 서게 되고, 낯선 것으로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여러분에도 필설(筆舌)로 다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그 일은 부정(否定)하지 않았구요, 저희는 저희들 모여 잘(자주) 반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으로, "그럼 왜 자신들이 솔선(率先)해서 구미 열강(欧米 列強)의 침략에 맞서기를 시작하지 못할까" "일본이 나쁘다로 마쳐서 좋은 것인가", 또 말하면, 만약 만일 여러분이 중국이나 일본에 앞서서 근대화(近代化)에 성공했다면, 여러분이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 '일본이 중국과 조선에 대해서 행한 것과 같은 것', 혹은 '더 지독한 일을 벌인 가능성은 없는지', 요컨대 그럼 '본래 중국·조선·일본은 그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등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에 "베트남 반전상(反戦像)"이 그 계기의 하나가 되길 바라고 있는 바입니다.

  

2017년 8월 15일 

큐슈 파시스트(fascist) 당〈와레와레 당〉(九州ファシスト党〈我々団〉)

총통: 토야마 코이치 (総統・外山恒一)

2017.8.15声明

한국의 여러분들이 한국안의 일본대사관, 영사관등의 앞에 이른바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한것을 염두해, 우리들은 2017년8월15일, 우리들이 사는 후쿠오카시에 있는 한국 영사관앞의 도로에 ‘베트남 반전 동상’을 설치를 시험해 보려 합니다. (일본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으므로, 실제 설치는 힘들겠지만)

물론 이는 한국 여러분들의 '위안부 소녀상' 에게 대항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거의 없고, 진정한 의도는 따로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반한 / 혐한' 각 단체들의 활동에 관한 상황은 한국에서도 자세히 알려져 있겠지만 일본 국내의 소위 '자학사관' 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을까요.

'자학사관' 이란 일본의 역학 주류를 점하는 자국에 대해 비굴하리 만큼 비판적인 서술경향에 대해 '반한국 / 반중국' 을 내세우는 자칭 '애국자' 들이 가져다 붙인 딱지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상과 달리 일본에서 '자학사관' 이 압도적인 주류이며, 이에 대항하는 형태로 90년대 중반이후 '반한 / 반중' 을 내세우는 소수파의 각운동 조직이 표면적으로 눈에 띄기에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자학사관' 은 물론 근대 일본이 한국을 포함한 근린제국에게 행한 일련의 침략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교육도 이러한 '자학사관'에 가까운 내용이 주류이며 이는 역사교과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한 / 반중' 을 내세우는 자칭 '애국자' 들이 90년대 중반이후 '자학사관' 과 거리를 두는 애국적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서 퍼트리려고 했던 사실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겠지만, 그들이 만든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채택되는 비율은 지금도 몇퍼센트 수준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자학사관’은 일본 특유의 것이 아닌, 선진국 공통의 경향으로, 예를 들어 미국에서도 60년대말 이후, 그때까지 아메리카 선주민이나 흑인에게 얼마나 심한 짓을 반복해왔는가를 반성적으로 검증하는 역사관이 주류가 되어있고, 그것은 근대사에 아마도 비유럽지역의 침략, 수탈해온 가진 유럽의 선진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선진국의 ‘자학사관’은,  60년대후반의 ‘베트남 반전 운동’을 계기로 등장한 후 확산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베트남 반전 운동’ 이전의 반전 운동은 사회 지배층의 잘못된 판단으로 두번다시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피해자의 관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협력하는 일본은 가해자가 아닌가” 라는 문제의식이 급속하게 퍼지면서 반전운동내에 ‘가해자의 자기비판’ 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어, 이후 연장선상에 있는 제2차세계 대전 중 조선과 중국을 포함한 근린국가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조선에 대해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계속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던것은 아닐까.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출병도, 고대 백촌강의 전투도 침략이었으며, 류큐(오키나와), 아이누 등 일본 열도내의 이민족에게도….. 라는 식의 본격적이고 종합적인 ‘자학사관’이 급속히 형성되어 적어도 학계에서는 주류가 되었으며, 물론 학자들이 주도하는 학교 교육에도 침투하게 된 것입니다. 

 어찌됐든 이제 ‘자학사관’은 선진국 공통의 일종의 “기초 교양"이 되었습니다.
 한편 한국은 어떻습니까? 일본에 전해지는 범위내에서 보자면 여러분들은 ”기초 교양”이 결여되어 있는듯이 보입니다. 한국인은 항상 “피해자” 이며, 일본 탓, 중국 탓, 러시아 탓을 하는 자국 중심주의적 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존사관’ 은 발전도상중인 후진국에나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한국은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과 같은 이류 선진국 조차 문화적으로 따라잡지 못하게 됩니다. 

 이번에, 한국영사관앞에 [‘베트남 반전 동상’을 설치하려는 우리 그룹은, "반한,혐한"에 속하는 사람들과도 다소 친교를 가지면서도, 여러가지 부분에서 거리를 두며 활동하고 있는 일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국의 일본대사관, 영사관등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고있는것에 대해서 외교적으로 실례라고 생각하기에 불쾌감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한국인 여러분이 아직까지도 ‘피해자 사관’ 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후진국민이라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동정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또한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은 조선의 근대화를 방해 한 우리들 일본인들에게도 있습니다. 일본의 자칭"애국자"들이 말하듯, 일본의 독특의 식민지 정책은, 조선반도의 근대화를 도왔던 측면이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여러분 자신의 노력에 의한 자주적, 자립적인 근대화의 기회를 빼았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선진국민인 우리들은 자학적으로 스스로를 탓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선진국 선배로서의 책임감으로부터 (혹은 여러분의 자신의 노력에 의한 올바른 근대화를 방해해온 죄악감으로부터), 여러분들도 하루빨리 선진국민다운 "자학사관"을 가지게 되도록,  ‘베트남 반전 동상’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한국은 베트남전쟁때 무엇을 했습니까? 한국은 근대에 있어서 언제나 “피해자" 였습니까? 한국은 베트남에서 ‘종군위안부’ 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우리들은, 과거 일본이 조선이나 중국 등의 주변 나라들에게 행한 일련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 반론이나 “여러분들도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부분은 있습니다. 

