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パク·ヨンハ前マネージャー 権利を守ろうとした 控訴審で涙

パク·ヨンハ前マネージャー 権利を守ろうとした 控訴審で涙

私文書偽造、偽造私文書行使、詐欺未遂、窃盗の疑いで起訴された俳優パク·ヨンハの元マネージャーの李(33、女)氏が控訴審で涙で、最終陳述をした。

李さんは去る14日午後、ソウル中央地裁で開かれた控訴審公判で、「青春を捧げて仕事をした」とし「マネージャーとしての権利があると考えた。
私の権利も家族も守ろうとした」と主張した。
李さんは言いながら涙を見せたりした。
公判後、故パク·ヨンハの遺族側は「李さんの文と涙は嘘であるだけだ」と主張し、憤慨した。
李氏はこれに先立ち、13日に悔しさを訴えており、裁判所に嘆願書を提出することもした。最終公判は来る2月13日に行われる。

李さんは昨年11月15日、ソウル中央地裁で開かれた1審結審公判で、私文書偽造、偽造私文書行使、詐欺未遂、窃盗容疑で懲役8月の実刑を宣告受けて法廷拘束された。
控訴、現在、ソウル拘置所に収監中だ。

李さんは去る2010年6月30日パク·ヨンハが自殺死亡すると、一週間後、東京の銀行で、自分が持っていた印鑑を利用して預金の請求書2枚を偽造し、2億4000万ウォンを引き出そうとした疑いだ。
また、故人が設立した企画会社のオフィスで、故人の写真集40冊と2600万ウォン分のアルバム、オフィス備品、カメラ、写真などを盗んだ疑いも受けている。

一方、韓国芸能マネジメント協会は最近、賞罰の調整倫理委員会(以下「賞罰委」)を開き、李さんについて採用禁止の決定を議決した。(スターニュース1月9日単独報道)

賞罰委は、「李氏が社会的な物議を起こし、その結果、社会的に、この業界従事者に大きな傷を残した」と判断した。

賞罰委は、李氏が懲役刑後も日本などで芸能マネージャーとして活動する可能性が高いと李さんの関連情報を日本のエンターテイメントの関係者に伝達する予定だ。

레이디경향 2014年1月号




1) 누나 박혜연이 말하는 ‘전 매니저’ 사건 전말

그리고 끝나지 않은 박용하

박용하 그를 떠나보낸지 3년 6개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의 소식을 듣고 있다. 그를 추억하는 반가운 소식도 있지만 때로는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박용하의 뜻을 이어 ‘요나 컴퍼니’를 맡고 있는 그의 친누나, 박혜연 대표와 매형 김재현 이사를 만났다.

그들이 마음으로만 담아둘 수밖에 없었던 지난 이야기를 그리고 박용하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첫 번째 사진(Yona School)


* 남겨진 가족에게 가장 큰 숙제인 아프리카 차드에 지은 박용하의 이름을 딴 ‘요나 스쿨’ 생전에 그가 남긴 일기를 통해 그곳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가족들은 요나 스쿨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원러브’라는 자선 단체를 만들었다.



2)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박혜연 대표와 김재현 이사를 만나기 위해 서울 잠실에 위치한 요나 컴퍼니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데, EMS 소포 박스를 든 집배원도 함께였다. 운송장에 뚜렷히 적힌 ‘TO Park yong ha' 일본에서 보내온 박용하의 선물이었다. 받을 수 없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까? 쉬 짐작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일본에서는 선물이나 팬레터가 여전히 오고 있어요. 용하에게 보내는 것뿐 아니라 어머니, 용하 조카인 제 아들 그리고 저희 부부 내외까지 챙겨 편지를 보내주세요. 한국 팬들도 계절마다 과일이나 보약들을 보내주셔서 항상 고마워요.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듯이 그렇게 팬들과 잘 지내고 있어요’

박용하의 가족은 매년 그의 추모식과 ‘메모리즈 투어’에 참가한다. 처음에는 너무 빨리 가버린 이를 두고 추모식이나 유품전. 사진전을 연다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국내 정서로는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



‘ 과거에는 자신들에게 기쁨도 주고 용기도 줬으니 이제 자기들이 어머니에게 그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다‘라고 해요. 팬레터의 내용들을 봐도 ’그가 없어 고통스럽고 힘들다‘라는 내용보다는 ’고마웠고 기뻤다. 늘 추억하며 살겠다‘ 라는 분들이 많아요.



