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해도 겁이 먼저 들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나이 마흔둘.
사람들은 “이제는 자리를 잡고 있을 나이”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자리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해보려고 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돈’이라는 매개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하려는 이유가 ‘나의 성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일 때,
삶은 능동적이기보다 방어적이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최근,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사유를 다시 읽으며,
그가 말한 ‘고차원적인 쾌락’이라는 개념에 눈이 멈췄다.
그것은 단순히 기분 좋은 자극이 아니라,
사유하고, 창조하고, 연결하며 느끼는 정신적 충족감이다.

밀은 말한다.

“단지 만족한 돼지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스스로의 삶을 주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생존을 위해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불안은 단지 외부 조건이 나빠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잃었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방향성을 회복하는 일은,
경제적 성공보다 더 근본적인, 존재의 회복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의 바닥에서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금 내가 회복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안정이 아니라,
다시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의 정신이다.

 

私は最近、うつ病と診断された。
何かを始めようとしても、まず「怖さ」が襲ってくる。
何か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ながら、何もできない。

年齢は42歳。
世間では「もう落ち着いている年齢」と言われるが、
私はまだ、自分の居場所がどこにあるのかわからない。
何か新しいことに挑戦しようとすると、
真っ先に浮かぶのは「失敗への不安」だった。

その不安の根源は何だろう?

私は、それが「お金」という媒介と結びついていることに気づいた。
何かをする理由が「自分の成長のため」ではなく、
「経済的に生き残るため」になっているとき、
人生は主体的というより「防御的」になる。

そしてその瞬間に、私は無力感を覚えるのだ。

最近、哲学者ジョン・スチュアート・ミルの思想を読み返す中で、
彼のいう「高次の快楽(higher pleasures)」という概念に目がとまった。
それは単なる気持ちよさではなく、
考え、創造し、他者とつながることで得られる精神的な満足感のことだ。

ミルはこう言った。

「満足した豚であるよりも、不満足な人間である方がよい。」

この言葉は私たちに問いかけてくる。
「あなたは今、自分の人生を自分で導いているか?
それとも、ただ生き延びるために動いているだけなのか?」

不安は単に外的な環境が悪いからではない。
人生の方向性を見失ったときに、心の奥から湧き出してくるものだ。
そしてその方向性を取り戻すということは、
経済的な成功よりも根本的な、存在の回復である。

うつという感情の底にいるとき、
私はようやく自分の内なる声を聞けた気がする。
今、私が本当に回復したいのは、
単なる安定ではなく、
もう一度、主体的に生きようとする私の精神そのものなの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