애초에 원흉은, 우리들의 동아시아를 포함한 비유럽 지역을 차례로 식민화 해온 서양열강입니다. 예를들어 일본도 중국도 조선도 그것에 대항하지 않으면 안되는것은 자명합니다. 본래대로라면 우리들은 한데뭉쳐서 서양열강의 침략에 대항해야할것을, 당시 각각의 국가사정으로, 대책을 낼 타이밍이 어긋나비록, 중화문화권의 최후진국이었던 일본이 어째서인지 선두에 서게 되었습니다. 서투룬 탓에 잘못을 저지르고, 모두에게도 말할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며, 우리들 역시 반성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여러분 역시, 그럼 왜 자신들이 솔선하여 서양열강의 침략에 대항하지 않았는가,  
결국은 모든것을 “일본 탓이다” 로 정리해버려도 좋은가, 더 나아가서 가령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다면, 일본이 중국이나 조선에 대해서 했던것과 같은것, 혹은 더 심한 행동을 하진 않았을까…..즉 중국, 조선, 일본은 당시에 어떻게 해야 했던것인가 등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기회를 위해, 이번 ‘베트남 반전동상’이 그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8・15在福岡韓国領事館前“ベトナム反戦像”設置にあたっての韓国向け声明

※検索サイト等からいきなりこのブログにアクセスした方へ。ここには「我々団」もしくは「外山恒一」に関する詳しい情報はありません。公式サイトへ移動してください。
 外山恒一の活動に資金協力を! 協力者向けに活動報告誌『人民の敵』を毎月発行しています。詳しく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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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月15日、福岡市早良区にある韓国領事館前の路上に、「九州ファシスト党〈我々団〉」として、“ベトナム反戦像”の設置を試みる。

 以下はそれに際しての韓国向け声明である。もちろん韓国語への翻訳も知人に依頼しているが、当日までに間に合うかどうか微妙。

 当日、人数は多ければ多いほど良いと思うので、駆けつけられる者は正午に現場に駆けつけるべし。

 

          ※          ※          ※

 

 みなさんが韓国内の日本大使館・領事館の前などにいわゆる「従軍慰安婦像」を設置していることを念頭に、私たちは2017年8月15日、私たちの住む地域(福岡市)にある韓国領事館前の路上に「ベトナム反戦像」を設置することを試みます(日本には言論の自由がないので、実際には設置できないと予想していますが)。

 この試みには、みなさんの「従軍慰安婦像」への対抗や抗議の意図は(まったくなくはありませんが)稀薄で、真の意図は別のところにあります。

 近年の日本で隆盛している“反韓・嫌韓”の諸団体・諸運動の状況についてはかなり詳しく伝わっていることと思いますが、日本国内のいわゆる「自虐史観」については、どの程度みなさんに伝わ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

 「自虐史観」とは、日本の歴史学で主流をなす、自国の歴史を卑屈なまでに批判的に描く傾向に対して、“反韓”や“反中”を掲げる日本の自称“愛国者”たちが貼りつけたレッテルです。おそらくみなさんに伝わっている印象とは異なって、日本ではむしろこの「自虐史観」派のほうが圧倒的に主流で、これに対抗する形で90年代後半以降、“反韓・反中”を掲げる少数派の諸運動が表層的に目立つようになり、目立つので少数派なのに大々的に報道されたりする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

 「自虐史観」では当然、近代において日本が韓国をはじめ近隣諸国に対してなした一連の侵略的な政策についても厳しく批判的に描かれるのですが、実は日本で現在おこなわれている歴史教育でもそういった「自虐史観」的なもののほうが主流で、学校教育で使用されている歴史教科書に関しても同様です。“反韓・反中”を掲げる自称“愛国者”たちが90年代後半以降、非「自虐史観」の“愛国的”な歴史教科書を作って広めようとしており、そのことはみなさんにもよく伝わっているでしょうが、彼らの教科書の学校現場での採用は、現在でも数パーセント程度です。

 もっとも「自虐史観」は日本に特有のものではなく、先進国に共通の傾向で、例えばアメリカでも60年代末以降、それまでのアメリカが先住民や黒人にどれほど酷い振る舞いを繰り返してきたかを反省的に検証するような歴史観が主流になってきましたし、それは近代史において非ヨーロッパ地域を侵略・収奪してきた過去を持つヨーロッパ先進国においても同様です。そしてこれら先進国の「自虐史観」は、まさに60年代後半の「ベトナム反戦」運動を契機として登場し、広まり、やがて定着したものでもあります。日本でも、「ベトナム反戦」以前の日本の反戦運動は、支配者の勝手な都合で悲惨な戦争に巻き込まれるのは2度とイヤだという“被害者視点”でのものがほとんどだったのが、ベトナム戦争で、アメリカの不正義な戦争に協力する日本はベトナムに対して加害者ではないか、という問題意識が急速に広がって、反戦運動は“加害者の自己批判”の側面を強く持つようになり、その延長線上にまもなく、そもそも第二次大戦でも日本は朝鮮や中国をはじめとする近隣諸国に対して加害者だったではないか、とくに朝鮮に対しては明治維新以降ずっと加害者であり続けてきたではないか、さらに振り返れば豊臣秀吉の朝鮮出兵も古代の白村江の戦いも侵略だし、朝鮮に対してのみならず琉球やアイヌといった日本列島内の異民族に対しても……という本格的・総合的な「自虐史観」が急速に形成され、少なくともアカデミズムの世界では主流となり、当然にもアカデミシャンたちが主導する学校教育にも浸透していったのです。