‘일본에서 함께 일했던 음반 제작사나 매니지먼트사 그리고 팬클럽 관계자분들께서 ’그는 안타깝게 갔지만 최소한 팬들을 위해서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라며 저희를 설득하셨죠. 그리고 데려간 곳이 일본 모 유명 연예인의 10주년 유품전이었어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떠난 이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따라온 꼬마 팬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고 해보자 결심했어요. 처음에 1년 정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3년 넘게 하고 있네요’

무엇보다 박용하를 사랑하는 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이제 떠나고 없지만 그를 사랑했던 마음만은 여전했다.

‘용하 같은 경우는 참 특이하죠. 어느 한쪽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잖아요. 행사를 진행하는 관계자. 팬들 그리고 팬들 그리고 가족이 한마음이 돼서 지금까지 추모식을 하고 있어요. 일본 관계자분들과는 그 어떤 계약 관계도 없이 진행하고 있고요. 동생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서로 통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추모 문화가 보편화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 박용하는 외국 배우이고, 일본에서 오랜기간 활동한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추모하기 위해 수천 명의 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 수많은 팬들이 박용하를 대신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어머니. 어영란 여사다. 그녀 역시 팬들과 시간을 보내며 먼저 떠나보낸 아들에 대한 아들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씩씩하게 지내려고 애쓰지죠. 사실 엄마 입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요동치시겠죠. 엄마에게 워낙 정겹게 살가운 아들이었으니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하루 종일 용하를 가슴에 담고 사세요. 그렇지만 팬들을 직접 만나면서 위안을 얻고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용하가 있는 분당 (메모리얼 파크) 이나 아니면 사무실. 파주 약천사(위패가 봉안된 절)에서 우연히 팬들을 만나면 함께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세요’

그녀는 아들을 만나러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갈 때면 보온병에 커피를 타서 간다. 행여나 만날 팬들과 함께 마시기 위함이다. 만약 아들이 살아 있다면 일부러 거리를 뒀을 그들이지만 이제는 꼭 껴안고 손을 어루만지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팬들에게 감동했던 부분이 ’과거에는 용하가 자신들에게 기쁨도 주고 용기도 줬으니 이제는 자기들이 어머니에게 그 사람을 되돌려주고 싶다‘라고 해요. 팬레터의 내용들을 봐도 ’그가 없어 고통스럽고 힘들다‘라는 내용보다는 ’고마웠고 기뻤다. 늘 추억하며 살겠다‘라는 분이 많아요.

박 대표는 팬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박용하의 ‘전 매니저의 예금 인출 사건’ 소송 법정에 나와 ‘매니저의 과거 행적’에 대해 증언을 해준 한 일본인 팬이었다.


있을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박용하 측 증인석에 선 한 일본 여인. 그녀는 박용하의 초창기 팬으로 일본 은행에 예치된 박용하 명의의 예금 3억여원을 무단으로 인출하려다 구속된 전 매니저 이 모씨와도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국 법정에서 이모씨가 그동안 자신에게 했던 박용하 가족에 대한 비방. 거짓말에 대해 자세히 증언해줬다.






1,2 사진 코멘트

1-2 요나 컴퍼니 안에 설치돼 있는 큰 편지 상자. 박용하에게 보내온 팬레터를 모아 놓은 상자로 2013년 5월부터 시작한 채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3분의 2가 찼다.


3번 사진 코멘트

취재 당일 박용하에게 배달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가족들을 위한 손수건과 머플러 박용하가 좋아했던 카메라를 본떠 만든 크리스마스 오르골이 담겨 있었다.



‘저희가 소송을 진행하면서 전 매니저에 대한 증언을 부탁드렸어요. 만약 거절하셨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일본 매니지먼트 관계자들과 함께 기꺼이 증언해주셨죠.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참 고마웠어요’

3억여원의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이 모씨는 박용하 명의로 예금청구서를 위조했다. 그가 떠난 지 1주일 만인 2010년 7월 7일에 벌인 일이다.

‘몰래 도모하던 일이 틀어지니 이 모씨는 자신이 한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변인들에게 가족을 비난하기 시작한 거죠. 그녀가 한 일을 보면 배신은 약한 단어예요. 더 심한 단어가 있다면 그걸로 얘기하고 싶어요’

전 매니저 이 모씨는 일본 활동을 하며 재력이 많은 팬, 사회적 지휘가 있는 팬들을 따로 모아 관리했다는 것도 증언해 준 일본 팬 덕분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녀 역시 재력가이다.

