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 오전 다섯 시, 경계선의 각성과 호박빛 숨결
오전 다섯 시.
보랏빛 안개가 천천히 걷히며,
세계의 윤곽이 이제 막 태어난 아이처럼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더 이상 ‘투명한 유리 미궁’에도,
‘은빛 황야’에도 서 있지 않았다.
나는 마을 광장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언덕길 중간에 홀로 서 있었다.
볼을 스치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이상할 만큼 맑고 깨끗했다.
“……지금,
나는 여기에 있구나.”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것도 아닌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손끝에서는 더 이상 그 극채색의 빛도,
황금빛 입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조금 차가운 손끝뿐이었다.
그런데도 내 안에는 아직도 폭풍 같았던 감정들의 잔향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일들은 모두 꿈이었던 걸까.
형태 없는 ‘그’와 추었던 춤도,
중력을 거스르며 넘쳐났던 환희도,
폐를 태워버릴 것 같던 슬픔도.
만약 그것이 꿈이었다면,
지금 내 가슴 안에서 이렇게 들뜨게 뛰고 있는 이 설레는 박동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그 모든 것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이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게 어쩌면 내가 살아 있다는 뜻인지도 몰라.”
대답은 바람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아주 고요했다.
문득 고개를 들자 이른 새벽부터 문을 연 빵집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 역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기분 좋은 리듬처럼 거리 위를 채우기 시작했다.
흐르는 구름 사이로는 어제 보았던 어떤 석양보다도 연하면서도 강한 빛이 천천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리운 그 건물의 계단을 올라갔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제1장과 똑같은 호박빛으로 가득한 방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때와 같은 호박빛 홍차가 담긴 찻잔 하나.
하지만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었다.
제1장에서 ‘부족했던 것’.
그것은 찻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 너머에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자기 자신’의 기척이었다.
나는 아직 따뜻한 호박빛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한때 고독의 상징이었던 그 호박빛은 이제 세상의 모든 빛을 모아 농축해놓은 축복의 수프처럼 보였다.
창밖에서 오늘 아침 첫 번째 교회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백지의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조용히 표지 위를 손끝으로 쓸었다.
“자……
이번에는 또 어떤 신비로운 하루를 엮어볼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막 시작되는 새하얀 한 시간이야말로,
나의 진짜 새로운 ‘첫 번째 장’이 되어갈 테니까.
(스물네 번째 시간, 완결)
작가의 말 ― 스물네 번째 시간 이후의 당신에게
긴 밤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정의 프리즘 속에서,
당신은 어떤 ‘색’을 발견하셨나요.
오전 다섯 시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당신의 ‘숨결’은 어떤 소리를 내고 있었나요.
이야기 속 ‘나’는 결국 누구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아니라는 것은,
어떤 색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쁨을 ‘맛있다’고 느끼고,
슬픔을 ‘은빛 향기’처럼 두르며,
분노를 ‘검은 태양’처럼 태워내는 것.
그렇게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악기를 계속 연주해가는 당신 자신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안의 자신이 조금쯤 ‘부재’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부디 두려워하지 말아주세요.
그 공백이야말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한 새하얀 캔버스이니까요.
책을 덮은 뒤에는,
가장 먼저 자신의 손끝을 한 번 만져보세요.
따뜻한가요.
아니면 조금 차가운가요.
그 확실한 감각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주 조금만 사랑해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스물네 번째 시간의 여행은 이미 충분히 보답받은 셈이니까요.
언젠가 다시,
호박빛 찻잔이 아직 따뜻할 때 만나게 되기를.
—— KAZUMI HAM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