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맨마지막에 10개의 코패니즈 한자어를 한꺼번에 투척했습니다. 그중에 이 '가시화'라는 한자어도 있는데 책 지면을 줄이기 위해 블로그에다 씁니다.

먼저 일본은 옛날에는 '가시화'라는 한자어 자체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그 방증으로 제가 소개했던 사전 모음 사이트에 있는 사전 중에 이 '가시화'를 실은 게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인터넷 사전인 goo, 코토방크, weblio 사전에만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도 이 '가시화'라는 한자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90년대에 들어서라고 합니다. 이 3개의 인터넷 사전 공히 보충설명으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補説]「可視化」「見える化」とも1990年代から使用が目立つ。ビジネス用語としては「見える化」、一般には「可視化」が多く使われる。

특히, 일본의 경우 경찰과 검찰의 취조 과정과 취조 내용을 녹화, 녹음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게끔 법제화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取り調べの可視化」라는 표현을 했고 이게 뉴스나 신문 등에서 자주 보도됨으로써 일반에 더욱 널리 알려진 게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이걸 그대로 '취조의 가시화'라고 번역하면 좀 이상하죠?

그리고 또 일본은 이와는 다른 뜻으로도 쓰이는데 그 역시 한국에서 말하는 '가시화'와는 뜻과 뉘앙스가 다릅니다. 일본의 '가시화'는 예컨대 에너지 같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수치, 도표, 그래프 등으로 나타내서 사람들이 알기 쉽게 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말의 뜻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이트에서는 제시한 예문을 보실까요?

在庫の推移をグラフにして可視化することによって三ヶ月以上不動の在庫を明らかにし、

ただ数字を羅列するだけではわかりにくいので、インフォグラフィックスを用いてデータの可視化をするなどの工夫が必要だろう。

심지어 드라마 등의 등장인물 관계도도 '가시화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껏 몰랐던 분은 이제 감이 잡히겠죠? 다시 말해 한국에서 쓰이는 '가시화'와는 전혀 다른 뉘앙스로 쓴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 '가시화'라는 말이 쓰인 예문을 몇 개 직역을 해서 일본 사이트에 질문을 올렸습니다. 그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이분은 친절하게도 제가 제시한 예문 전체를 일일이 다른 일본어로 바꿔줬네요. 즉, 한국에서 쓰인 '가시화'를 그대로 可視化라고 하면 부자연스럽다는 말인 거죠. 다음 보시죠.

 

이분은 앞선 일본인이 전체를 다 고쳐서인지 두 개만 의견을 말해 줬는데, 이렇듯 顕在化와 具体化라는 역어를 제시해 줬습니다. 다음은 다른 사이트의 답변.

 

 

보시듯 이분 역시 可視化가 아니라 具現化, 表面化, 顕在化라는 표현을 쓰는 게 좋겠다고 하네요. 마지막 분의 답변은 생각을 좀 해 볼 필요가 있을 거 같은데 이웃님들 의견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이분은 제가 제시한 예문은 부자연스럽지만 Kpedia에서 '가시화'의 예문으로 제시한 건 '일본에서의 용례와 다르지 않다'고 했네요. 어떤가요? 얼핏 번역된 한국어를 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죠? 하지만 이 역시 한국어 '가시화'와는 달리 방사선을 '가시화'한다는 건 방사선을 눈에 보이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방사선을 도표나 그래프 등으로 나타내서 사람들이 알기 쉽게 한다는 뜻인 것이죠. 이게 만약에 한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거라면 '방사선을 가시화하는 기술', '빛을 가시화하는 기술', '냄새를 가시화하는 기술'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 건지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도표나 수치, 그래프로 나타내는 기술, 센서는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혹시 이에 대하 잘 아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튼 한국어 '가시화'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어떻게 풀이해 놨을까요?

1.

어떤 현상이 실제로 드러남. 또는 실제로 드러나게 함.

여권은 대선 후보의 조기 가시화가 선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드러남, 또는 실제로 드러나게 함'이라는 말은 도표, 수치, 그래프 등으로 알기 쉽게 만든다는 뜻하고는 거리가 멀죠. 그리고 예문의 '대선 후보의 조기 가시화'라는 말은 대선 후보를 빨리 드러내는 것, 빨리 정하는 것이란 말이죠. 근데 이걸 그대로 「候補の早期可視化」라고 번역하면 일본어로서는 어색하다는 말인 것이죠.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앙대 앙대 코패니즈 한자어> 책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