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ue&韓半島] 납북자 송환…국제형사재판소에 서나=拉北者送還…国際刑事裁判所に立つ ⇒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PAGE_NO=&SEARCH_NEWS_CODE=2760112

[이슈&한반도] 납북자 송환…국제형사재판소에 서나

<리포트>

<녹취> 언제나 만날까(김복남 作/납북자 가족) : "그때 우리는 서른 지금 당신은 어디 갔나 지금 당장 당신이 웃으며 달려올 것만 같아 흐느끼며 목메어 불러봅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63년이 지났습니다.
포성은 멈췄지만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간 납북 피해자와 남겨진 가족들인데요, 60여 년의 절절한 기다림 끝에 납북피해자 가족들이 국제사회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지난 20일, 6.25납북자인사가족협의회가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출한 고소장입니다.
피고인은 김정은 제 1위원장, 3대째 권력을 이어 받은 북한의 최고 권력자입니다.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이 함께 피소됐습니다.
6.25전쟁 당시 민간인을 계획적으로 납치한 사실을 부인하고, 납북자의 송환을 거부한 혐의입니다.

<인터뷰> 설동현(한반도통일과인권을위한변호사모임) : "6.25 당시에 많은 반인도적인 범죄가 있었지만 그 당시에 남한 지역의 많은 민간인들을 강제로 납치해서 북송을 한 그런 사례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북한을 이끌고 있는 김정은을 비롯한 그 책임자들에 대해서 이러한 계속된 억류, 또 남북 납북 사실의 불인정 이런 부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제소를 하게 된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포성과 함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 시기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납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 국회의원 안재홍,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 역시 전쟁 당시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납북자의 대부분이 남성이었고, 88%가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에서 9월, 3개월 사이 사라졌습니다.
전문가는 전쟁 당시 부족했던 지식인을 충원하기 위한 북한의 조직적인 범죄라고 추정합니다.

<인터뷰> 윤여상(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 "전쟁에 대한 행위를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측면도 있고, 전후 복구 사업에 있어서 상당한 인사들을 활용하기 위한 그런 측면이 주어져있는데 김일성이 직접 이런 납치를 지시한 것으로 그렇게 확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목적으로 주로 엘리트층, 특히 젊은 세대들을 많이 납치한 것으로 그렇게 지금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전시 납북자의 존재는 문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50년 작성된 CIA의 기밀 문건에는 635명에 이르는 민간인의 이름과 주소 등이 적혀 있습니다.
미국이 입수한 북한의 납북 인사 명단으로 추정됩니다.
또 다른 CIA 문건에는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북한으로 끌려가거나 총살당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납북자는 없고, 대신 자발적 월북자만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터뷰> 윤여상(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 "납북자들은 자신이 스스로 북한을 선택한 것이다. 월북한 것으로만 의거 입국,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 강제적으로 납치했다고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범죄 행위가 되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범죄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서 납북 사실을 아직까지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거죠."
김지혜씨의 아버지 김점석씨는 서울지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였습니다.
북한군에 의해 서울이 점령된 1950년 7월 8일, 북한군에 끌려간 아버지의 뒷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지혜(6.25 납북자 가족) : "(동네) 청년하고 인민군이 잠깐 조사만 받으면 된다고 하니까 아버지는 그 말만 믿고...... 어머니한테 그냥 빨리 집으로 가라고 애들만 있으니까 이렇게 손짓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리고는 이제 뒤돌아보고 갔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은 정말 몰랐다 하시더라고요."
간단한 조사만 받고 온다는 아버지는 63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넉넉했던 집안 형편도 아버지의 실종으로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인터뷰> 김지혜(6.25 납북자 가족) : "그건 말 못해요, 얼마나 어려웠는지. 애는 셋이지, 애들은 어리지, 어머니가 참 많이 힘들었고 저희도 고생하고...... 그래서 이제 외갓집 신세도 졌고, 처음에는."
전시 납북자 가족들에겐 월북자 가족이란 꼬리표가 따라붙었습니다. 가족과 생이별을 한 채 북한으로 끌려갔지만 정부도, 사회도 전시 납북자를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납북 피해자에 대한 대책과 보상은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인터뷰> 이경찬(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 ; "휴전 회담 당시 우리 정부는 납북자 문제 의제화에 적극 참여하지 못했고, 또 개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납북자 송환에 대한 협상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책이 강구되지 않은 채 40년이라는 공백 기간을 보냈습니다."
2010년이 돼서야 전시 납북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전시 납북자 가족의 신고를 받아 북한에 생사확인과 송환을 요구하기 위해섭니다.