 ともかく今や「自虐史観」は先進国共通の一種の“たしなみ”となっています。

 ひるがえって韓国ではどうでしょうか? 少なくとも日本に伝わってくる範囲では、みなさんには今なお「自虐史観」の“たしなみ”が欠けているように思われます。みなさんはいつも“被害者”で、悪いのは日本だ、中国だ、ロシアだといった自国中心主義史観、“自尊史観”は、発展途上の後進国にこそふさわしいものです。そこから脱却しないことには、みなさんの国はいつまでたっても真の先進国にはなれない、日本のような二流先進国にさえ少なくとも文化的には追いつけないでしょう。

 今回、韓国領事館前に「ベトナム反戦像」の設置を試みる私たちのグループは、“反韓・嫌韓”を掲げる人々とも多少の親交は持ちつつ、さまざまな部分で距離をおいて活動している一派です。私たちは、みなさんが韓国内の日本大使館・領事館前などに「従軍慰安婦像」を設置していることに対して、不快感を持ってもいますが(外交的に失礼なことだと思います)、むしろみなさんが今なお“被害者史観”から脱却できない後進国民である現実を見せつけられて、憐れみの感情を抑えきれません。そして同時に、そのことの責任は、朝鮮の近代化を阻害してきた(日本の自称“愛国者”たちが云うように、日本による独特の植民地政策はむしろ朝鮮半島の近代化を助けた側面があるのですが、それはつまりみなさん自身の努力による自主的・自立的な近代化の機会を奪った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日本人にもあるのではないか、と先進国民なので自虐的に自らを責め苛んでいます。

 私たちは先進国の先輩としての責任感から(あるいはみなさん自身の努力によるまっとうな近代化を阻んだことへの罪悪感から)、みなさんにも早く先進国民らしい「自虐史観」をたしなんでいただきたく、その一助として、「ベトナム反戦像」をプレゼントするものです。韓国はベトナム戦争に際して何をしましたか? 韓国は近代において常に“被害者”でしたか? 韓国はベトナムで「従軍慰安婦」に似た類の愚行をおこなっていませんか?

 もちろん私たちは、かつて日本が朝鮮や中国をはじめ近隣諸国に対しておこなった一連の侵略行為を正当化す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多少の云いぶん、あるいは“みなさんにも考えてほしいこと”はあります。そもそもの元凶は、私たちの東アジアを含む非ヨーロッパ地域を次々と植民地化していった欧米列強であったはずです。例えば日本も中国も朝鮮もこれに対抗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とは自明でしょう。本来なら私たちは一丸となって欧米列強の侵略に対抗すべきところ、当時のそれぞれの国情で、対抗に打って出ようとするタイミングがズレてしまい、もともと中華文化圏の最後進国であった日本がなぜか先頭に立つことになって、慣れないもので多くの過ちを犯し、みなさんにも筆舌に尽くしがたい辛酸を味わわせてしまいました。そのことは否定しませんし、私たちは私たちでよく反省します。しかしみなさんはみなさんで、ではなぜ自分たちが率先して欧米列強の侵略に対抗することを始められなかったのか、「日本が悪い」で済ませてしまっていいのか、さらに云えば、もし仮にみなさんが中国や日本に先んじて近代化に成功していたとしたら、みなさんが中国や日本に対して、日本が中国や朝鮮に対しておこなったのと同じこと、あるいはもっと酷いことをおこなった可能性はないのか、要するにじゃあ本来は中国・朝鮮・日本はあの時どうすべきだったのか……等々について深く考えていただきたく、今回の「ベトナム反戦像」がそのきっかけの一つとなることを願っている次第です。

 

          2017年8月15日 九州ファシスト党〈我々団〉

                    総統・外山恒一

 

第七回・外山恒一賞 受賞者発表

※検索サイト等からいきなりこのブログにアクセスした方へ。ここには「我々団」もしくは「外山恒一」に関する詳しい情報はありません。公式サイトへ移動してください。
 外山恒一の活動に資金協力を! 協力者向けに活動報告誌『人民の敵』を毎月発行しています。詳しく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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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国各地で不定期に開催される「外山恒一を囲んで飲む会」もしくは「外山恒一トークライブ」の情報を事前に確実に入手したい方はコチラを。
 



   外山恒一賞

 主に反体制的な右翼運動、左翼運動、前衛芸術運動などの諸分野から、「いま最も注目すべき活動家(もしくはグループ)」を、外山恒一が独断で選んで一方的に授与する。辞退はできない。

 外山恒一のファシストとしての再臨(2004年5月5日・ファシズムへの獄中転向を経て福岡刑務所を満期出所)を記念して、2011年より毎年5月5日に受賞者の発表をおこなう。

 授賞は、外山恒一が受賞者の活動に「全面的に賛同している」ことを意味するものではなく、あくまで「いま最も注目している」ことを意味するものである。多くの場合、授賞は好意的評価の表明であるが、時にはイヤガラセである場合もありうる。

