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 Ino

Date : 2012.06.09

Thema : 일상생각



 


1. 시작하는 글


우리는 일상에서 늘 평등을 외치면 살아간다.

'법앞에 평등' , '재화의 공동분배', '공평한 세상' 등...

평등이란 단어는 긍정적인 느낌을 포함하고 있어서인지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 또는 정치적으로도 많이 언급된다.


그런데 그 평등이 다 같은 평등일까? 또한 그 평등이 항상 좋고, 옳다고만 할 수 있을까?

우선 평등이라는 것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할 것 같다.


 


2. 평등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


평등平等 - 파생어 : 평등하다 

명사 -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

-네이버 국어사전 :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40461400


위의 뜻을 고려해 봤을 때 과연 평등은 존재하는 것일까.



2-1. 권리가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 같을 수 있을까?


권리란 일정한 이익을 주장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수단으로써 법률이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

부여하는 힘이라고 사전에는 나와있다.(네이버사전)

이 것과 평등을 연결하면 이미 평등은 항상 모순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법률이 일정한 자격을 가진사람에게 부여하는 힘이라는 것에서 최소한 2가지 가정이 가능하다.



caseA. 일정한 자격의 선을 긋고 그 위아 그 아래로 2등분하여 자격을 나눔


caseB. 일정한 자격은 다양한 등급으로 나누어 짐



caseA의 경우 선 위를 ㄱ, 선 아래를 ㄴ 이라고 했을 때 ㄱ과 ㄴ에 부여하는 힘은 다르게 된다.

즉, 힘이 다르다는 것은 권리가 다르다는 것이고 권리라는 자체가 평등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caseB의 경우 caseA의 경우보다 더욱 세분화 되니 다양한 차등권리가 발생되고 이것이 평등하지 않다는건 당연한 이야기가 된다.

정리하자면, 평등이 권리가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을 나타낸다면 평등이란 애시당초 있을 수 없는 것이 된다.



2-2. 의무가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 같을 수 있을까?


뭐 이건 두말할 필요가 없을꺼 같다.

대한민국에는 국방의 의무라고 하여 국민으로서 나라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지 않은가.

의무가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 같으려면 국민 모두가 나라를 지켜야 하지만 우리 일상을 보아도 군대문제를 보아도 모두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일제강점기에도 튀는 애들은 있었지 않는가. 본인의 생명추구권이 국방의 의무보다 앞서서 그런 것일 수 있으니 나쁘다고 말하는건 개개인의 문제이겠지만, 의무가 평등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2-3. 자격이 차별 없이 고르고한결 같을 수 있을까?


이건 권리에서 법률이 일정한 자격을 가진사람에게 부여하는 힘이라고 구분지으면서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과 못가진 사람을 구분하고 있으니, 모두가 가지던가 모두가 안가지는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 같을 수"에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다.

뭐 이쯤 하다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평등이란 이미 물건너간 이야기 인 것 같다.


 


3. 이상을 현실에 접목시켜 보자



현실에서 평등이 멀어보이지만, 그래도 평등이 왠지 좋아보인다.

따라서, 좋아보이는 것을 가까이 하려고 하는 사람의 욕심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보니 억지로 끼워맞추어서 평등하다고 주장(생각)하게 된다.

이 끼워맞추기 과정에서 다양한 평등이 발생되겠지만, 이번엔 시작점이 평등한 것과 끝이 평등한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3-1. 모두가 똑같이 시작해보자.


모두가 시작을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응애~'하고 나의 아기가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내 아기가 남들보다 뒤떨어지는것이 좋은가? 남들과 비슷비슷한 것이 좋은가? 남들보다 뛰어났으면 좋겠는가?

다른 예를 들어보면,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하자.

나의 배우자가 남들보다 부족하고 어려운 것이 좋은가? 남들과 비슷비슷한 것이 좋은가? 남들보다 뛰어났으면 좋겠는가?

혹자는 부족하고 어려운 것이 좋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비슷하거나 뛰어난 것을 원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남들과 비슷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선은 나의 배우자가 남들과 비슷하게 일을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특정 누군가를 보면 나의 배우자보다 일은 적게하면서 많은 보수를 받고, 특정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배우자보다 더 잘해준다면, 나의 배우자도 더 나아지길 바라지 않겠는가?


다양한 경우를 예를 들어보아도, 결국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비슷한 조건의 사람은 있을 지언정,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란 어렵다고 생각된다.



3-2. 시작은 다르지만 모두가 같은 결과를 얻어보자.


학창시절 시험이란 것을 한번쯤은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A라는 친구는 맨날 놀기만 하는데 열심히 공부한 나와 시험성적이 똑같다.

왠지 분하지 않게는가?

요즘 취직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는 열심히 이력서를 쓰고 면접도 최선을 다해서 답하여서 겨우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같이 면접을 보던 코만 파던 놈이 입사동기라고 생각해보자.

그 기분이 어떻겠는가?


부의 분배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고생해서 번 돈을 나보다 못사는 사람을 위하여 부의 평등을 맞추겠는가?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평등이다.




4. 끝내는 글


위에서 단편적이고 극단적인 부분만을 예로들었지만,

평등은 군중을 자극하거나 정치성을 가질 때가 많다.


내가 엄청난 부자라고 하자.

그럼 나는 "모두가 똑같이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세상을 만들자"라고 주장할 것이다.

즉 교육의 평등이다.

아침부터 학교를 가서 똑같은 교육을 받고 오후면 집에오는 하루 일과다.

그리고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것이다.

"나도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부자가 된 것은 학창시절 더 노력하여 더 좋은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대들도 부자가 될려면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대들의 자녀들이 더 노력하여 더 좋은 성과를 얻으면 된다. 그러면 누구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

아주, 평등한 이야기이다. 더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은 재화를 같는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똑같이 학창시절을 보내도 10을 가진 사람과 100을 가진 사람은 같은 노력을 해도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을 외칠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당신의 부를 나누어 주시오. 당신의 자녀도 50을 가지고, 나의 자녀도 50을 가지고 노력해 봅시다."

마치 시작의 평등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자세히 보면 결과적 평등을 외치고 있다.

부자의 입장에서는 탐탁치 않을 것이다.

내가 고생해서 이 부를 축척하였는데, 왜 내가 나누어 줘야 할까.

"평등이란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상황에 따라 사람은 평등한지 아닌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