<녹취> 김황식(당시 국무총리/2010년 12월) : "납북 피해에 대한 정확한 진상을 규명해서 납북된 분들과 그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공식 인정한 전시 납북자는 현재 2560명, 10만 명으로 추정되는 납북자의 50분의 1 수준에 그칩니다.
홍보 부족은 물론이고 납북자 가족들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에 조사 자체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그리고 반인도적 범죄까지. 국제형사재판소는 이른바 전범자를 처벌하기 위해 설립된 전쟁범죄재판소입니다.
20년 가까이 철권통치를 통해 3천 여 명을 학살한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 내전을 일으켜 3천 여 명의 사상자를 낸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역시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섰습니다.
납북자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한 것 역시 이 때문입니다.

<인터뷰> 설동현(한반도통일과인권을위한변호사모임) : "당국과 당국 대 관계로 이렇게 상대를 해야 되는 경우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와 같이 납북자 이 문제를 하나의 어떤 유권적 해석을 가지고 어떤 법적인 귀속력을 가지는 어떤 그런 결론을 이끌어 낼 어떤 그런 기구는 현실적으로 국내에서는 존재하지 않고요. 그래서 부득이 이 문제를 어떤 국가 간에 문제를 다루는 어떤 국제 사법 기관에 제소할 수밖에 없다."
변호인단은 김정은이 직접적인 납치와 감금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납북 행위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계속범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판례가 없어 논쟁의 여지는 존재합니다.
로마조약에 근거한 국제형사재판소규정은 규정 발효 후 벌어진 범죄에 대해서만 관할권을 가집니다.
즉, 한국이 국제형사재판소의 당사국이 된 2003년 이전의 범죄는 다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터뷰> 채명성(한반도통일과인권을위한변호사모임) : "이 건 같은 경우에는 사실 1950년에 발생을 했었고, 벌써 한 60년 이상 시간이 흘렀잖습니까. 계속범 이론이 현재 학계나 이런 데에서만 제기되고 있고 ICC에서 명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이제 판결을 내린 바도 없고 그게 사실 규정에 들어가지도 않기 때문에 저희도 100% 확신할 수 없고요."
김정은의 혐의가 인정돼도 난관은 남아 있습니다.
북한이 국제형사재판소의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범죄혐의자를 인도하거나 체포에 협조할 의무가 없는 것입니다.
판결 시간도 문젭니다.

<인터뷰> 채명성(한반도통일과인권을위한변호사모임) : "ICC에서 첫 유죄 판결이 2012년도에 있었습니다. 설립은 2002년도에 했는데. 그런 걸로 보면 사실 이 건에 대해서도 ICC가 정말 이 건을 조사해서 유죄 판결을 내리기까지 어떤 법리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상당 기간이 소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시 납북자 가족들은 이번 제소에 참가한 목적이 단순히 이기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북한의 위법 행위와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려 하루 빨리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유해만이라도 돌려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김지혜(전시 납북자 가족) : "어떻게 사셨는가, 북한에서. 그리고 언제 돌아가셨는가. 그리고 어디에 사셨는가."
이달 말, 국군포로송환위원회 역시 국제 형사 재판소에 북한을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63년의 세월 동안 납북 피해자에 무관심했던 남북 정부 대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납북 피해자에게도, 남겨진 가족에게도 남은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하루 빨리 이들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이 나오길 바랍니다.

--------------------------------------------------------------------------------------

■ [最近の北朝鮮] 북한의 샌드 아트 ‘모래 그림’ 外=北朝鮮のサンドアート〝砂の絵〟、ほか ⇒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PAGE_NO=&SEARCH_NEWS_CODE=2760177

[요즘 북한은] 북한의 샌드 아트 ‘모래 그림’ 外

<앵커 멘트>
북한의 최근 소식을 알아보는 '요즘 북한은'입니다.
'샌드 아트'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하는데요, 최근 북한에서는 창작가들이 모래그림과 무대공연을 접목해 이색적인 무대 예술을 선보였습니다.
경쾌한 연주에 맞춰 조명판 위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길.
춤을 추듯 모래를 뿌리고 쓸어내기를 되풀이 하자 아름다운 그림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모래로 만들어낸 평양시의 야경, 왼쪽에는 놀이공원도 그려졌습니다.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의 모습도 이색적입니다.
삼지연악단과 만수대창작사가 함께한 음악과 모래그림의 공연입니다.