‘저희는 용하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씨가 일을 하고 다니는지 몰랐어요. 알고 보니 일본 팬에게 개인적인 일에도 많은 도움을 받아왔더군요. 이번 일은 정말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법적 판결을 받은 거예요’

무엇보다 박 대표가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증인석에 선 여인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그분의 눈물을 흘리며 ‘이제라도 박용하와 가족에게 남긴 상처를 반성하고 남은 인생을 바르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녀로서는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는데 당사자가 알아들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 모씨는 현재 법정 구속돼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터라 최종 선고일에 구속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선고를 받는 순간에도 이 모씨는 누군가와 휴대전화로 문자메세지를 주고받는 여유를 부려 판사가 ‘뭐 하는 짓이냐? 내 말을 똑바로 들어라!’라는 경고를 했을 정도다.

‘저희는 그녀의 구속을 바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소송을 한 거예요. 그런데 판사님이 그녀의 죄질이 나쁘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증언이 오락가락해 법정 구속을 하겠다는 판결을 내렸을 때, 만감이 교차했고 결국 우리의 진심이 통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족이 그동안 받은 고통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나의 매듭을 지을 수 있었어요’

그들이 가장 참을 수 없던 것은 ‘사건’ 1년 후에 이 모씨가 J 매니지먼트사에 들어가 남자 아이돌 그룹을 전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수감되기 직전까지도 이 모씨는 V그룹의 매니저였다.

‘연예인 관계자들은 그런 사건을 벌이고도 그녀가 버젓이 매니저를 다시 할 수 있는지 의아해했고, 그녀는 변명하며 저희를 험담했다고 해요. 급기야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용하의 친구들까지 오해하기 시작했기에 가족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치른 장례. 가족은 그저 허망했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모씨는 장례식장에서 유명 연예인이 오면 그를 붙잡고 오열했다. 처음에는 정말 슬퍼하는구나 생각했지만 인적이 뜸한 밤이 되면 가족을 불러내 ‘회사를 어떻게 할 거냐? 대표를 바꿔야 한다’라는 등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했다고 한다.

삼우제를 치르고 난 후였어요. 그녀가 밤 11시에 제게 전화를 해서 용하의 집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 거예요. 이유를 물었더니 ‘짐 정리를 해야 한다’ 하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짐 정리는 어머니가 해야지. 왜 당신이 하느냐’라며 거절을 했죠. 나중에 생각하니 다 이유가 있었더라구요‘

이 모씨는 ‘예금 인출 사건’ 1주일 후인 7월 14일 사무실에서 박용하의 유품을 포함한 사진집 등을 무단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그 양이 무려 30상자였다. 그녀가 법정에서 주장했던‘그간의 정을 생각해 소장하고 싶었다’라는 의도치고는 무척이나 많은 양이었다.

‘수십개의 상자가 기념품이겠어요? 또 용하가 생전에 받았던 트로피들은 왜 가져간 겁니까? 아무래도 개인 사무실을 따로 차리려고 했던 것으로 짐작돼요. 그런 짓을 해놓고 퇴직금을 정산해달라고 하더군요. 물론 당연히 해줘야 할 일이니까 해줬지요’

이 모씨는 징역 8개월 선고받은 상태. 그 이후 매니저로 복귀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박용하가 남기고간 숙제

2009년 박용하는 NGO 단체인 굿네이버스와 함께 아프리카 차드에 다녀왔었다. 당초에는 우물을 파주고 돌아오는 단발적인 일이었지만 그곳의 열악한 상황을 체험한 박용하는 큰 그림을 그렸다.



용하는 ‘우물을 파주는 것보다 우물을 팔 수 있게끔 해야 하지 않겠냐’라며 학교를 만들자는 의견을 내어 ‘요나 스쿨’ 을 만들게 된 거죠. 그러고는 2010년 5월에 다시 아프리카에 들어갔어요. 6월에 새 앨범 일본 투어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무리한 일정이었죠.

투어를 마치고 가라는 가족의 만류에도 한사코 그곳을 가더라구요

그가 남긴 일기를 보면 차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물이나 학교 건립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지원으로 유치원, 보건소 등을 건립해 큰 마을을 만들려한 계획이 적혀 있다.