 外山恒一が創設した革命党「我々団」の公然党員は授与の対象とならない。

 賞状・賞金・賞品はない。「外山恒一と我々団」や「我々少数派」などの外山恒一関連サイトで授賞が発表されるだけで、受賞者への通知もないが、受賞を知った受賞者は「外山賞活動家」であることを周囲に吹聴してまわって存分に自慢することが許される。外山賞受賞は活動家として最高の栄誉であり、いくら自慢しても自慢しすぎるということは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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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昨年も愚痴ったように、2011年の“3・11”以後の反原発運動やシールズなどの何の意味もない表層的な“高揚”の限界を突破する、真にラジカルな若い諸運動がそろそろ登場するはずだ、という私の期待は今年も裏切られ、少なくとも私の視野に入ってきた範囲では、この1年間にめぼしい動きは何もない。例によってまずは以下の“ノミネート”枠に登場するのも、すでに功成り名を遂げた方々がほとんどで、私がわざわざ今さら顕彰したりするのも却って失礼に当たるので、えいっと授賞するわけにもいなかいし、若者たちのふがいなさに私は今年も歯がみする思いである。
 諸外国ではトランプ旋風、サンダース旋風、ブレグジット、ドゥテルテ……と非インディーズ政治のレベルでさえワクワクさせられるような展開が連続しているというのに、日本ではそれに似てないこともない“アベ政治”も今ひとつどころか今百ぐらいグダグダなナシクズシ的展開でしかなく、つまり在野の運動が既成政治体制をおびやかす形で表舞台に登場するのではなく、既成権力そのものである自民党が自ら“トランプ的なもの”の真似事をしてる程度のもので、まあ第二次大戦前もイタリアやドイツと違って日本にはファシズムの“革命”は起きなかったわけだし……やっぱりとことんダメだな、この国は。
 いっそ今回はトランプに授与しようかと考えたほどだ。
 こんな国、早く中国と戦争になって負ければいいと思う。


  ノミネート1 針谷大輔氏の「謝れ!」

 2016年5月27日、アメリカ大統領として初めて、オバマが広島を訪れた。反核のアピールはあったが、もちろん日本に2発も原爆を落とし、フセインもアサドもアルカイダもイスラム国も真っ青の大量虐殺をおこなったことへの謝罪の言葉などは一言もなかった。オバマの立場を考えれば、それはそれで仕方のないことではあるし、まずは大統領の任期内に広島を訪れて、謝りはしないまでもとりあえず神妙なことを云って献花したというだけで大前進ではある。
 が、日本国内の左右の反体制派は、それぞれの立場から、少なくとも「謝れ!」の声を一応は上げておくべきでもあろう。オバマが読むわけもない国内の左右メディア上でそのように云っていた者は多少いようが、オバマに直接その声を届けようとしたのは、新右翼・統一戦線義勇軍の針谷大輔議長ただ1人であった。
 針谷氏は、オバマ広島訪問の当日、たった1人でこっそりと広島入りし、オバマの乗った車が通るのを今か今かと待ち構えている、沿道の“歓迎”の人並の中にまぎれ込んだ。いざオバマ・カーが目の前にさしかかるや、針谷氏は内ポケットに隠し持っていた「Apologize!」の旗を広げ、掲げたのである。もちろん警備の公安刑事たちに即座に取り押さえられた(その場から排除されただけで、逮捕はされなかったようだ)。
 警察の大失態である。6月14日に東京でおこなわれた“報告集会”で針谷氏自身が語っていたように、針谷氏が隠し持っていたのが“謝れ!”の旗であったから良かったようなものの、その気になればピストルや小型爆弾だって持ち込めたということなのである。どうせこんな3流後進国、諸外国の要人諸君がわざわざ危険を冒して訪問する価値もあるまいし、誰も来なくなればいいんじゃなかろうか。
 ともかく、87年の「住友不動産会長宅襲撃事件」で颯爽とデビューし、“3・11”以後は現在まで毎月、東京・銀座での“右から考える脱原発”デモを主催し続けている、さすが歴戦の反体制右翼活動家・針谷氏である。誰かが絶対にや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とを、見事にやってのけてくれた。


  ノミネート2 桜井誠氏の「早大講演会の開催告知における自主炎上商法」

 云わずとしれた悪名高いレイシスト集団「在特会」の桜井誠氏である(現在は「日本第一党」党首)。
 詳細は「web版『人民の敵』」でも書いたとおりだが、2016年秋の早大の学園祭に、「人物研究会」と称する3流サブカル早大生サークルが、桜井氏を招こうとした。野間易通氏の「しばき隊」が火をつけた、在特会への近年の“カウンター”行動の盛り上がりを考えれば、そんな企画、そもそも実現しようはずもない。
 正確には桜井氏1人を早大祭に呼ぼうとしたのではなく、昨夏の都知事選に出たキテレツないわゆる“泡沫候補”を桜井氏も含めて数名、呼ぼうとしたもののようである。つまりまず何よりも、一片のココロザシもない徹頭徹尾ただフザケたイベントで、もちろん若者がフザケたって別にそれ自体はかまわないのだが、そういう場に桜井氏を呼ぶことは決して冗談では済まされない問題になることに決まっていることも分からない程度のアサハカさ、“フザケる資格”のなさが大問題である。そういうことをやるなら、当然ながら抗議の声が殺到することも念頭に、あらかじめ策を練っ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しかも抗議の声が早大内からではなく、「しばき隊」やそのシンパら学外からしか巻き起こらなかったことで、早大などというFラン私大に通う価値などまったくないことも改めて暴露されてしまった。学外からの抗議が殺到しなければ、たぶんこのしょーもない企画は無事に開催されていたはずである。企画が提出された段階で、早大祭実行委員会で問題にならなかったのが不思議と云えば不思議、3流私大なんで不思議でも何でもないと云えば不思議でも何でもない。
 私が感心したのは、学外からの抗議が殺到するきっかけを作ったのは、つまり早大祭に桜井氏を招く計画があることを最初に暴露したのが、桜井氏自身であることだ。本番の数日前、桜井氏が自らのツイッターで「早大に呼ば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的なツイートをして一気に炎上、くだんの企画は抗議殺到により企画ごとポシャ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
 そもそも桜井氏自身、こんなド3流のFラン私大のFラン学生によるFラン企画になど参加したくなかったのではないかと私には思われる。桜井氏は、その思想の内容はともかく、“活動家”としてのセンス・反射神経は相当レベルが高いと私は見ているし、そんなツイートをすれば企画が潰れてしまうだろうことを桜井氏ともあろう者が予測できないはずがない。桜井氏は、わざとやった可能性が高い。
 おそらく桜井氏の思惑どおり、桜井氏がたった一言つぶやくだけで企画は潰れた。“カウンター”側は桜井氏の半分ほども政治センスがないから、「勝った、勝った」と浮かれたようだが、早大生たちの多くは、そもそも自力でこんなポンコツ企画を潰せないFラン畜群集団であるから、桜井氏にではなく、学外からワケの分からない“クレーム”をつけてきてFラン仲間の企画を潰したカウンター勢に対して反感を募らせたであろうことは想像に難くない。桜井氏は何の損もせず、それどころか“自ら関知しない事情によって”バカ学生どもと不愉快な接触をせずにすみ、しかもバカ学生たちは敵方のカウンター勢に反感を持ってくれるという、いやはやなかなかの策士である。