<녹취> 홍근찬(공훈예술가) : "우리 미술지도 일꾼들이 유능한 미술 역량을 발동해서 인재들을 선발하고 이 모래그림을 우리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이런 조직 사업을 면밀히 하고 시작했습니다."
작품 가운데는 <흥부와 놀부>같은 전래동화를 그린 것도 있지만, <조국과 병사>, <장군님 그리는 마음>등과 같은 북한의 정치사상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녹취> 김창혁(공훈예술가) : "우리 독창적인 시대적 반영으로써 이제 일심 단결된 우리 조국, 또 우리 시대적 반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으로 되게끔 창작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모래그림은 2011년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의 미술 창작 단체 만수대창작사에서 시작됐는데요, 그 시기의 북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현대식 대형 마트 ‘만수교 고기상점’

<앵커 멘트>
북한TV가 최근 평양시 보통강변에 세워진 '만수교 고기상점'을 소개했습니다.
우리의 대형마트와 같은 '고기상점'에서는 어류와 육류는 물론 평양냉면과 청량음료를 즐길 수 있는 식당도 마련돼 있습니다.

<리포트>
수조 안을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철갑상어.
옆 수조에는 향어와 뱀장어, 자라도 보입니다.
마치 동물원의 수족관을 연상케 합니다.
판매원이 철갑상어를 수조에서 건져 비닐봉지에 담아줍니다
지난해 4월, 평양시 보통강변에 세워진 '만수교 고기상점'입니다.
물건을 사서 담을 수 있는 카트는 기본이고, 카트를 끌고 쉽게 오갈 수 있도록 자동문도 설치돼 우리의 대형 마트와 같습니다.

<녹취> 림미영(부원) : "우리 상점에서는 원수님의 가르침대로 인민들이 수요가 높으면서도 영양가가 높은 수천 킬로그램의 물고기와 고기를 하루에 수백 세대에 걸쳐서 정상 봉사하고 있습니다."
1층에는 활어와 냉동생선을 판매하고, 2층에서는 각종 육류와 오리탕, 오리훈제 등 다양한 완제품도 판매합니다. 3층 식당에서는 불고기와 평양냉면, 청량음료를 즐길 수 있습니다.

<녹취> 김향숙 : "정말 우리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이렇게 좋은 곳을 마련해주시고 이렇게 좋은 고기를 우리에게 안겨주시려고…눈물이 나서 말을 못하겠습니다."
북한 당국은 '만수교 고기상점'을 주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기 위한 시설이라고 선전했는데요, 현재 북한의 축산업 규모로 볼 때 충분한 공급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요즘북한은 이었습니다.

--------------------------------------------------------------------------------------

■ [クローズアップ北朝鮮] 김정은 정권 2년…지금 북한은! =金正恩(キム・ジョンウン)政権2年…いま北朝鮮は! ⇒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PAGE_NO=&SEARCH_NEWS_CODE=2760178

[클로즈업 북한] 김정은 정권 2년…지금 북한은!

<리포트>
지난 여름, 북한 지방 도시의 한 강연장에 주민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녹취> 연맹 간부 : “지금부터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대원수님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마흔아홉 돌 기념 군안의 00일군들과 000들의 경축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이곳에 모인 주민들은 바로 김정은 체제의 ‘정치학습’을 위해 동원된 인력들인데, 북한 정부는 지방 중소도시 주민들까지 사상 교육을 위해서 한자리에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녹취> “백두산 줄기 내려 금수강산 삼천리…”

<녹취> 연맹 간부 : “백전백승의 조선노동당의 위대한 지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계시어 우리 당은 영원히 필승불패의 당으로 빛을 뿌리며 당의 영도따라 조국과 원수의 승리를 향하여 억세게 나아갈 준비를 맞이했습니다.”
나이 어린 지도자인 김정은의 정치적 정당성을 굳건히 하고, 1인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북한 정부는 주민들에 대한 사상학습에 열을 쏟고 있습니다.
정치사상 학습이 진행되는 동안 ‘김정은 찬양 공연’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시간이 지연되자, 기다리던 주민들은 배고픔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녹취> 북한주민 : “아 뭘 하니, 빨리 하지 못하니. 배고파 죽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 위에서 공연이 시작되는데, 주요 내용은 3대 세습 정당성을 바탕으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합니다.