‘용하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일인 듯해요. 그걸 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마음에 늘 걸렸어요. 박용하 이름으로 계속 지원하고 있는 팬들도 ’요나 스쿨‘에 대한 진행 상황 문의를 많이 해요. 그래서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지원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했어요. 이미 지난 4월에 ’원러브‘라는 자선단체를 발촉했고요. 가능하면 2014년이나 2015년에 직접 저희가 아프리카에 가보려고 해요’

박용하는 떠났지만 마치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 같은 기분 또한 든다.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하고, 가족도 열심히 박용하의 뜻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마음 고생도 많이 했지만 위로 받고 의지할 수 있는 팬들이 있어 그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슬픔보다는 박용하가 남기고 간 희망의 씨앗을 틔울 때인 것이다.





1)姉パク·ヘヨンが言う「元マネージャー」事件の顛末

そして、終わっていないパク·ヨンハ

パク·ヨンハは彼を残して送った3年6ヶ月が経った。それでもまだ我々は、彼の消息を聞いている。彼を思い出される嬉しいニュースもありますが、時には胸が痛む事件もあった。
パク·ヨンハの意志を受け継いで「ヨナ·カンパニー 'を担当している彼のお姉さん
パク·ヘヨン代表と姉の夫キム·ジェヒョン理事に会った。

彼らの心にだけ入れておくしかなかった過去の話を描いたパク·ヨンハを追憶する人々の話をしようとしている。



最初の写真(Yona School)


*残された家族に最大の宿題であるアフリカのチャドに建てたパク·ヨンハの名前を取った「ヨナスクール」生前に彼が残した日記を使って、そこにどのように大きな愛情を持っていたのか知​​ることができる。

家族はヨナスクールを継続的にサポートするために「ワン·ラブ」という慈善団体を作った。


2)彼はまだ私たちのそばに

パク·ヘヨン代表とキム·ジェヒョン取締役に会うためにソウル蚕室(チャムシル)にある
ヨナ·カンパニーに向かった。エレベーターが降りて来るのを待つのは、EMS小包ボックスを持った配達員も一緒だった。送り状にはっきりと書かれた「TO Park yong ha」、日本から送られたパク·ヨンハの贈り物だった。受けることができない誰かに送るクリスマスプレゼント.... どんな気持ちで過ごしたのだろう?簡単に察することができない感情だった。

「日本では、プレゼントやファンレターはまだ来ています。ヨンハに送信するだけでなく、母、ヨンハ甥である私の息子そして私たち夫婦の内外まで取りまとめてメールを送ってくださいます。韓国のファンも、季節ごとに果物や補薬を送ってくれていつも感謝してます。
難しいことを経験した人々がお互いに依存するように、そのファンとうまくやっている」

パク·ヨンハの家族は毎年、彼の追悼式と「メモリーズ·ツアー」に参加する。最初はあまりにも早く行ってしまったこれを置いて追悼式や遺品前。写真展を開くということの悩みもあった。国内情緒にはなじみのない日だったから。


「過去には、自分たちに喜びも与えて勇気もくれたから今自分が母にその愛をお返ししたい」としている。ファンレターの内容を見ても「彼が持っていない、痛みを伴うのが難しい」という内容ではなく、「ありがたく嬉しかった。いつも思い出して生きる」という方が多いです。


「日本で一緒に働いていたレコード会社やマネージメント社とファンクラブの関係者の方々が '彼は残念ながら行ったが、少なくともファンたちのためにも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う」と私達を説得したんです。そして、連れて行ったところが、日本某有名芸能人の10周年の遺品前でした。さまざまな年齢層の人々が集まって残しこれを回想して話を交わす姿が本当に印象的でした。ママ、お父さんの手を握ってついてきた子供のファンを見ながら多くのことを感じてみようと決心しました。はじめに1年くらいしてほしいと思っていたが3年以上していますね」

何よりも、パク·ヨンハを愛するファンがあったので可能だった。
彼は今、離れていないが彼を愛した心だけは相変わらずだった。

「ヨンハのような場合は、真の特異ですね。どちらか一方がしたいことができ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行事を進行する関係者。ファンおよびファンそして家族が一つの心になって、
今までに追悼式を行っています。日本の関係者の方々とは、どのような契約関係もなく進行していて。弟への本当の心が通じ合ったとしか考えられない」

日本は韓国に比べて追悼の文化が普遍化されたのが事実だ。しかし、彼らの立場でパク·ヨンハは、外国の俳優であり、日本で長期間活動した人でもない。それから3年が過ぎた今も彼の追慕するために数千人のファンたちが一堂に集まる。その数々のファンがパク·ヨンハの代わりに見たがる人がいる。彼の母親。オヨンラン夫人だ。彼女もファンとの時間を過ごして、最初に送った息子の息子の傷を癒している。

