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곳은 부산. 부산 중에서도 한여름에도 선풍기로 날 수 있을 만큼 시원한 곳에 사는데 요즘 폭염은 장난이 아니네요. 앞으로도 매년 이런 폭염이 계속된다면 에어컨 구입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ㅠ.ㅠ

그래서 오늘은 번역하다가 너무도 더워서 가장 뜨거운 시간대는 피하고 일은 저녁에 하자는 생각에, 시원한 영화관에서 모처럼 영화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고른 것이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하지만 조금 감상하다가 아니나 다를까 직업병이 도지고 말았습니다. 자막이 자꾸 신경에 거슬려서 영화 감상도 제대로 못 하고 말았다는...  --;;

요즘 한창 극장 개봉작들 번역의 질 문제 때문에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죠.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려 두고 가겠는데 이 글은 번역의 질을 문제 삼는 게 아니며, 또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만 문제 삼는 것도 아니며, 요즘 극장 영화들 자막의 추세 전반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글입니다. 이 영화 말고도 자막이 이런 식인 게 수두룩합니다. 또한 이 글은 영상번역을 직업으로 갖고 있지만 여전히 줄 나누기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사람들, 영상번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아울러 영화사 관계자들에게 당부드리는 글입니다.

영상번역의 경우 자막 글자수를 제한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줄 나누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선 이미 다른 게시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오늘 다시 한 번 왜 영상번역에서 줄을 나눠 주는 게 중요한지에 관해 실례를 들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이 영화나 드라마의 자막은 해당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하되, 작품 감상을 방해하면 절대 안 됩니다. 자막을 읽느라 시종 눈동자를 좌우로 돌리고, 심지어 고개까지 돌려야 할 정도라면 제대로 된 영화 감상이 될까요? 비근한 예로서 아래의 캡쳐 화면을 한번 보시죠. <브이아이피> 미리보기 영상 중에서 캡처한 것입니다)
 

 

미리보기 영상 중엔 이게 가장 긴 자막인 거 같아서 이걸 캡처했지만, 제 기억으로는 이것보다 더 긴 자막도 분명 있었습니다.

저거 한번 읽어 보세요. 조그만 컴퓨터 모니터 화면인데도 저 자막을 다 읽으려면 눈동자를 좌에서 우로 굴려야 하죠? 그런데 엄청나게 큰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에서 저 자막을 읽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눈동자뿐만 아니라 고개까지 돌려야 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제가 보러 간 날은 객석이 거의 다 차서, 영화 볼 때 옆에 사람 있는 걸 싫어하는 저로서는 일부러 앞줄을 선택했는데 한국 영화에서 저런 자막을 볼 줄 알았다면 옆에 사람이 있어서 좀 답답하더라도 뒤쪽 좌석을 선택했겠죠. ㅠ.ㅠ
아무튼 이 영화 보면서 고개 아파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나마 한국 영화라서 자막의 숫자가 적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죠.

자막 글자수 제한은 보통 바이트로 표현하는데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한글은 한 글자가 2바이트입니다. 저 자막 한번 세어 볼까요? 무려 29글자에 공백이 9개니까 38바이트 + 9바이트. 무려 47바이트네요. --;;;

케이블 등에서 방영되는 영화나 드라마 자막의 경우 글자수 제한은 일반적으로 공백 포함해서 32바이트 전후입니다.  왜 글자수 제한을 두느냐! 글자수가 너무 많으면 자막을 다 읽을 새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글자가 너무 길게 늘어져 있으면 말씀드렷듯이 눈동자 노동이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2바이트 정도면 눈동자를 수고스럽게 많이 굴리지 않아도 '비교적'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는 판단에 저 정도 수치로 정한 거겠죠.

그리고 업체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두 줄짜리 자막이 아니라 한 줄짜리 자막이라도 길이가 25~27바이트가 넘어가면 줄을 나누라는 지침이 있습니다. 왜 줄을 나눠 줄까요? 한 줄 당 제한된 바이트 수는 32바이트지만, 32바이트짜리 자막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것보다 두 줄로 나눠 주면 그만큼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는 수고로움을 덜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지금 갖고 계신 아무 영화나 드라마 꺼내셔서 자막을 한번 살펴보세요.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는 자막보다 두 줄로 나눠 준 자막이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걸 아실 겁니다.

조그만 TV 화면으로 보는 자막도 32바이트가 한계 수치인데 어마어마한 영화관 스크린에서 보는 자막이 47바이트? 이건 심하게 말하면 화면은 보지 말고 자막만 읽으란 소리랑 마찬가지입니다. --;;

그래서 영화관에서 걸리는 자막의 한 줄당 글자수는 25~27바이트 정도로 제한을 한 것인데, 요즘은 케이블 영화나 드라마 자막수와 비슷한 자막이 부지기수입니다. 비단 이 <미션 임파서블>뿐이 아니라요.
(솔직히 번역하는 입장에선 글자수 제한이 덜하면 더 편한 면은 있습니다. 왜? 축약시켜야 하는 수고로움이 그만큼 줄어드니까요. 하지만 번역가는 편할지 몰라도 감상하는 관객에게는 고역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의 자막의 경우 한 줄이 무려 32바이트에서 심한 건 34바이트 정도 되는데도 줄을 나눠 주지 않고 그대로 한 줄로 처리한 게 부지기수였어요. 이 영화사 관계자에게 이 영화를 맨 앞줄에 앉아서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럼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왜 자막에서 줄 나누기가 중요한지 실감하실 겁니다.

영상번역에 관심 있는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영화 감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한다 생각하고 이 영화를 앞쪽 줄에서 한번 관람해 보세요. 그럼 제 이 글을 100번 읽는 것보다 줄 나누기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영화는 역시 재밌더군요. ^^;;
시리즈물은 뒤로 갈수록 좀 허술하고 엉성하기 마련인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아직까지도 저를 만족시켜 준 영화였습니다.(이번엔 제대로 영화를 감상하러 시간 내서 한 번 더 보고 싶을 정도예요)
여러분도 꼭 보세요.

글쓰느라 시간 잡아먹었으니, 후딱 저녁 먹고 저는 이제 열일 모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