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올린 글을 모 카페에 퍼 갔는데, 한국어 학습용 일본 사이트인 Kpedia라는 사이트에 관한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은 엉터리가 아주 많다며 '실세'라는 한국 한자어를 소개하는 글의 예문을 엉터리로 번역해 놓은 예를 제시했습니다. 바로 아래의 예문입니다.

 

그는 현 정권의 강력한 실세 중 한 명이다.

彼は現政権の強力な実勢中の一人だ。

 

하지만 일본은 実勢라는 한자어를 거의 쓰지 않고, 쓰는 경우도 그 뜻이 한국과는 다릅니다. 그런데도 저런 번역을 올려놨더군요. 근데 이 '실세'에 관해서도 '책에 못 실은 코패니즈 한자어' 카테고리에 올릴 예정이어서 이에 관해 검색하다가 위의 예문을 발견한 거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서 하이네이티브에 질문을 올렸습니다. 일본에서도 実勢를 위와 같은 식으로 쓰냐고 말이죠.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이 아래와 같습니다.

즉, 일본은 '실세'라는 한자어를 이런 식으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일본은 '실세'라는 한자어를 어떤 의미로 쓸까요? 주로 부동산이나 경제 등의 용어로만 쓰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동산 분야에서는 実勢価格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건 공시 지가와 반대되는 개념인 '실거래가'라는 뜻으로 쓰이는 겁니다.

그리고 상품/제품을 소개하는 기사의 경우도 예컨대 '実勢価格:OO円'이라는 식으로 쓰는데, 이건 정가와 달리 실제로 판매되는 가격, 실제 판매가라는 뜻입니다. 부동산에서 말하는 '실거래가'와 비슷한 개념이죠. 이 역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일본 사이트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아래와 같은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경제 분야에서는 実勢相場、実勢レート 등의 용어를 쓰는데 이걸 줄여서 그냥 実勢라고만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쓰였을 경우의 実勢는 문맥에 따라 실제 가치, 실제 시세, 실제 환율 등으로 적절히 번역해 줘야겠죠. 아래 캡처를 참고하세요.

 

 

그렇다면 한국어 '실세'는 일본어로 어떻게 번역해 줘야 할까요? 이 '실세'를 일본어로 번역해 놓은 걸 보면 実力者라고 해 놓은 게 많습니다. 한국어로 실력이 좋다, 안 좋다라고 할 때의 그 '실력'이 아니라, 다시 말해 '실력 있는(좋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힘(권력)을 가진 사람, 실질적인 힘(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인 것이죠.

그리고 이 실세라는 한자어를 다루는 김에 '비선 실세'라는 용어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해 두고자 합니다. 책에서도 츠케다시로 간략히 썼지만 거기선 「影の権力者」를 정답으로 제시했었죠. 그런데 1권에서 소개했던 일본의 한자어 중에 이에 가까운 뜻을 지닌 게 있습니다. 뭘까요? 그건 바로...

 

黒幕

 

표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실질적 권력, 힘을 가지고 조종하는 자, 사주하는 자라는 뜻이니 한국어 '비선 실세'와 비슷한 점이 있지 않나요?

내친 김에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일본어를 하나 더 소개하죠. 그건 바로...

 

闇将軍(やみしょうぐん)

 

이 단어에 대해 네이버와 다음은 각각 아래와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1. [속어] 막후에서 나쁜 일을 꾸며 지시하는 권력자; 막후 조종자.

다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

 

다만, 확인차 일본 사이트에 질문을 했더니 두 사람이 답했는데 둘 다 모른다는 답변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표현을 접한 적이 실제로 있고, 또한 최순실 사태가 터졌을 당시 뉴스와 신문 지면을 도배했던 '비선 실세'라는 용어를 일본어로는 뭐라고 해야 할지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답변해 준 일본인 중 한 명이 바로 이 闇将軍을 제시했었습니다. 그래서 메모해 뒀던 게 아래.

 

 

위 메모에서는 '권력자'가 아니라 '실력자'라고 돼 있죠.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진 자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죠. 아무튼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서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이 표현을 아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건 명확한 사실 같습니다. 방금 야후 뉴스에서 검색해 보니 역시나 사용례가 많지는 않지만 꽤 나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휘력 수준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인 듯합니다.

 

<코패니즈 한자어> 2, 3권 동시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