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올린 블로그 글 ‘번역의 난제 - 축약, 그리고 직역과 의역’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죠.

 

불민한 제가 그나마 한 발 앞선 '선배'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번역은 결국은 '언어 구사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한참 모자라서 번역을 하면서 애먹을 때가 많습니다만,

외국어 공부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더 힘을 써야 할 것은 한국어 문장력입니다.

​'외->한'을 전제로 했을 때,

외국어 실력 면에서는 정확한 '독해' 능력만 있으면 되지만,

한국어는 그 독해한 내용을 유려하고 매끄럽게 옮길 수 있는

'문장력'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이해' 능력과 '구사' 능력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니까요.

 

비록 일본어로 벌어 먹고 살고 있지만 이 사실-번역 능력과 외국어 구사 능력은 별개라는 사실-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기에 ‘앙대 앙대 코패니즈 한자어’ 집필을 거의 끝낸 시점에서 원어민 감수를 맡겼습니다. 원어민이 보기에는 분명히 어색한 부분들이 많을 거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출간을 미룬 채 시간이 날 때마다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인들에게 묻고 또 묻고 하면서 감수에서 미처 걸러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걸 알고, 얼마 전에 다른 원어민에게 다시 감수를 맡겨서 좀 더 꼼꼼하게 체크를 했습니다.

(다만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두 원어민 감수자님의 의견이 다른 게 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비일본인인 제 입장에서는 어떤 분의 의견을 따라야 할지 판단이 쉽지가 않죠.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또 일본 사이트에서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입니다만, 다른 일본인들의 의견도 각기 다른 경우가 있어서 이 역시 또 새로운 고민입니다 (ㅠ_ㅠ). 그런데 어쩌면 이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죠. 왜냐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도 한국어 표현이나 단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표현력, 문장력, 어휘력 등도 천차만별이니까요.)

 

아무튼 저번에 블로그 글이랑 댓글에서도 제가 몇 번 얘기했듯이, ‘코패니즈 한자어’를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책까지 쓰고 있는 저 역시 아직 파악하지 못한 코패니즈 한자어들이 수두룩할 것이며, 따라서 저 역시도 오용하고 있는 코패니즈 한자어가 많을 거라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제 그런 생각처럼, 이번 감수 과정에서 제가 저의 책 속에 코패니즈 한자어인지 모르고 써 놨던 것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

 

그리고 코패니즈 한자어뿐 아니라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일본어 표현들도 상당수 걸러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일본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시간이 될 때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나갈 생각입니다. 오늘은 이 카테고리 개설 기념으로 간단하게 하나를 소개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건 바로 이미 이 블로그에도 올린 적이 있는 '한국어 전락과 일본어 転落의 차이'에서 나온 아래 예문입니다.

 

경찰은 실수로 풀장에 [ ...........1 ............] 사고사로 판단해서 무혐의로 ​처분,

警察は誤って[  2  ]に転落したことによる事故死と判断して[    3    ]と処分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게시 글로 경시청 홈페이지에 불이 났다.

これに抗議する市民の[   ..4     ..]で警視庁ホームページが[ .  .5.  . ]。

 

녹색으로 표시해 놓은 '처분'과 「処分」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 한국어 '처분'과 일본어 「処分」의 경우 심지어 제 블로그 글 일본어 処分(처분)과 排除(배제)에 숨겨진 무서운 의미에서 코패니즈 한자어의 예로 소개한 바까지 있죠. 그런데 일본은 이 경우에도 '처분'이라는 한자어를 쓰면 부자연스럽다고 합니다. 일본어 '처분'은 위의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죽이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주로 '처벌, 징계 등을 내린다'는 뉘앙스로 쓰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에 관해서도 감수자님과 의견이 다른 일본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루트를 거쳐 여러 일본인에게 재확인을 거쳤는데, 거의 모두가 역시 부자연스럽다는 반응이었고, 딱 한 명만 사전의 뜻풀이로 판단하면 꼭 틀린 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역시나 일반적인 표현은 아니라는 답변이었으니 참고하시기를...

결론적으로 이 경우에 일본어로는 処理(처리)라고 해 주는 게 적절할 듯합니다.

 

(日) 한국에서는 이 경우에 '처분'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습니다. 그리고 '처리'라고 해도 자연스럽습니다. 아래 검색 사례를 참고하세요.

 

오늘은 이 정도만 하죠.

그리고 다음 글에서도 제가 미처 모르고 제 책에 썼었던 코패니즈 한자어 하나를 소개할 텐데, 물론 일본어 초고수분이면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란 만한, 의외로 생각할 만한 코패니즈 한자어니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