  ノミネート3 ブラ陛下

 天皇皇后両陛下が今年2017年4月2日朝、突如として超ラフな恰好で皇居の門から徒歩で出てきて、近所を“お散歩”された。ブラタモリならぬブラ陛下である。
 朝日新聞の記事にもあるとおり、そりゃあ「遭遇したランナーや通行人は驚いた」に違いない。
 両陛下がなんで突然そんな振る舞いに及んだのかは分からないし、陛下のお気持ちを“忖度”すること自体が“不敬”にあたるのだ、と周囲の右翼方面の友人たちから年中イマシメられてもいる。“何か”意図はあるんだろうが、両陛下がそれを語ることなどもあるまい。
 私は右翼ではなくファシストだし、うっすら尊皇家ではあるが信奉者というほどではないので、多少はついつい“忖度”もしてしまう。例の“生前退位”メッセージにせよ、さすが陛下、安倍ちゃんごときが思いもよらぬ手段を次々と繰り出して、安倍政権を揺さぶり続けているようにも見える。原発も早くやめてしまえとお怒りであろうことも、“3・11”以降の“お言葉”のハシバシから窺える。今回のことも、この国の現状に対する何らかの批判的示唆であるには違いないと思う。
 不勉強な政治家どもと違って、陛下はシモジモの動向にかなり細かく目を配っておられるような気が私などにはしており、私が福岡での読書会でさんざん批判的に論評した栗原康の『現代暴力論 「あばれる力」を取り戻す』(角川新書・2015年)などという駄本にも、そこそこ話題にはなってる新進論客の著作だし、目を通されている可能性もないではない。少なくとも栗原“アナキズム”への軟弱ヘナチョコな同調者どもよりも、両陛下たったお2人のほうが、よっぽど「あばれる力」をお取り戻しであるように見えるし、しかも最小限の労力で体制への最大限の揺さぶりを発揮しうる戦略も見事である。ヘサヨやパヨクが何万人束になろうとも、陛下お1人の力にはとうてい及ばない。
 しかしさすがに陛下に何かを“授与”するなんて“不敬”が許されようはずもない。立場が逆である。べつのところでも書いたとおり、私はいずれ陛下に「征夷大将軍」に任命いただける日がくることを夢に見ながら、今後とも精進していく決意だ。


  ノミネート4 スイス大使館

 昨夏の都知事選で、私はここ2年ほどヤミツキになって時々やってる“ニセ選挙運動”というのを、また期間中ひたすらやり切った。正式に立候補もしてないくせに、いつもの街宣車を選挙カーふうに改装し、「外山、外山でございます」といかにも選挙口調で、しかし“投票ボイコット”を呼びかけて回るという、一見ただフザケているように見えて実はとってもマジメな“民主主義批判”の運動だ。
 その模様を、アサハカにも私の活動を単なる演芸的な何かだと勘違いし続けている某サブカル誌編集者の織田曜一郎氏が連日、動画でレポートし続けてくれた。それら全20回の動画シリーズは、YouTubeで「外山恒一 ニセ選挙」などで検索すれば今でもすべて見られる(とくに東京極西部の農村地帯を回った日や、プロのウグイス嬢の実力が炸裂した日などのレポート動画が評判いい)。
 で、在日本スイス大使館である。
 昨年はスイス・チューリヒで、20世紀前衛芸術運動の極北たる“ダダイズム”が誕生してからちょうど百年にあたり、おそらくは世界じゅうで、各国のスイス大使館の主催になる“ダダ百周年”のさまざまなイベントが開催されていたんだろうと思う。在日本スイス大使館も、「ダダ100周年記念アート・コンペティション」と称し、「ダダイズムに触発された」映像作品を一般から募集して、どうせ3流Fランの後進土人国家だしテキトーでよかろうという判断だろう、それら応募作品を一律にスイス大使館のFacebookアカウント内に陳列、「イイネ!」数で優勝を決めるというチョー安直なイベントを主催した。優勝賞品はスイス旅行である。
 これに何を思ったか織田曜一郎氏が、くだんの“ニセ選挙運動”レポート動画を再編集して送りつける、という挙に出た。「外山恒一の『ニセ選挙運動』~現代美術パフォーマンスとしての記録」という、相変わらず私の活動を“芸術”呼ばわりする失礼な作品である。
 すると今度は、我が九州ファシスト党〈我々団〉の工作員たちが、「織田さんを無駄にスイスへ送ろう!」と織田氏作品に“イイネ!”投票を呼びかける大キャンペーンを展開し始め、そもそもダダイズムなんて一流先進国民にしか興味を持たれようのない高級芸術運動の関連イベントが盛り上がるわけがない土人集落だし、ちょっと煽っただけで2位以下に圧倒的な大差をつけて、織田氏の応募作品はまんまと優勝してしまった。もちろんスイス旅行にも今年はじめに招待され、無事に行って戻ってきている。
 まさか優勝はすまいという、結果が出る少し前でのものだが、一連の経緯は「web版『人民の敵』」でさらに詳しく報告したとおりである。
 それにしてもスイス大使館、大英断と云ってよかろう。なにしろ織田氏の作品は、“ファシストの政治活動”を、もちろん何ら批判的な視点を抜きに、ただ面白おかしくレポートしたものなのである。そんな作品を政府機関が公的に表彰することなど、国際常識として決して許されるものではあるまい。しかも表彰式(会場はドイツ大使館関連の公的施設。ドイツですよナチズムでおなじみのドイツ!)で、我が九州ファシスト党の工作員たちが“ファシズムの再評価”を求めるがごとき内容のスピーチをおこなうことさえ、主催のスイス大使館は許容してしまったのである。これは遅かれ早かれ国際問題になるに決まっている。なまなかな覚悟での授賞ではなかったに違いなく、スイス大使館、実に立派としか云いようがない。
 なお九州ファシスト党の工作員たちは、引き続き今度は、“ファシズム賛美作品を公的に表彰したスイスを国連から追放しよう!”というマッチポンプ的なスイス糾弾キャンペーンを大々的に展開すべく、まずは各国のリベラル派のメディアなどに告発の手紙を送る恐ろしいインボーを準備中であるらしく、ファシストってのはほんとにタチが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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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七回外山恒一賞(2人授賞)

