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에도 나는 미오를 만나러 호텔로 향했다.

미오는 순두부찌개를 먹고 싶어했기에 명동에 있는 가게를 찾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꼭 먹는 기본 코스랄까.

나는 밖에서 순두부찌개를 자주 사먹는 편은 아니었는데 미오 덕분에 전보다 좋아졌다.

갈비고기가 들어간 고기순두부찌개, 같은 메뉴를 시켜 에리와 맛있는 한 끼를 먹었다.

가게를 나와서 근처에 있는 마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명동은 워낙 서울의 유명지라서 외국인들이 많았고 마트 내부에는 모두 일본인 손님들이었다.

나는 미오와 미오의 친척에게 한국 과자를 추천해줬다.

 

초코하임 チョコハイム

화이트하임 ホワイトハイム

초록 포카칩 緑のポカチップ

파란 포카칩 青のポカチップ

스윙칩 スインチップ

 

초코하임과 화이트하임은 각각 초코와 화이트초코 크림이 들어간 바삭바삭한 과자인데 미오와 친척이 잘 먹었던 기억이 났다.

포카칩은 내가 좋아하는 감자칩으로 초록색을 더 좋아하지만 파란색도 같이 먹어보라고 추천해줬다.

스윙칩은 살짝 매콤한 감자칩인데 다른 매력이 있어서 추천했다.

미오는 '립파이 リップパイ' 라는 나뭇잎 모양의 초코칩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것도 구매하기로 했다.

이 날은 날씨가 흐렸고 마트를 나올 때는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리는 우산을 펼쳐들었다.

 

「今日は天気が悪いからホテルにいる方がいいかもね。(오늘은 날씨가 안 좋으니까 호텔에서 지내는 게 좋겠어.)」

 

「そうだね。(그러자.)」

 

나와 미오는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가방과 짐들을 정리하려는데 미오가 갑자기 말했다.

 

「チョンウォルは今日も夜に帰るの? (청월은 오늘 밤에 집에 돌아갈 거야?)」

 

「うーん、俺もミオと一緒にいたいけど試験があるから夜には帰るほうがいいと思ってる。(응ㅡ, 나도 미오랑 함께 있고 싶은데 시험이 있으니까 밤에는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そっか。残念ー (그렇구나. 아쉽네ㅡ)」

 

집에 돌아가겠다는 나의 말에 미오는 나지막이 아쉽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서 가만히 있는 미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오늘은 미오를 혼자 두면 안될 것 같은 왠지 모를 이상한 감각.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도 그 감각에 휩싸여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미오에게 말했다.

 

「今日の夜はミオと一緒にいるね~(오늘 밤은 미오랑 같이 있을게.)」

 

「ほんとう!? やったー! ありがとう、チョンウォル。(정말!? 신난다ㅡ! 고마워, 청월.)」

 

나는 생각해봤다.

공무원 시험이 중요한지 미오와의 인연이 중요한지를.

그것은 승부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은 납득하지 못하시겠지만.

미오와 하루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 공무원 시험에서 탈락한다면 애초부터 나의 실력 부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오와 함께 있기로 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안심이 되는 듯한 마음으로 저녁이 될 때까지 조금은 공부를 재개했다.

나의 생일이니까 밖에서 맛있는 가게에서 먹을 생각이었던 우리는 오히려 호텔에 계속 있는 것이 편해졌다.

 

「ミオ、今日もデリバリーしてホテルで食べようか? (미오, 오늘도 배달시켜서 호텔에서 먹을까?)」

 

「うん、そうしようー (응, 그러자ㅡ)」

 

「チキンはどう? ミオはいつもキョチョンチキンだけ食べてたから今度はBBQチキン食べてみる? (치킨은 어때? 미오가 항상 교촌치킨만 먹어봤으니까 이번에는 BBQ치킨 먹어볼래?)」

 

나는 미오에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치킨 브랜드인 BBQ치킨을 소개하기로 했다.

'황금올리브 치킨 金色オリーブチキン' 、가장 인기 있는 메뉴였다.

우리는 배달을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새로운 치킨을 먹었다.

미오는 BBQ치킨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교촌치킨 때보다 더 열심히 먹고 있었다.

 

「なにこれ、めっちゃ美味しい! さくさくして中の肉はすごく柔らかい。日本にもぜったい売ってほしいー (뭐야 이거, 너무 맛있어! 바삭바삭하고 안의 살코기가 너무 부드러워. 일본에도 꼭 내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앞으로 미오가 한국에 오게 되면 이 두 치킨 가게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될 듯하다.

느긋하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미오는 나를 위해 준비한 생일 케이크를 가져왔다.