「たくましく過ごそうと努力すでしょう 実際に母親の立場から、一日に何度も心が揺らぎぬかるんだね。お母さんにあんまり懐かしく気立てが優しい息子だったからでしょうか。朝、目を浮かびながら一日中ヨンハを胸に暮し。しかし、ファンに直接会い、癒しを得ておられて、どのくらいよかったのか分からない。ヨンハが盆唐(メモリアルパーク)や、またはオフィス。坡州薬泉寺(位牌が奉安されている節)で偶然ファンたちに会えば一緒にお茶も飲み、食事もしてください」

彼女は息子に会いに毎分メモリアルパークに行く時は魔法瓶にコーヒーを混ぜていく。もしかしたら会えるファンと一緒に飲むことである。もし息子が生きていたら、わざわざ距離を置く彼だが、今は抱きしめて手を撫でてお互いの傷をかばうだ。

ファンに感動した部分が「過去にはヨンハが自分たちに喜びも与えて勇気もくれたから、今自分たちが母にその人を戻してあげたい」としている。ファンレターの内容を見ても「彼が持っていない、痛みを伴うのが難しい」という内容ではなく、「有難かっ嬉しかった。いつも思い出して生きる」という方が多いです。

朴代表は、ファンの中で最も記憶に残る人がいると明らかにした。彼女はパク·ヨンハの「元マネージャーの預金引き出し事件」訴訟の法廷に出て「マネージャーの過去の行跡」についての証言をしてくれた日本人のファンだった。



ありえないことが起こった。

パク·ヨンハ側証人席に立った日本の女性。彼女はパク·ヨンハの草創期のファンで、日本の銀行に預けられているパク·ヨンハ名義の預金3億ウォンを不正に引き出ししようと拘束された元マネージャーが某とも個人的な親交を持っている人だった。彼女は韓国の法廷で李さんがこれまで自分にしていたパク·ヨンハの家族に対する誹謗、嘘の詳細について証言してくれた。






1,2写真のコメント

1-2ヨナ·カンパニー内に設置されている大規模なメールボックス。パク·ヨンハに送ってきたファンレターを集めたボックスに、2013年5月から始めて一年にならなかったが、すでに3分の2が埋まった。



3番の写真コメント

取材当日パク·ヨンハに配信されたクリスマスのギフトである。家族のためのハンカチやマフラーパク·ヨンハが好きだったカメラを模したクリスマスオルゴールが入っていた。



「私達が訴訟を進行しながら元マネージャーの証言をお願いした。もし拒絶後でも理解できますよ。ところが、日本のマネジメント関係者たちと一緒に喜んで証言してくださったよ。それは本当に簡単なことではないんですよ。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3億ウォンの預金を引き出すために、この某氏はパク·ヨンハの名義で預金請求書を偽造した。彼が去って1週間後の2010年7月7日に行ったことである。

「こっそり計画していたことが失敗するとイ某氏は、自分がしたことを正当化するために、周りの人たちに家族を非難し始めたのです。彼女がしたことを見れば裏切りは弱い言葉です。より深刻な単語がある場合はそれを話をしたい」

元マネージャーがイ某氏は日本での活動をして財力が多くのファン、社会指揮があるファンを別々に集めて管理したことも証言してくれた日本のファンのおかげで、新たに知った事実である。彼女も資産家である。

「私たちはヨンハの仕事には全く関与していないため、このイ某氏がどのような仕事をしているのか知らなかった。知ってみると、日本のファンとの個人的なことにも多くの支援を受けてきたのです。今回のことは本当にすずめの涙ほどの最低の判決を受けたんです」

何よりも、朴代表が最も胸痛かったことは証言台に立った女性の最後の言葉だった。

その方は涙を流しながら「今からでもパク·ヨンハと家族に残した傷を反省して残りの人生を正しくできて生きていって欲しい」と言われましたよ。彼女としては真心がこもった一言だったが、当事者が知ってて聞いたかはよく分からない」

このイ某氏は現在法廷拘束され、ソウル拘置所に収監されている。執行猶予2年を宣告受けたはずで、最終宣告日に拘束されるだろうとは誰も予想しなかった。宣告を受けた瞬間に、この某氏は誰かと携帯電話で文字メッセージをやりとりする余裕を甘やかす、裁判官が「何をしてるのか?私の言葉をまっすぐに聞け!」という警告をしたほどだ。

