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大震災>上-ソウル発・在日同胞と支援運動 | トンポ・トンネ 日々イモジョ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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ソウル発「カトリックニュース」(4・8)「在日同胞と朝鮮学校の支援運動を繰り広げるきむ・ミョンジュン監督」
 
ソウルでの被災朝鮮学校支援団体「ちびた鉛筆」のサイトより転載
<몽당연필>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조선학교에 대해서도 압축해서 잘 다뤄 준 기사 입니다. 
정현진 기자님께 감사. ^^



재일동포와 조선학교 지원운동 벌이는 김명준 감독
더 이상 우리 동포들이 외롭지 않도록, 서로 알고 소통해야
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2011년 04월 07일 (목) 18:55:33정현진 기자 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 regina@nahnews.ne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
"대지는 흔들어도 웃으며 가자" 

이 문장은 지진 피해를 입은 센다이의 도호쿠(동북) 조선초중급학교 교장선생님이 제안으로 교사들이 한자씩 써서 식당 벽에 붙여 놓은 구호다. 

이번 대지진으로 피해가 가장 컸던 현재 도호쿠 조선학교는 벽과 바닥에 금이 가는 등 붕괴 위기에 있고 졸업식도 미뤄진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도호쿠 조선학교 뿐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학교는 원전 때문에 수업을 할 수 없고 도쿄조선중급학교는 체육관 건물 천장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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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진 피해를 입은 도호쿠 조선학교의 모습 (사진제공/몽당연필)

이런 시급한 상황이 누군가를 바쁘게 만들었다. 일본 홋카이도 조선학교에서 3년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 <우리학교>의 김명준 감독이다. 2006년 개봉 후, <우리학교>의 팬클럽 회원들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매 년 기념 상영은 물론,  홋카이도 조선학교의 후원과 일본 조선학교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달,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재일동포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음에도 동포들간의 자구책 외에는 지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자, 팬카페를 중심으로 모금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또한 국내에서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지원은 물론, 조선학교를 제대로 알리자는 제안을 했다. 영화 제작을 위한 3년, 그리고 그로부터 4년, 영화로 인해 홋카이도 조선학교와 인연을 맺고, 오랫동안 재일동포을 위한 일에 천착해 온 김명준 감독에게 그가 만난 재일동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어요. 모르니까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거죠. 그래서 제대로 알려 보려고 합니다. 학교의 복구가 급하기 때문에 모금을 시작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재일동포에 대해 바로 알리고, 그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하는 겁니다” 

초ㆍ중ㆍ고급학교와 1개 대학교로 운영되며, 한 때 540여 개에 달했지만 현재는 학생 수 감소와 재정난으로 80여 개만 남아 있는 조선학교. 그리고 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재일동포들. 여전히 너무 많은 이들이 모르거나 왜곡되게 알고 있는 그들의 삶이 영화로 드러난 후, 시나브로 그들을 이해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어떤 이유로든 여전히 ‘조선적’으로 남아 있는 재일동포들에게 일본사회는 가혹하다. 그러나 일본정부 보다 재일동포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은 한국정부다. 재일동포의 처지는 식민지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다. 한국정부는 1965년 맺어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재일동포의 징용·징병 피해에 대한 권리가 소멸됐다는 일본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재일동포의 권리회복을 위해 나서거나 청구권협정으로 받은 3억 달러의 무상자금으로 배상을 해줘야 하지만, 한국정부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재일동포들은 스스로를 ‘기민’(棄民)으로, 한국정부의 재일동포에 대한 정책을 ‘기민정책’이라고 말하며 분노와 체념으로 지내는 이유다. 

김명준 감독은 “건국 당시부터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 남조선과도정부 법률 제11호(1948.5.11)’에 의하면, 한국과 북한은 ‘조선적’ 동포를 각각 자국민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면서면서, “법률적으로도 이들은 우리 국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인류애와 동포애를 발휘해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동포들에게 이데올로기의 잣대만을 들이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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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리학교> 4주년 기념 상영일, 김명준 감독이 관객들에게 조선학교와 재일동포 지원에 대해 이야기했다.(사진/정현진 기자)

‘조선적’, 외로운 가상의 이름 

조선적 재일동포 문제는 해방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전까지 일본 국적이었던 재일 조선인들에게 일본 정부와 맥아더는 일방적으로 ‘조선’이라는 임시 국적을 부여했다. 현재까지 재일 조선인들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외국인이다.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민이지만, 사실상 국적이 아닌 존재의 표시일 뿐이다. 가상의 나라에 사는 국민인 셈이다. 

김명준 감독은 “국적이 어디인가는 동포사회 안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삶과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귀화한다고 해도 비난받지 않는다”면서, “굳이 구분하자면 국적이 아닌 ‘태도’다. ‘조선’을 ‘조선인민공화국’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단된 조국의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어서 ‘조선’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또 한국 국적을 선택하고도 조총련 활동을 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과거 재일동포들은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나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상관없이 서로 소통하며 살아갔다. 오히려 한일협정 이후 남한과 일본이 이데올로기 문제로 민단을 지지하면서 갈등을 일으켰고 점점 알력관계가 생기면서 소원해진 것이다. 

조선학교,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든 학교가 배척의 이유 

재일동포들이 조선학교를 세운 것은, 해방 후 조국에 돌아가려면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다. 해방 당시 재일동포는 약 200만 명이었다. 그러나 이 중 140만 명만 귀국할 수 있었고 60만 명은 일본에 영구히 남았다. 남은 동포들이 키우고 지킨 조선학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만든 보루인 셈이다. 지금까지 조선학교는 동포사회에서 삶의 중심이다. 모든 것이 학교를 통해 이뤄지고, 학교가 사라진다면 지역 동포 공동체가 와해될 정도라고 한다. 

이 학교에는 조선적, 한국국적, 일본국적을 가진 재일 동포들이 모두 함께 있는 이른바 국제학교다. 국적을 따지지 않고, 원하는 동포라면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모두 한국 이름을 쓴다. 일본인으로 귀화한 동포들도 이름을 두 개 갖는다. 한국이름을 본명으로, 일본 이름을 통명으로 쓴다. 

이 조선학교를 일본 정부는 정식 학교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설 학원과 같은 종류로 분류된다. 그래서 조선학교 외의 학교를 진학하려면 별도의 학력검증 시험을 치러야 한다. 최근 일본정부는 도호쿠, 사이타마 그리고 오사카 등의 우리학교에 지난 시기까지 지급해 오던 지자체 보조금을 중단했고, 지진 복구를 핑계로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논의를 무기한 연기했다. 

남과 북. 같은 조국, 다른 동포 

“재일동포들이 북한을 더 가깝게 생각하는 것은 사상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남한도 북한도 모두 고국이에요. 한국을 늘 그리워합니다. 기울기를 만드는 것은 남한과 북한 정부의 태도 때문입니다.” 

남한에서는 재일동포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공유조차 안되고 있지만 북한은 재일동포들을 여전히 식민시대를 살고 있는 동포라고 생각한다. 해방 후, 일본에 남은 이들은 학교의 필요성이 훨씬 절실해졌고, 스스로 모금과 자원 활동으로 학교를 운용했다. 어렵게 학교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이들에게 지원의 손길을 보낸 것은 북한이었다. 동포 1세대의 기억에 북한은 은인이다.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차별과 소외로 일관하는 일본에서 어떻게든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포들에게 왜 지원하지 않았을까요. 기민정책이 아닌 다른 방식이었다면, 그들이 오늘까지 그렇게 외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以下次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