작은 조각으로 각자 다른 모양의 5가지 케이크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모카크림 케이크, 미오는 딸기가 얹어진 타르트를 골랐다.

달콤한 디저트를 입 안에서 녹여가며 고요하고 평온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타르트를 다 먹은 미오는 캐리어 가방에서 상자들을 꺼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첫 번째는 작은 목걸이였다.

Swarovski, 백조 그림이 새겨진 파란 박스 속에 로즈골드 색을 띈 여성스러운 목걸이.

태양을 닮은 듯, 꽃을 닮은 듯도 디자인이 인상 깊었다.

 

「これはチョンウォルのお母さんにあげたくて準備したよ。私の力を少し入れたからね。お母さんを元気にしてくれるように。(이건 청월의 어머니에게 주고 싶어서 준비해봤어. 내 힘을 조금 불어넣었어. 어머니가 건강하게 있어주길 바래.)」

 

따뜻하고 고급스럽기도 한 어머니에게 정말 어울릴 듯한 디자인이었다.

두 번째는 두 개의 머그컵이 담긴 박스였다.

하나는 청색 배경에 달과 별빛이 그려진 컵이었고 또 하나는 하얀 색 배경에 태양이 그려진 컵이었다.

 

「これはある日に歩いた時に見つけたけど、見た瞬間にお母さんとチョンウォルだと思って2人にあげたくて買ったよ。(이건 언젠가 걷다가 발견했는데, 본 순간 어머니와 청월이라고 생각해서 두 사람에게 주고 싶었어.)」

 

나는 달과 태양의 컵을 본 순간 신기한 기운이 나를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은 소형 프로젝터였다.

 

「チョンウォルが夜によくYoutubeとか見るから壁でもこれを使ったらいつでも見れると思ってあげたかった。(청월이 밤에 자주 유튜브라던지 보니까 벽에다가도 쓸 수 있어서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주고 싶었어.)」

 

이런 프로젝터는 영화관이나 대학교 강의실에서나 봤던 것이어서 생소했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미오의 선물들은 전부 나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선물이었다.

그 외에도 받은 것이 많았다.

나에게 시험을 잘 보라는 의미로 운이 깃든 부적도 건네주었다.

일본 전국에서 유명한 과자들을 사오기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에게도 주고 싶어서.

지금까지 살면서 생일날에 이렇게까지 많은 선물을 한꺼번에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부끄러웠던 이유는 내가 준비한 것은 너무 소박하기 짝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집에서 들고 온 가방에서 두께가 꽤나 있어 보이는 하얀 색 포장 박스를 하나 꺼내들었다.

 

「ミオ、誕生日プレゼントほんとうにありがとう。ミオにも誕生日プレゼントあげるね。(미오, 생일선물 정말 고마워. 미오에게도 생일선물 줄게.)」

 

「え。(에?)」

 

미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오는 나와 같은 3월 생으로 별자리마저도 같은 물고기자리이다.

그 말은, 나의 생일이 끝남과 동시에 곧 미오의 생일도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나는 미오가 3월에 한국에 오겠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미오에게 줄 생일 선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물론 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부터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휴대폰으로 미오를 떠올리며 토끼 캐릭터를 그려보았다.

딸기를 껴안고 있는 토끼, 그리고 그 토끼의 머리 위를 쓰다듬는 누군가의 손.

얼떨결에 그려본 그림이지만 나는 이 그림을 미오에게 어떤 형태로 선물하고 싶었다.

어떤 것이 좋을까 하다가 원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넣어서 제작해주는 머그컵 회사를 발견했다.

나는 미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전해주기로 했다.

머그컵을 주문하고서 며칠이 지난 후,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머그컵이 2개가 들어있었다.

1개만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서비스로 2개를 받아서 따로 2개를 포장할 박스를 알아보게 되었다.

포장을 다하고 보니 미오에게 이 선물을 전해줄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이 생일 선물을 하루 빨리 전해주고 싶어서 미오가 한국에 오기를 기다렸고 드디어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미오는 박스 안의 내용물을 보자마자 나에게 물었다.

 

「え、なんでマグ? (에, 어째서 머그컵이야?)」

 

「何となくマグになっちゃった。(어쩌다 보니 머그컵으로 정해버렸어.)」

 

「私もマグ準備したのにプレゼントまでテレパシーだったんでしょかね。笑笑。(나도 머그컵 준비했는데 선물까지 텔레파시가 통했던 걸까.)」

 

「え、うさぎさんだ。可愛いー! ありがとう、チョンウォル。誕生日プレゼントこんな風にもらったこと今までなかった。(에, 토끼 씨다. 귀여워ㅡ! 고마워, 청월. 이런 식으로 생일선물 받아본 적은 지금까지 없었어.)」

 

「そろそろミオの誕生日だからね。(곧 있으면 미오의 생일이니까.)」

 

미오는 내가 준 토끼 그림의 머그컵을 한참동안 어루만지며 바라봤다.

