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 정명석 목사의 모든것 5가지
JMS 정명석 목사는 10대 초반부터 무겁고 괴로운 인생의 짐,가난의 짐, 걱정.근심.염려의 짐,환경의 짐을 지고 온갖 고통을 겪고 살때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목차
JMS 정명석 목사의 어렸을 적 시절
1. 정명석 목사는 1945년 2월 3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월명동에서 태어났습니다.
2. 정명석 목사는 6살 때부터 ‘하나님’을 부르며 찾았고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5학년 때부터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3. 극심한 가난으로 인생에 힘들어 했던 정명석 목사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예수님이 다시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산 기도에 집중하게 되면서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산속 굴에서 기도와 성경 말씀을 읽으며 신앙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JMS 정명석 목사의 수도생활
1. 정명석 목사는 15세 때부터 대둔산에서 수도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년 동안 밤새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기도를 했고 기도했던 장소에 있었던 독수리봉의 천 년 송 한 그루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얼어 죽었습니다.
2. 정명석 목사는 20대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노방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고 1년에 1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JMS 정명석 목사의 베트남 전쟁과 기도생활
1.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생명의 소중함과 하늘의 사랑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눈으로 보며 인생의 무상함과 삶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죽을 고비를 수십 번 넘기게 되면서 평생 하늘을 위해 살겠다고 각오했습니다.
2. 1970년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정명석 목사는 150년 이상 묵은 낡은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지은 후 “신앙 세계도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다니던 석막교회를 교인들과 함께 몸부림쳐 다시 건축했습니다. 교회를 짓는 일로 빚을 지게된 그는 이것을 갚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으나, 남에게 빌린 사업자금을 사기꾼에게 모두 뺏기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경기도 광주에서 기도하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3. 특히 이곳에서는 40일 금식기도에 있어 30일 절식 기도로 70일간 특별한 영적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기간에 그동안 받은 진리에 대한 하늘의 뜻을 깨닫고 준비하였습니다. 이 기간은 먹을 것이 있는데 금식했다기 보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은 기간이었습니다.
4. 1975년도에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며 대둔산과 다리골, 감람산 등을 다니며 기도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때 그는 거리 노방을 다니며 전도도 하고 불쌍한 환자들을 기도하여 낫게도 해주며 심지어 거지들을 데려와 같이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깨달은 진리를 모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도표화 하는 작업을 합니다.
5. 마을, 도시에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의 행하심과 6천 년 동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심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깨달은 말씀을 30개론으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6.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온라인 접속을 통해서 바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JMS 정명석 목사의 복음전파
1. 1978년 6월 1일, 정명석 목사는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의 한 손에는 말씀 도표가 들려 있었습니다. 정상적으로 먹을수가 없어 라면과 국수로 대체하면서 2년 동안이나 말씀을 전했으나 이해하는 사람도,따르는 자도 없었습니다.
2. 1980년 8월,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서울 신촌으로 생활하는 곳을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제자들이 정명석 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깨닫고 동참하기 시작했고 1981년 3월, MS선교회(현 기독교 복음 선교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3. 주변 기성 목사들의 권유로 웨슬레 신학을 접하게 되면서 교단의 구성과 조직을 보다 세분화하여 체계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급속한 발전으로 주변 교단으로 부터 이단이라는 누명을 받았지만, 정명석 목사는 흔들림 없이 복음을 전했고 몇년 만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많은 사람을 수용하려면 터전이 필요했습니다.
|
|
JMS 정명석 목사의 월명동 개발 및 세계선교
1. 1989년, 정명석 목사는 기도 끝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고향 월명동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10여 년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자연성전이 건축 되면서 회원들의 신앙은 더욱 강해졌으며,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방문으로 더욱 선교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2. 1999년 1월, 정명석 목사는 세계 선교의 길을 떠났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로 건너가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통해 매년 세계 평화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를 알고 교류하며 평화의 정신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3. 또한 CGM자원봉사단을 설립하고, 국제 문화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세계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사랑과 평화의 사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4. 다양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온라인 접속을 통해 간편하게 알아 보실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