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가로선 하나가 바깥을 향하느냐,
안쪽을 향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종종 둘을 헷갈린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는 일을 어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화이트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파스텔 컬러도 좋아한다.


“너”는 그레이가 좋다고 했다.


블랙이 안전하다고도 했다.


원래라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색이 있고,
각자는 저마다 좋아하는 색 하나쯤 품고 살아가니까.


하지만 가끔은
자신의 색을 정답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자신의 색을 이야기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다른 색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때로는 수정하려 한다.


그리고 “너”는 가끔 자랑스럽게 말했다.


“私は地味だから。”


그 말과 함께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곤 했다.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배제와 빈정을 느꼈다.


나는 말했다.


“나는 파스텔 컬러가 좋아.”


그리고 나는 끝내
나의 한 줄 색을 고집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나”가 아니라
“너”가 되어야 안전한 상황에 처한다.


특히 그 “너”가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 때는 더욱 그렇다.


나를 지우고,
누군가를 닮아야만 괜찮을 것 같은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나”는 “너”가 될 수 없고,


“너” 또한 “나”가 될 수 없다.


길가의 풀들조차도
모두 “녹색”이라는 이름 아래 불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른 빛깔로 살아간다.


연한 녹색도 있고,


짙은 녹색도 있고,


노란빛이 감도는 녹색도 있다.


그 어느 것도 틀린 색은 아니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 학교 시험에서


“너”와 “나”를 바꿔 썼다면


선생님은 정답이라고 말해 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학교에서는 서로 다른 답을 틀렸다고 가르치지 않으면서,


왜 어떤 조직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말하려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