   1 オクムラユウスケ


  授賞理由

 福岡の音楽シーンの重鎮である“ボギー”氏と知り合ったのは、2013年5月31日のことである。
 存在は99年頃には聞き知っていた。ボギー氏は私より4歳年下だが、当時すでに福岡の音楽シーンのキー・パーソンの1人となっていたのだろう。ミュージシャンとしての活動もさることながら、おそらくそれ以上に、個性的な音楽イベントを次々と仕掛けるイベンターとしての活躍がすさまじかったのだと思われる。
 ボギー氏の側もだいぶ以前、たぶん07年の都知事選よりずっと以前から私の存在は承知していたはずである。90年代、20代での私のさまざまな革命的活動は、とくに地元福岡で大量の敵を作り、その悪名は一部では現在も語り継がれているようで、会ったことない人にも蛇蝎のごとく嫌われていることはよくあるし、ボギー氏もやはり、「存在は知っていたが、正直あまりいい印象は持ってなかった」と知り合ってから語ってくれている。
 2013年の出会い方も実はあまり良いものではなかった。むしろ危機一髪だったと云ったほうがいい。私の関係者経由でボギー氏主催のライブに飛び入り出演した、もちろん私自身もよく知らないゴミくずミュージシャンが、当日さんざん不義理を働いてくれたのである。対応を誤ると、初対面のボギー氏にいきなり“やっぱり外山ってのはロクでもない”という評価を決定づけさせてしまいかねない危機的局面だった。
 まあその時のことは今さらどーでもいい。詳しくは私自身が珍しくtogetterにまとめて“名編集者”ぶりを発揮したページが残っているので、興味のある人はそちらを見るよろし。
 私はおそらく対応を間違わなかったということだろう、その一件を機に、むしろ急速にボギー氏と親しくなった。私が現地スタッフ代表を務めている「劇団どくんご」福岡公演にも毎回ご来場いただけるようになったし、ボギー氏が主催するヘンテコなイベントにも“出演者”として誘っていただけるようになった。
 私自身が出演する時であれ、そうでない時であれ、ボギー氏のイベントには毎回感心させられる。ボギー氏があちこちで見つけてきた面白すぎるミュージシャン、パフォーマーたちが大量に出演していて、私もまだまだ全然、重要な人たちを知らなすぎることを反省することしきりである。さらに、前記の初対面の時の“事件”とも関連することだが、ボギー氏はイベントそのものにはもちろん、イベント終了後に出演者や観客たちを互いに“交流”させることにも力を入れていて、つまり福岡というしょーもない地方都市にナニガシカの“シーン”を形成することに全力を傾けているところにも私は感動している。偉大な文化活動家であり、本来ならボギー氏に外山賞を授与したいところだが、私が持ち上げるまでもなくボギー氏はとっくに福岡の音楽シーンの重鎮であり、歴戦の闘士すぎて、私がボギー氏をちゃんと知るのが遅すぎたことを悔いるしかない。
 昨2016年はとくに私にとって“ボギー漬け”の1年だった。
 正月早々の1月6日にいきなり、ボギー氏がこのところ連年開催しているという「新春即興祭」なるイベントに出演者の1人として呼ばれた。ボギー氏の交友関係の中から、ボーカリスト、ギタリスト、ベーシスト、ドラマー、そして“その他”(キーボードとか管楽器とか)をそれぞれ4人ずつ集めて、当日その場でクジ引きによる“即席バンド”を結成、完全にアドリブで30分ずつステージを務めさせる、というムチャすぎる企画である。しかもアドリブに慣れた他のパートはともかく、ボーカルなんて普通アドリブでやるもんじゃないし、私はその“ボーカリスト”の1人として呼ばれたのだから、ほんとに一体どうなることかと焦りまくった。絶対に大恥をかくと思って私はほとんど告知もしなかったが、どうにか及第点のパフォーマンスはできたようで、終わってホッとした。
