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무덤으로 마련된 작은 동굴 속에 장사되었고 입구는 큰 돌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흘만에 하나님은 기적처럼 그를 소생시킨 것입니다. 예수가 무덤에서 나오면 인간이 다시 그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즉, 전 세계가 부활절을 축하하는 것은 그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모든 사람이 지금까지 저지른, 그리고 앞으로 저지를 죄를 통해 계속 지게 될 죄책감과 수치심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왔다는 것을 알고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죄를 짊어지고 우리에게 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위한 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가 죄를 계속 낳는 영원한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를 사랑해 마지 않는 창조주와 함께 새롭고 깊은 관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죄로부터의 해방이 가져다주는 변화는 실로 엄청난 것으로 새로운 삶의 시작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절이 사람들의 인생에 가져오는 이러한 깊은 영향을 생각하면, 세계적으로 널리 기념하는 이유를 분명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의 달걀은 그 예수의 무덤 입구에 놓여있던 돌을 상징합니다. 밖에서 보면 그 무덤은 죽음이라는 슬픔을 나타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 부활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단단한 알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절 달걀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부활과 우리가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해방된 새로운 삶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다른 창조물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은 서로 깊이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도 사랑을 나누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인 신을 알고, 함께 대화하고, 그에게서 배우고, 그 선에 싸여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신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을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편안함과 만족을 느끼는 대신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돈, 권력, 소유물 등 이런 것들에 대한 욕심은 끊어지지도, 충분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금세 탐욕스러워지고, 서로에 대해 질투심을 품게 되었고, 그 결과 악의를 입에 담거나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욕심과 질투는 우리의 대인관계를 황폐화 시켰고 고독함, 괴로움, 그리고 죄책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그 선한 길을 버림으로써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모든 사람은 희망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안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젠 죄책감과 수치심의 끝없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그 압박감에 짓눌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부활절 날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2000여 년 전 그 날, 인간을 이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난 것입니다. 사람은 신을 버렸지만 신은 한 번도 사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살도록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저지른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전하며 다녔습니다. 즉 죄의 속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 좋은 소식을 믿었지만 당시 종교적 지배자들은 오히려 그런 예수를 질투하고 그를 죽일 계획을 꾸몄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에서 무엇 하나 나쁜일을 하지 않았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에게만 집행되는 십자가 처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실 하나님 구원 계획의 절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어떠한 죄도 없는 사람으로 죽었을 때, 동시에 온 인류의 죄와 죄책감을 스스로 그 몸에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그 자신이 저지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진노를 홀로 받음으로, 이 세상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의 생명과 맞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처가 식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 둘째 날에 우도라고 부르는 작은 섬에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대여해서 해안도로를 따라 경치를 즐긴 기억이 있습니다.
산을 오를 수 있는 사륜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반반씩 매형이 대여했습니다. 저는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어서 자전거를 골라 타고 해안을 즐겼는데 매형이 자기가 타던 오토바이와 바꿔 타지 않겠냐고 하는데 왠지 거절할 수가 없어서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들이 아빠랑 오토바이를 타보고 싶다고 해서 뒤에 타게 하고 둘이서 해안도로를 달렸습니다.
그 후 이 길 커브를 돌 때 오토바이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감속을 못하고 길가에 부딪혀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도로 밖 해안 쪽으로 떨어졌어요. 그 순간은 몇 초밖에 안 됐는데 너무 길게 느껴져서 저 바위에 떨어지면 죽거나 크게 다칠까봐 두려워하면서 뒤에 있는 아들이 걱정되었습니다.
떨어져 바위가 아니라 풀이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또 제 배 위에 아들이 떨어진 것을 보고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안도했습니다. 일어나서 주위를 보니 바위투성이고 우리가 떨어져 있는 곳만이 키가 큰 풀들이 있는데 마치 침대 같았습니다. 그때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풀밭을 미리 마련해 주신 것을 깨닫고 감사를 드리고 이 밤 은혜로 인해 우리 가족을 지켜 주신 예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중에 오토바이에서 떨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아빠가 자기를 끌어안아 주어서 안심 했다고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아끼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고민과 질병과 자연재해로부터 하나님은 변함없이 믿음이 있는 자를 지켜주십니다. 주 예수님의 평안과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