한참을 가만히 있는 미오 곁으로 다가갔다.

미오는 울고 있었다.

 

「미오 왜 울어~ (ミオなんでなくの~)」

 

나는 울고 있는 미오를 꼭 껴안았다.

よしよし。

조금 뒤, 미오는 진정이 되었는지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チョンウォルがその子と2月に会ってからもっと好きになってるんじゃないかなと思った。(청월이 그 아이랑 2월에 만나고 나서 더 좋아하게 된 건 아닐까 생각했어.)」

 

「チョンウォルが風邪になった時に私の気持ちはぼろぼろになりすぎた、それでもチョンウォルはその子のそばにいたいんだっと思ってもう整理しないとだめかなっと思った。(청월이 감기에 걸렸을 때 나의 마음은 망신창이가 되어버렸어. 그런데도 청월은 그 아이의 곁에 있고 싶은 거구나 싶어서 이제 정리해야 될 때라고 생각했어.)」

 

「しんせきも言ってた。チョンウォルのその子はぜったいにチョンウォルの事よりただ韓国で楽しかったっと思ってるはずだって。(친척도 그랬어. 청월의 그 아이는 절대로 청월보다 그저 한국에 와서 즐거웠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そうじゃないとチョンウォルが試験が近いのも分かってるのに疲れさせたりしないし、風邪にさせたら普通ならもしあけないから連絡もできないって。(그렇지 않다면 청월의 시험이 가까운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지치게 만들 리도 없고, 감기에 걸리게 만들었다면 보통은 미안해서 연락도 못할 거라고.)」

 

「チョンウォルはそれが必要な事だと言ってたけど、実は自分が自分を大変にさせるだけだよ。(청월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스스로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뿐이잖아.)」

 

「私がチョンウォルをどんなに助けようとしてもチョンウォルはいつも自分を傷つけてくるからこれはもう意味がないね。(내가 청월을 아무리 구하려고 해봐도 청월은 항상 자신을 상처 입히니까 이건 더 이상 의미가 없잖아.)」

 

「だから今度がチョンウォルと最後だと思ってなるべく伝えたい物は伝えようと思いながら韓国に来た。(그러니까 이번이 청월과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가능하면 전할 수 있는 것은 전해주자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어.)」

 

나는 미오의 말을 듣고 이번에는 미오가 정말 나를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오늘밤 이대로 집에 돌아갔다면 이 인연은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까 전 미오의 뒷모습으로부터 느꼈던 위화감은 운명의 외침이었을까.

나에게는 내면에 엉켜있는 두려움을 정리하기 위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고, 미오를 이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俺のためにいつも教えてくれてありがとう。今度俺が自分を大切にしないのはミオを大切にしないって事をやっとわかった気がする。(나를 위해서 항상 알려줘서 고마워. 이번에 내가 자신을 소중히 하지 않는 것은 미오를 소중히 하지 않는다는 것임을 겨우 알게 된 것 같아.)」

 

「いつも気がつくのが遅くてごめんね。でも、俺これから成長してみるからもう少しだけ待ってくれ。俺はミオとの絆を終わりたくない。(항상 알아채는 것이 늦어서 미안해. 그래도, 나 이제부터 성장해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나는 미오와의 인연을 끝내고 싶지 않아.)」

 

「私のこころはもうずっと前からぼろぼろなのに。(나의 마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엉망진창인걸.)」

 

「ごめんね。いつも辛くさせて。これからはミオのこころ傷つける事しないように自分を大切にしてみるから。(미안해. 항상 괴롭게 만들어서. 이제부터는 미오의 마음을 상처 입히는 일은 하지 않도록 자신을 소중히 해볼게.)」

 

「うん。(응.)」

 

나는 미오의 마음에 더 이상 상처를 줘선 안 된다고 자신에게 다짐했다.

미오와 나는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늦은 밤을 맞이했다.

미오가 선물해준 프로젝터를 켜보기도 하고 티비를 보다가 슬슬 잘 준비를 했다.

허리를 뒤척이는 나를 알아챘는지 미오는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내 허리 위에 손을 얹었다.

미오의 손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한결 허리가 가벼워진 나는 미오와 다시 나란히 누워서 말했다.

 

「韓国に来てくれてありがとう。ミオ。(한국에 와줘서 고마워. 미오.)」

 

「私もプレゼントありがとう、チョンウォル。(나도 선물 고마워, 청월.)」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