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쯤 되면 늘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DAW를 켜고 드럼 루프를 몇 개 돌려보다가, 괜찮은 킥을 찾지 못해 다시 샘플 폴더를 뒤지는 일. 한 시간쯤 지나면 프로젝트 파일은 늘어나는데 정작 완성된 곡은 없었다. 특히 멜로디보다 리듬 아이디어가 먼저 떠오르는 날에는 더 답답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AI 비트 메이커를 일종의 스케치 도구처럼 사용하고 있다. 완성된 곡을 뽑아내려는 목적이라기보다, 머릿속에 떠오른 분위기를 빠르게 리듬으로 옮겨보는 용도에 가깝다. 예상보다 도움이 된 부분도 있었고,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 순간도 있었다.
처음 기대했던 것과 실제로 유용했던 것
처음에는 단순히 “로파이 느낌의 드럼” 같은 짧은 문장을 입력하면 그럴듯한 비트가 자동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프롬프트를 꽤 구체적으로 적어야 결과가 안정적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보통 이런 식으로 메모한다.
BPM 88, dusty kick, soft snare, vinyl noise, lazy swing, 밤 산책 분위기
이렇게 입력하면 리듬의 성격이 훨씬 명확해졌다. 흥미로웠던 점은 단순히 장르 이름보다 감정이나 장면 묘사를 함께 적었을 때 결과가 더 일관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많이 쓰게 된 기능이 가사 메이커였다. 원래는 비트만 만들 생각이었는데, 후렴 아이디어가 막힐 때 짧은 키워드를 던져 놓으면 문장 리듬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 그대로 쓰지는 않았지만, 단어 조합을 바꾸거나 운율을 참고하는 식으로 활용했다.
기술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
AI가 입력 문장을 해석하는 방식도 꽤 재미있었다. 같은 “몽환적인 밤”이라는 표현이라도 BPM을 함께 적느냐, 악기 이름을 넣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졌다.
내가 테스트하면서 느낀 패턴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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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M 지정 → 리듬의 안정감이 높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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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이름 추가 → 사운드 방향성이 좁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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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키워드 추가 → 전체 분위기가 일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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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장면 묘사 →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가 나옴
이 과정에서 창작 도구의 역할이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정답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기대했다면, 지금은 “생각의 가지를 늘려주는 프로그램”에 더 가깝게 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자주 걸리는 함정
가장 많이 겪은 문제는 비트가 지나치게 비슷해지는 현상이었다.
특히 여러 곡을 연속으로 만들다 보면 킥 패턴과 하이햇 흐름이 묘하게 반복됐다. 처음 들을 때는 괜찮아 보이는데, 세 곡 정도 나란히 재생하면 같은 제작자가 만든 데모처럼 들렸다.
한 번은 90BPM 근처의 로파이 트랙을 다섯 개 연속으로 생성했는데, 스네어 위치와 스윙 느낌이 거의 동일했다. 결국 나는 다음처럼 수동으로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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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햇 일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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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을 한 박자 뒤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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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어 레이어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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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디를 의도적으로 추가
이렇게 손을 대고 나서야 곡마다 개성이 생겼다. 생성 자체는 빠르지만, 차별화는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테스트 중에 사용했던 플랫폼
여러 방식으로 실험하던 중 MusicCreator AI에서도 비슷한 프롬프트를 넣어 보며 결과 차이를 기록해 둔 적이 있다. 같은 키워드라도 플랫폼마다 리듬 해석이 조금씩 달라서 비교 메모를 남겨두는 재미가 있었다.
생각보다 중요했던 건 속도였다
흥미로운 점은 결과의 완성도보다 아이디어를 잃지 않는 속도가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좋은 비트 하나”를 만들려고 오래 붙잡고 있었다. 지금은 10분 안에 여러 스케치를 만든 뒤, 그중 하나를 골라 깊게 다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 덕분에 작업 중단 시간이 줄었다. 특히 퇴근 후 피곤한 상태에서는 처음부터 완벽한 드럼을 짜는 것보다, 대충이라도 흐름을 만드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창작자들이 왜 이런 도구를 쓰기 시작했는지
최근 몇 년 사이 AI 음악 도구를 사용하는 개인 창작자가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본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영감이 안 떠오를 때만 쓴다”는 사람이 꽤 있었다.
내 경험도 비슷하다. 빈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줄여준다는 점에서는 분명 도움이 됐다. 다만 결과물을 그대로 쓰기보다는, 초안 생성기처럼 접근할 때 만족도가 높았다.
결국 남는 건 사람의 취향
몇 달 정도 써보니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AI는 아이디어의 시작점을 만들어주지만, 어떤 비트를 남기고 어떤 비트를 버릴지는 결국 내 취향이 결정한다.
청자가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내 채널이나 작업물의 색깔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긴장을 주고 어디에서 비워둘지는 여전히 사람이 판단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AI를 작곡가라기보다 빠른 스케치북에 가깝게 생각한다. 아이디어가 막힌 새벽에 빈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시간은 줄었지만, 마지막 선택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