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산성터 동주산성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동주산성은 높이 약 360m 내외의 봉우리 2개의 8부 능선을 둘러 쌓은 포곡식(包谷式)으로 축조된 토석혼축(土石混築) 산성이다. 전체적으로 북서-남동 방향으로 긴 땅콩 모양으로 전체 길이는 491m이고 둘레는 800m이다. 도선 시대 지리지 등에 성의 사용과 관련된 기록이 전하지 않는 점에서 조선 시대에는 이미 페성된 것으로 보인다. 성 내부에는 건물 터 3개소와 성문에 사용된 확(確)돌이 남아 있다. 891년 세달사를 뛰쳐나온 궁예가 원주 영월 강릉 등 강원 동남부 일대를 점령하고 896년 철원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진을 쳤던 곳이 동주산성이다. 그 후 궁예는 905년 철원으로 천도를 단행하고 911년 태봉국을 선포하였다. 이후 고려 태조가 송악(개성)으로 천도하면서 or 지역의 이름을 동주(東州)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동주산성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대동지지(大東地志)」 에 고려 1217년(고종 4) 동주가 함락되었고, 고려 1253년(고종 40)에 몽고군이 동주산성을 함락시켰다는 기록이 전한다. 현재 성터는 6.25전쟁과 군 작전지역으로 인해 성의 흔적이 많이 교란되어 원래의 모습이 많이 파괴되었다. 동주산성은 비록 조선 시대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고려 시대에는 산성으로 기능하였고, 출토 유물들로 볼 때 삼국 시대에도 산성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주산성은 북쪽 평야 지대의 조망이 용이한 곳에 있어 적의 남하에 대비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철원 지역을 둘러싼 여러 나라의 전투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성곽 자료로 평가된다.
東州山城跡 東州山城は、江原道鉄原郡鉄原邑中里に位置し、三国時代に築かれたと推定される山城である。 東州山城は高さ約360メートル前後の峰が2つあり、8部の尾根を囲む包谷式で築かれた土石混築の山城である。 全体は北西から南東方向にかけて長いピーナッツ形で、全長は491メートル、周囲は800メートルである。
朝鮮時代の地理誌などに城の使用に関する記録が残っていないことから、朝鮮時代にはすでに廃城されたと考えられる。
城内部には建物跡が3か所と、城門に使用された確石が残っている。 891年に世達寺を飛び出した宮野が、原州・永月・江陵など江原道東南部一帯を占領し、896年に鉄原に初めて到着した際に陣を張った場所が東州山城である。
その後、弓イェは905年に鉄原へ遷都し、911年に太鳳国を宣言した。 その後、高麗の太祖が宋岳(慶城)へ遷都する際、地域の名前を東州(東州)に改めたと言われている。 東州山城に関する直接的な記録は残っていない。 ただし『大東地志』には、高麗1217年(高宗4年)に東州が陥落し、1253年(高宗40年)にモンゴル軍が東州山城を陥落させたという記録が残っている。
現在の城跡は、6.25戦争と軍事作戦地域の影響で城の痕跡が多く乱され、元の姿が大きく損なわれている。 東州山城は朝鮮時代の記録は残っていないものの、高麗時代には山城として機能しており、出土遺物から見ると三国時代にも山城としての役割を果たしていたと推測される。
東州山城は北側の平野部に位置し、眺望が容易なため、敵の南下に備えることができる立地条件を備えている。 したがって、三国時代から高麗時代にかけて鉄原地域を取り巻く諸国の戦闘様式を把握できる重要な城壁資料と評価されてい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