 10月1日に開催された「ヨコチンロックカーニバル」(ボギー氏主宰のイベント制作集団の名称が「ヨコチンレーベル」)という、ボギー氏界隈の恒例の年間最大イベントらしきライブにも、これはフツーに客として行ってみた。「どくんご」のメンバーにオススメされていた「イェーイ青木」という“音楽を通じて仏の教えを世に広める”活動に邁進しているお坊さんが出演すると知ったからでもある。イェーイ青木氏、素晴らしかった。袈裟を着て、“エレキ琴”の弾き語りで“ありがたいこと”を絶唱するんだが、私が行ったこのイベントでの動画はYoTubeでは見つけられなかったので、参考までに、袈裟は着てるが“弾き語り”ではない動画と、“弾き語り”だが袈裟は着てない動画を1つずつ紹介しておく。
 ボギー氏のやるイベントというのは、少なくとも私が行ったものに限って云えば常にどこか極端で、この時も14時半開演、深夜0時すぎまで10時間ノンストップで、20組以上が出演するのである。どの出演者もいちいち個性というかウリがあって面白いのだが、そのバカバカしさにおいて私は「カシミールナポレオン」に唖然とさせられた。聖飢魔Ⅱのパロディというか、そもそもヘヴィメタルのパロディである聖飢魔Ⅱのそのまたパロディというか……これもこの日のステージではなく、東京かどこかでのライブらしい動画を紹介しておく。
 そして年末12月28日の、(人数に多少の変動はあれ)やはり連年の恒例企画らしいのだが、「56人弾き語り忘年会」という、“1人1曲”という縛りで5時間以上続く、これまた非常識にバカバカしすぎるイベントに私も“出演者”として呼ばれ、数少ない弾き語りの“持ちネタ”である例の「無職青年社のテーマ」を披露した。まさにボギー氏で始まりボギー氏で終わる1年であった。
 なお今年に入ってからも、ボギー氏が主催した、元「たま」のドラマーというかパーカッショニストというか例の“ランニングに半ズボンの人”石川浩司氏の3月17日のギター弾き語りライブと、翌3月18日のトークライブも観に行った。弾き語りライブのほうでは、“余興”と云っちゃっていいのか、これもボギー氏が石川氏を福岡に呼ぶたびにやってるらしい、ボギー氏を含む福岡のミュージシャンたちと石川氏による“本人1人入り「たま」完全コピーバンド”がバカバカしいやら感動的やら、とにかく贅沢であった。トークライブのほうは、石川氏とボギー氏が代わる代わる“持ちネタ”の笑い話を披露するというもので、石川氏もボギー氏も観客を一瞬たりとも飽きさせないエンターテイナーぶりである。
 肝心の授賞についてだが、多くを語る必要はあるまい。前記「ヨコチンロックカーニバル」で私は初めてオクムラユウスケ氏の弾き語りを観た。そういえば書き忘れてたが昨年春にはボギー氏主催の花見にも行ってて、そこで私は初めてオクムラ氏に対面したんだが、氏がボギー氏の実弟だと知ったのはその時だったか、それよりさらに後だったか……。
 「ヨコチンロックカーニバル」では、オクムラ氏はソロでのフォーク・ギターの弾き語りを披露し、何曲かやったが、とくに「ロックスター」という曲が強烈に印象に残った。ボギー氏の“陽”に対してオクムラ氏の“陰”……というほど“陰”というわけでもないが、対照的ながらこの兄弟スゲェぞと思い知らされた。ちなみにボギー氏のご子息・モンド君も現在中学生ながら美術シーンですでに有名な“天才似顔絵描き”であるらしく、とんでもない“芸術一家”である。
 「ヨコチンロックカーニバル」の打ち上げの席でオクムラ氏本人から聞いたところによれば、いろんなイベントに呼ばれるが大半はパンク・バンドと同じステージに立つことになり、バンドの音量・音圧にアコースティック・ギター1本でどう拮抗しうるかを追求してきた結果として、現在のスタイルがあるのだそうだ。
 さらに「56人弾き語り忘年会」にもオクムラ氏は出演していて、そっちも、笑いを挟みながら強烈なステージだった。
 前者「ロックスター」は、私が観たソロではなく、バンドでのバージョンがYouTubeに上がっていた。後者「動物大図鑑」は、まさに私が観た「56人弾き語り忘年会」でのそれがあった。観れば、そりゃ外山賞も受賞するわな、と納得していただけることだろう。

