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도쿄대공습과 조선인의 억울한 죽음・中
45명의 체험담을 담은 ‘유일한 증언록’
내가 도쿄대공습을 체험한 조선인의 증언을 수집하게 된 것은 27년 전인 1983년부터다. 당시 근무하던 재일교포신문사(1987년 휴간)에서 ‘식민지 과거를 잊지 말자’는 기획의 일환이었다. 1983년과 1985년 두 번에 걸쳐 장기 연재하여 25명의 증언을 실었다. 1972년 이후 조선인 강제 연행 조사사업이 전국적 범위에서 진행되면서 그때까지 아무도 손대지 못한 도쿄대공습이 화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체험자를 찾기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이 몇 해 동안 한국에서도 에도가와(江川)학교지원사업1)으로 이름이 알려진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의 당시 교육회 회장을 찾아갔다. 학교가 자리잡은 그 일대의 조선인 부락이 공습피해를 입은 지역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당시 회장이 공습피해자였다. 그 부락에서 일주일을 살다시피하며 취재했고, 그러는 동안 스미다구나 다이토구(台東區), 아라카와구(荒川區) 등 피해가 컸던 지역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쉽게도 교포사회나 일본인의 반향은 저조했다. 일본인은 물론 체험한 교포들마저 “미군기는 조선사람을 겨냥 삼아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많은 일본인이 이재했는데 하필이면 조선인인가”하는 말이 자자했다.
교포들은 큐슈(九州)나 홋카이도(北海道)에 있는 탄광이나 광산으로의 강제연행과 가혹한 노동실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조사사업도 지지부진한데 공습체험을 기록하는 데까지 관심이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신문사가 해산되고 공습에 대한 증언사업은 근 20년의 공백을 두고 2005년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도쿄대공습 관련 집회에서 조선인 피해상황을 보고해 달라는 요청이 왔던 것이다. 신문에서 연재한 글들을 재정리하여 25명의 증언을 게재한 간이 소책자가 참가자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켜 다시 증언수집사업에 나서게 되었다. 이것이 ‘도쿄대공습・조선인 이재를 기록하는 모임’(http://www4.ocn.ne.jp/~uil/45310.htm)의 출발이다.
이때부터 시작한 체험자 찾기는 힘들었다. 늙은 체험자들은 외출을 하지 않게 되었고 교포사회는 그 중심이 1세대로부터 식민지 조선을 체험하지 못한 2세대, 3세대로 옮겨진 것이다.
2006년에는 전년도 펴낸 간이소책자에다가 몇 가지 자료와 「전할 것이 없는 것이 분함(「語り継ぐもの」がない悔しさ)」이란 글을 엮어 새롭게 『도쿄대공습・조선인 이재의 기록』을 간행했고 2007년에는 새로 수집한 12명의 증언을 담아 제2편을 출판했다. 그 주제는 ‘왜 거기에 조선사람이 있었는가’였다.
신문에 연재할 때는 이재 당시 20대, 30대였던 증언자가 중심이었으나 제2편에서는 이재 당시 20대였던 증언자가 2명이고, 18세 미만의 미성년이었던 증언자가 10명이었다. 도쿄대공습 이후 6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 스무 살이었던 이재민도 이제 팔순을 넘기고 있다. 체험자의 고령화에 따라 이재 기록을 수집하는 것도 어렵게 되고 있다. 또한 거처를 옮긴 교포들도 적지 않아 체험자들 만나기 위하여 나가노현(長野縣) 등 여러 지방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어려움도 겹쳤다.
증언수집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고 도쿄대공습 1965년을 맞이하는 올해에는 새로이 8명의 증언자와 일본인의 조선인 이재에 대한 연구, 활동보고서 4편을 수록하여 제3집을 펴내게 되었다. 주제는 ‘매장된 희생자에게 빛을(「葬り去られる犧牲者」に光を)’이다. 1집과 2집을 합본하여 동시 출판하였다.
최근 일본인 연구자들이 도쿄대공습을 다룰 때면 우리가 펴낸 기록집을 인용하게 되고(예컨대, 2009년 『공습에 쫓긴 피해자들의 전후-도쿄와 총칭
사라지지 않는 기억(「空襲に追われた被害者たちの戦後―東京と重慶 消えない記録)』발간), 전국소개학동연락협의회(全國疎開學童連絡協議會)2) 등 관련 단체들도 이 기록집을 참고 삼아 기관지에 글을 내고 전시회 등을 열었다. 큰 전진이라 하겠다.
65돌을 맞이한 올해에는 일본의 3대 신문의 하나가 이와 같은 사실을 소개하고 도쿄 발 <연합뉴스>가 이를 다룬 것으로 보아 점차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의 증언수집사업이 힘입고 있다. 20년간의 공백을 메운 이 몇 해 동안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두 권의 기록집이 재일조선인의 원점을 알리는 유일한 이재 증언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以下次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