「私たちは、彼女の拘束を望むより多くの人が事実を知って欲しいという気持ちで訴訟をしたんです。しかし、判事は彼女の罪質が悪く、自分に有利な状況を作ろうとの証言が行ったり来たりして法廷拘束をするという判決を下したとき、万感が交差し、結局、私たちの心が通じた気がしますね。家族がこれまで受けた苦痛に比べることはできないようにも一つの結び目を建てることができた」

彼らが最も我慢できなかったのは、「事件」1年後には、某氏がJマネージメント社に入って男アイドルグループを担当しているというニュースを聞いた時だ。収監される直前まで、このイ某氏はVグループのマネージャーであった。

「芸能人の関係者はそのような事件を行っても、彼女は堂々とマネージャーを再することができるかどうか困惑しており、彼女は言い訳して私達をゴシップしたそうですよ。挙句の果てに話を聞いたヨンハの友人まで誤解し始めたので、家族としてじっとしているだけ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振り返ってみると不思議なことが一つや二つではなかった。いきなり行った葬儀。家族は、ただむなしいし、涙さえ出なかった。ところが、この某氏は葬儀場で有名な芸能人が来ると、彼をつかまえて嗚咽した。最初は本当に悲しんでいるんだなと思いましたが、人影がまばらな夜になると家族を呼び出して「会社をどうするのか?代表を変えなければならない」などというのは常識的に理解できない言葉や行動をしたとする。

三虞祭を払った後でした。彼女が夜の11時に私に電話をしてヨンハの家のドアを開けてもらうんです。理由を尋ねたところ、「荷物の整理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ね。ちょっとはなくて「荷物の整理は、母親がすべきだ。なぜあなたがするのか」と拒否をしたんです。後で考えるとだ理由があったんですよ」

この某氏は「預金の引き出し事件」1週間後の7月14日、オフィスでパク·ヨンハの遺品を含む写真集などを無断で持って行くこともあった。その量がなんと30箱だった。彼女は法廷で主張していた「これまでの設定を考えて所蔵していたかった」という意図としてはとても多くの量だった。

「数十個の箱がお土産か?またヨンハが生前に受けたトロフィーは、なぜ持っていったのですか?どうしても個人のオフィスを別々に調えようとしていたことが推測はできます。そんなことをしておいて退職金を精算してくれと言い出し もちろん、当然し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しました」

この某氏は懲役8ヶ月を宣告された状態。その後、マネージャーに復帰するかはまだわからないことである。




パク·ヨンハが残した宿題

2009年パク·ヨンハはNGO団体であるグッドネイバーズとともに、アフリカのチャドに行ってきた。当初は井戸を掘って戻ってくる単発的な仕事だったが、そこの劣悪な状況を体験したパク·ヨンハは、大きな絵を描いた。



用する「井戸を掘ると言うよりもより井戸を掘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か」と言って学校を作ろうという意見を出して「ヨナスクール」を作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そういえは、2010年5月に再びアフリカに入って行きました。6月に新しいアルバムの日本ツアーを開始したので、本当に無理な日程でした。

ツアーを終えてからという家族の引き止めにも必死になって、そこに行きましたよ

彼が残した日記を見るとチャドへの愛情が格別だった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る。井戸や学校建設にとどまらず、継続的なサポートに幼稚園、保健所などを建設し、大規模な村を作成した計画が記されている。

「ヨンハが本気でやりたかった仕事であるようです。それをせずに行ったので、心にいつも係りました。パク·ヨンハの名前で継続してサポートしているファンも「ヨナスクール」の進捗状況のお問い合せをたくさんします。従って、長期的なプロジェクトに対応できる手段を用意しました。すでに今年4月に「ワン·ラブ」という慈善団体を発足したんです。可能な場合、2014年や2015年に直接私達がアフリカに行こうよ」

パク·ヨンハは去ったが、まるでどこかに生きているような気もする。彼の思い出人々が相変わらずで、家族も熱心にパク·ヨンハの意志を受け継いでいるからだ。過去3年間の気苦労もたくさんしたが、慰労受けて頼ることができるファンがいて、彼らは前進していく。
今、悲しみではなくパク·ヨンハが残した希望の種を分からせる時のものである。

2005.0101




이건 아마..
오다이바..첫공연전에 부모님이랑 12월31일에 절에갔다가
부모님 구경시켜드린다고 같떤거 같은데..
그러니까2005년1월1일이였겠죠 ㅋ ㅋ

FinePix F420

박용하님 미니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