 まあ、単に私が知らなかったというだけで、オクムラ氏もボギー氏同様そのシーンではすでにヒトカドの人物で、こんな授賞などやっぱり却って失礼にあたるのかもしれないのだが……。


   2 吉田一郎(大宮市議というか「自称さいたま市」市議)


  授賞理由

 高円寺「素人の乱」の中心メンバーというか創立メンバー3人のうちの1人である山下陽光氏(他2名は云わずとしれた松本哉“総帥”と小笠原慶太氏)が、この4月、福岡に移住してきた。2014年に東京から郷里長崎へ妻子と共に移り、約3年を経て、今度は福岡へと移ってきたのである。4月11日に新・山下氏邸で移住記念パーティがあり、そこで山下氏の口から吉田一郎なる埼玉の風変わりな市議会議員の存在を知らされた。
 なんでも自称さいたま市(云うまでもなく私は“平成の大合併”への頑固な否定派なのでこう書く)が、「さいたまトリエンナーレ」なる芸術イベントを昨年、“第1回”として開催したらしく、“途中でやめる”という自ら「想像以上に低クオリティ」と称するヘンテコなファッション・ブランドを運営している山下氏は、すでに現代美術シーンでもヒトカドの存在であり、同イベントにも出品者(出演者?)としてお声がかかったわけだ。
 関わり始めてみて、「さいたまトリエンナーレ」の開催に強硬に反対し続けている市議会議員がいることを山下氏は知ったらしい。以下、山下氏の文章から、ちょっと長いが引く。なお文中の「新しい骨董」とは、山下氏も参加しているアート・ユニットか何かの名称である。
          ※          ※          ※
 さいたま市議の吉田一郎氏の発言は血税を使ったイベントで人も集まらずアートなんかやるより危険な道路整備等に優先してお金を使っていくべきだという凄くまっとうな反対意見だけど、吉田一郎氏の言葉の言い回しや立ち振る舞いなどが、やたらとしなやかで、声がとおる。この方は何者なんだろうか?と調べてみたら、香港がイギリス領土だった頃に存在した九龍城に住んでた方で、九龍城は香港の中で唯一中国の国土になっていた、いわゆる飛び地と言われた場所で、そこから吉田氏は世界中の飛び地を研究された本を執筆。『世界飛び地大全』(引用者註.2014年・角川ソフィア文庫)。この本がまたクソ面白くて読んでる途中で下道氏に貸してしまったので今度返してね。
 さらに吉田氏はタモリのインチキ四カ国語マージャンに影響を受けまくったというネット情報を入手。
 吉田一郎氏の動画を観まくると、外国人に選挙権を与えない方がいいと言ってる動画があって、文字情報だけでみると差別主義者っぽいが、吉田一郎氏が言ってるのはその部分ではない。彼はさいたま市議会で広東語で選挙運動をしても理解できないでしょ、と突然広東語で話し始めると議長から吉田議員やめなさいと言われながら、いいえやめません。と続いてですよ、コレが北京語だった場合はどうなりますか?と北京語で話しはじめる。
 彼が影響を受けたハナモゲラマージャンをさいたま市議会で実現している。どうですかこの反転のさせ方。
 僕は吉田一郎さんと出会い方を間違えただけで、きちんとお会いして謝罪して話すとわかりあえるのではないかと思った。
 吉田一郎氏を新しい骨董のメンバーとして一緒にやりたい。さいたまトリエンナーレの飛び地として吉田一郎氏が言いたい放題のさいたまトリエンナーレ批判をやりまくったら最高だと思い、新しい骨董メンバーで大盛り上がり、著作を読み、事務局にその事を伝えると全力でやめてくださいと言われた。
 僕は脱原発デモとか反対運動とかやりまくったんですが、今回のこの騒動で初めて反対される立場に立たされた。
 そして反対された側の対応は、身内を守るだけで反対された中身については一切考えないということ、それは吉田一郎氏に対してとても失礼な対応だと思う。
 しかし、反対運動された側は反対している中身やその人よりも自分らが酷い事をやっているのを隠し、問題のないような規制だらけでがんじがらめにして反対やクレームを言われないようにする対応しかできてない。
 マジかマジかでやめたくて仕方ない。

          ※          ※          ※
 結局、山下氏らは吉田氏と会って飲み交わした際の焼酎のボトル(吉田氏のサイン入り)を“作品”として出品したらしく、山下氏の対応もさすがだが、このエピソードを聞いて、私もガゼン吉田氏に興味が湧いた。ちょっと調べたところで、実は私も吉田氏の著作を1冊持っており、すでに読んでいたことにも気がついた(『国マニア』2005年・ちくま文庫)。
 昨年の外山賞発表の際にも少し書いたが、我が九州ファシスト党の“芸術部門”担当者たちは、“芸術批評誌状の芸術弾圧機構”と称する『メインストリーム』での活動を通して、このテのくだらない“街おこしアート”イベントの撲滅に力を入れている。が、いかんせんコミュ障の2人組のことゆえ、その試みは毎回“介入失敗”の敗北続きで、それらの“失敗談”をむしろネタにして、美術シーンの一部でちょっと話題にしてもらえている程度のフガイなさである。それに比してこの吉田氏は、もちろん時勢ゆえイベント開催の阻止までは無理ながら、きちんと“運動”を組織して強力な反対運動を展開しているらしい。スゴイじゃないか。
 吉田氏は、「さいたまトリエンナーレ」に関連して、1億2千万円の予算を投じた“プレイベント”への来場者が1日あたりわずか10人ほどでしかなかった事実を暴露し、さらなる追加予算案の約2億円を3分の1近い約7千万円へと減額させるという具体的戦果も上げている様子なのである(氏の「市政レポート」の「2016年1月特別号」などに詳細あり。しかも吉田氏はその減額案にさえ「ゼロにすべきだ」と反対票を投じていて、その徹底ぶりがまた素晴らしい)。
 さらに調べてみると、吉田氏、やはり正しくも私と同様、頑固な“平成の大合併”撤回派らしく、現在でも引き続き“大宮市の分離独立”を掲げており、「大宮市亡命市役所」なるサイトまで立ち上げている。とことん素晴らしい。
 そもそも吉田氏は、自称さいたま市を解散させ、浦和・大宮・与野の旧3市(現在ではさらに岩槻市も滅ぼされて旧4市)に当然にも戻すべく、選挙に出始めたらしいのだ。01年に自称さいたま市長選に「住民投票で合併解消」を掲げて立候補したのが最初で、さらに03年の自称さいたま市議選での落選を経て、私が都知事選に立候補したのと同じ07年、ついに初当選を果たしている。現在、当選4回(その間に1度、2013年にまた自称さいたま市長選に立候補して落選している)。
 改めて云うまでもなく私はそもそも民主主義・議会主義それ自体に反対しているファシストである。が、こういう議員になら是非ともたくさん誕生してほしいし、実は将来的に我が九州ファシスト党が議会進出する際にも、ファシスト党議員たちにはこの吉田氏のような方向での活動をさせるつもりでいたりする。革命政党にとって議会なんぞパフォーマンスによる宣伝の場にすぎず、政権獲得は議会進出以外の方法で追求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そういう意味でも、吉田氏は見事なモデルである。
 ちなみに吉田氏はどうやら、かの有名な(?)“法大黒ヘル”の出身者でもあるらしく、06年以来の法大当局による学生運動弾圧に抗議する「統一OB会」に参加していた時期もある、とつい先日、元・法大黒ヘル指導者の中川文人氏から聞かされたところ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