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저와 인연이 오랜 어떤 아마추어 자막러의 번역을 감상을 겸해서 감수가 절대 아닌 조언을 한 적이 있다고 했었죠. 그중에 <세키가하라(나중에 정식 수입된 후 '세키가하라 대전투'로 타이틀이 바뀜) >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이 영화 역시 감수가 절대 아닌 조언 정도로 그쳤는데, 이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에서 그 아마추어 자막러의 번역을 쓰겠다고 하는 대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그분께서 다시 정식으로 '감수'를 해 달라고 하더군요. 감수료도 지불하겠다면서요. 그분 입장에서는 정식 번역가가 될 수 있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이니 자신이 받을 번역료가 줄어들더라도 전문가(?)의 감수를 받고 싶었겠죠.

사실 인연도 오래되고 했으니 웬만하면 감수료 안 받았겠지만, 이 영화는 대본(일어 자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어려운 영화였기 때문에(보신 분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겁니다) 안 받고 하기에는 제가 들여야 할 시간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없이 받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고 하셔셔요.

아무튼 이 영화에서 바로 오늘의 주제인 '질타'라는 한자어가 나오는데, '질타'의 쓰임새가 한국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코패니즈 한자어 한 개 줍줍한 거죠. ^^

어떤 상황에서 이 '질타'라는 한자어가 나왔냐 하면,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인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에게 참패를 당한 서군의 수장 이시다 미츠나리가 달아나서 한 민가에 숨어 있는데 추격대가 쫓아옵니다. 그때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追っ手が迫ると、この男は、「お逃げあそばせ」と三成を叱咤した。

추격대가 다가오자 이 남자는 '도망치십시오'라며 미츠나리를 '질타했다(꾸짖었다)'???

응? 여기서 질타? 싶은 생각이 드시죠? 그리고 실제로 그 남자의 대사를 들어 보면 큰소리로 꾸짖는다거나 화를 내며 야단치는 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叱咤(しった)라는 한자어를 쓰네? 싶어서 당연히 조사를 해 봤죠. 먼저 한국의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아주 심플하게 '큰소리로 꾸짖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에서의 쓰임새도 꾸짖는다는 뉘앙스로만 쓰이죠.

그럼 일본의 국어사전을 보실까요? 거의 모든 사전의 뜻풀이가 비슷한데 코지엔 사전만 다릅니다. 보실까요?

 

 

노기를 드러내며 큰소리로 꾸짖는 것.

한국과 다를 바가 별로 없죠?

그런데 그 외의 거의 모든 사전에는 이것 말고 하나의 뜻풀이가 더 있습니다. 그러니 그중에 다이지린 사전의 예만 소개합니다.

 

 

 

보셨듯이 코지엔을 제외한 제가 수시로 찾아보는 모든 사전에 2번 뜻풀이가 있습니다. '큰소리로 격려하는 것'이라는 뜻풀이가 말이죠. 근데 코지엔 사전을 보시면 밑에 '질타격려'라는 말의 링크가 걸려 있죠? 네, 일본은 '질타'를 단독으로도 쓰지만 '격려'와 같이 묶어서 '질타격려'라는 사자성어 형태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큰소리로 꾸짖듯이 격려하며 기분(투지/사기)을 붇돋우는 것.

이건 제 개인적인 추측인데 일본도 '질타'라는 한자어의 자의만으로 해석하면 한국과 똑같이 '큰소리로 꾸짖는 것'이라는 뜻이었는데 '질타격려'라는 형태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질타'라는 한자어의 뜻 역시 '격려하는 것'이라는 뉘앙스가 내포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일본의 '질타'라는 한자어는 우리와 다르게 단순히 꾸짖는 것만이 아니라 격려하고 사기, 투지 등을 북돋우는 것이라는 뉘앙스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근데 이 한자어가 얼마 전에 제가 한 번역에서도 또 나왔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전우(나카마)의 목소리만이 의지가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互いに叱咤し、支え合うことを忘れるな。

서로 꾸짖고(?) 지탱해 주는 걸 잊지 마???

한국사람의 감각으로는 여기서 '질타'라는 한자어를 쓰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하죠? 다시 말해 이렇게 쓰인 일본의 한자어 '질타'는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우는 것이라는 뉘앙스로 쓰인 거란 말이죠. 이제 이해가 되시죠? 그러니 앞으로 번역을 할 때나, 번역이 아니더라도 이 '질타'라는 일본의 한자어가 나오면 문맥을 잘 살펴서 어떤 뜻으로 쓴 건지를 자세히 뜯어볼 필요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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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대 앙~대 코패니즈 한자어> 출간

■ 책 소개 ※ 이 책을 읽으셔야 하는 분들! 첫째,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인 학습자들. 초급자들은 무리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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