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부터 일이 좀 몰려서 오늘 오전까지 마감인 번역 보내고 나서 지난 '의리'에 관한 글 연재해 올립니다.

지난 시간에 일본은 한국어 ‘의리의 사나이’라는 뜻으로서 「義理の男」라고 번역하는 건 일반적인 표현도 아니거니와 다른 의미로도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고 했죠. 그래서 그분에게 그렇다면 「義理のある男」라고 말하면 일본인들은 어떤 뜻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직접 캡처한 것부터 보시죠.

 

 

 

자, 빨간 밑줄을 그은 부분을 보시죠. 일본어 義理라는 말은 A와 B 사이에 발생하는 부채와 채권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죠. 앞선 포스팅에서

 

あの方には義理があるので、裏切ることはできません。

 

위와 같은 문장에서 쓰인 일본어 義理는 한국과는 달리 갚아야할 마음의 빚, 신세를 진 게 있다는 뉘앙스라고 한 근거로 들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일본어 고수라면 알고 계신 분도 많겠지만 의외라고 생각한 분이 훨씬 더 많지 않나요?

 

즉, 일본에서 쓰이는 義理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거의 남에게 진 신세, 마음의 빚, 따라서 그걸 갚아야 할 (좋게 말하면)도리, (까놓고 말하면)심적인 부담이라는 뉘앙스로 쓰이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한국의 경우도 물론 신세를 진 사람에게 신세를 갚는 걸 ‘의리를 지킨다’라고도 하지만, 신세를 진 게 있든 없든 어떤 관계로 맺어진 이상, 예를 들어 일단 친구 관계로 맺어진 이상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으로도 쓰이잖아요? 꼭 친구한테 어떤 빚을 졌기 때문에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한때 ‘으~리’라는 말이 자신의 시그니처가 됐던 배우 김보성 씨를 ‘의리의 사나이’라고 자칭, 타칭을 하는 건 김보성 씨가 주변 사람들한테 온통 신세를 지고 빚을 지고 있었고 그걸 반드시 갚는다고 해서 그렇게 표현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여전히 미심쩍은 분이 계신가요? 그럼 이건 어떤가요? 일본어 義理의 쓰임새에 대해 여기저기 물어보러 다니던 중에 겪은 흥미로운 에피스드가 있는데, 이에 관해서 제 책에 다음과 같이 써 놨습니다.

여기서 또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일본어 義理의 뉘앙스를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여기저기 질문하며 다니다가 이 「義理堅い」의 뉘앙스에 대해 재삼 확인할 수 있었던 일이 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공범 중에 한 명이 경찰에 붙잡힌 상태에서 나머지 공범들이 나누는 대화라는 전제를 깔고, ‘그 녀석은 의리 있는(義理堅い) 녀석이라서 우리에 관해 쉽게 불거나 하진 않을 거야’라는 걸 일본어로 작문을 한 후, 이 문장에서 이런 식으로도 「義理堅い」를 쓸 수 있냐고 질문을 했더니, 흥미롭게도 ‘만일 그 붙잡힌 사람이 다른 공범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거나 신세를 졌던 적이 있는 경우라면 「義理堅い」를 써도 자연스럽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変に義理堅い」나 「妙に義理堅い」라고 해야겠죠’라는 답변을 한 거였습니다. 여러분, 어떠신가요? 일본어 義理의 뉘앙스가 좀 더 확실히 감이 잡히지 않나요?

 

이제 조금 더 확실해졌나요? 신세 진 게 없고, 그래서 갚아야 할 것도 없으면 「義理堅い」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이 표현을 쓰려면 「変に義理堅い」나 「妙に義理堅い」라는 식으로 말해야 자연스럽다는 말인 것이죠. 자, 그럼 다시 이 글의 주제로 되돌아가죠. 일본인에게 「義理の(が)ある男」라고 말하면 일본인은 어떤 뜻으로 받아들일까요?

 

 

 

앞선 캡처 사진처럼 답변을 해 주긴 했는데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확인 사살을 하기 위해 제가 재차 질문을 위와 같이 던졌습니다. 「義理のある男」라는 말은 예컨대 A가 B에게 신세를 졌거나 도움을 받은 경우 A에게 있어서 B는 ‘갚아야 할 (일본어)의리가 있는 남자’라는 뜻이냐고 했더니 「その通りです(맞습니다)」라고 답을 했죠. 그러니까 B는 A가 생각하기에 (한국어)의리 있는 남자가 아니라 A가 갚아야 할 빚(신세진 것)이 있는 남자라는 뜻이라는 겁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 뒤에 다시 물었죠. 이렇게 말할 때의 일본어 義理는 원래의 뜻인 ‘사람이 지켜야 할 올바른 길, 도리’라는 뜻이 아니라 ‘갚아야만 하는 것(빚, 신세)’이라는 뜻으로 쓰인 게 맞냐고 물으니까 「その通りです(맞습니다)」라고 합니다.

 

또, 맨 마지막 빨간 밑줄 부분을 보시면 ‘현대의 일본에서는 義理를 이런 의미(원래의 의미)로 쓰는 케이스는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적어 놨죠.

 

아직도 수긍을 못 하는 분은 안 계시겠죠? 비단 저분만 그렇게 대답한 게 아닙니다. 아마도 이 ‘의리’라는 한자어에 대해서 질문한 횟수가 거의 탑급인 것 같은데, 제가 질문했던 모든 일본인들이 ‘오늘날은’ 일본 한자어 義理가 위와 같은 뉘앙스(신세, 빚)로 주로 쓰인다는 답변을 해 줬습니다. 그러니 한국어 ‘의리 있는 사나이’라는 표현을 「義理のある男」라고 하면 안 된다는 사실, 이 경우에는 그나마 「義理堅い男」라고 해야 한국어의 뜻과 비슷해진다는 걸 이젠 다들 아시겠죠? 따라서 그 방송국 사이트에서 설명해 놓은 것처럼 ‘(너 참) 의리가 있구나’를 「義理があるね」라고 번역하는 건 황당한 오역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시죠?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하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어 「義理堅い」라는 말을 모든 경우에 ‘의리(가) 있는’이라고 번역해도 될까요?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앙대 앙대 코패니즈 한자어>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