<녹취> : “우리 당과 인민을 영도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우리 당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어… 그렇다 김정은 동지는 조선노동당, 조선노동당은 김정은 동지!”
북한 정권은 이렇듯, 강연과 노래로 사상학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녹취> 연맹 간부 : “다 장악을 해서 오늘 과업에서 1등을 해야 되겠습니다.”
강연장 한쪽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자라는 구호가 걸려있는데, 역대 북한 정권의 선군정치를 강조하면서 김정은 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39년 만에 당의 유일사상 체제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을 수정해 ‘김정일 우상화’를 명문화했는데, 정치 학습 현장에서 이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습니다.

<녹취> 노동당 간부 : “당의 유일 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제정하고, 심화 발전시켜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내놓으셨습니다.”
김정은 정권의 사상화 작업은 지방 도시의 길거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인 태양상은 3대 세습의 정당화를 위해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 사회 곳곳에 건설됐습니다.
김일성의 영원한 생을 기원하는 문구가 적힌 영생탑도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 대리석으로 제작됩니다.
김일성 부자 벽화 옆으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 만세’라는 구호와 각종 선전 문구들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거리에는 혁명전적지 답사를 마친 대학생들이 행군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김정은 체제는 지방 도시 주민들까지 정치사상 학습을 강화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배고픔에 굶주린 모습입니다.
북한의 오랜 경제난은 군대도 예외가 아닙니다. 적어도 먹을 걱정은 없다고 여겨졌던 북한 군대도 최근 배급사정이 좋지 않아 군인들의 영양실조도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녹취> 북한 군인 : “기름 한 숟가락씩만 밥에 쳐줘도 한참 낫겠는데, 아예 그런 거 없이 소금국에다가 염장무 먹으니까 아이들이… 배야 세게 고프지요. 강냉이밥 요만큼 먹고 하루 종일 곡괭이, 삽, 맞 들이질(하고)…”
이 북한 병사는 배고픔에 굶주린 나머지, 탈영병도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녹취> 북한 군인과 질의 : "(너네는 도망치는 아이들이 없니, 배고프면 도망치는 게 있겠지?)있지 뭐. (탈영자 많니? 더러 있지?) 응."
식량난은 물론이고 열악한 환경 탓에 제 때 치료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놓습니다.

<녹취> 북한 군인 : "이때까지 부대에서 앓다가 왔습니다. 심장 아픈데다가, 대장염까지 걸려서…"
군부대 사정도 이러한데, 일반 주민들의 식량난과 경제난은 더 심각할 것으로 보입니다.
집이 없이 떠돌며 밤에 인민반 경비를 서면서 살고 있다는 이 할머니 역시 배급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녹취> 북한 주민 : "(배급을 못 타는가, 할머니는?) 아니 글쎄, 왜 배급을 주지 않니 (배급을 안 줍니까?) 아직 안 줬어."
꽃제비 아이들 역시, 여전히 북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 앞을 비롯해, 시장 입구 주위에는 갈 곳을 잃고, 굶주린 꽃제비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녹취> "야 아이들이 배고프니까 맹물도 막 마시는 거봐. 남이 먹던 (냉면) 물을 마시는구나."
그러나 신발도 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굶주림에 지쳐 우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이는 없습니다.

<녹취> "운다고 누가 먹을 걸 주니..."
형제로 보이는 두 아이가 창고 건물 앞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누워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린 꽃제비뿐만 아니라, 나이든 꽃제비도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먹을 걸 찾는 모습에서 쉽사리 변하지 않는 북한의 경제난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주민들의 배고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김정일, 김일성’의 우상화 작업을 위해 세금 명목으로 자갈을 받기도 합니다.

<녹취> "이거 여기다 쏟아 부으면 되나? (이거 뭐 건설해요?) 온실을 건설한다는 거 같애."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서 하천 정비 작업 현장에 어린 아이를 포함한 주민들이 강제 동원되기도 합니다.
장기적인 북한의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의 개혁 개방 움직임에 맞게 시장경제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지방 도시에서 열린 장마당에는 매대에 사고 팔 물건들이 넘쳐나고, 중국 화폐인 위안화까지 상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는 풍경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녹취> 북한 상인 : "(장비(중국 돈) 단속하는 게 안 나왔습니까?) 응, 일없다. (장마당) 첫 시간엔 (단속) 없소."
일반 주민들 실생활에 어느 덧, 시장경제가 스며들었고 또 이를 통해 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에는 씻는 물까지 돈을 주고 거래하는 현장도 포착됐는데, 북한 내부에 시장경제가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 있는지, 단 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녹취> "(그거 세수 한 번 하는 데 얼마에요?) 500원 (네?) 500원인데 300원에 하라. (야 여기서 어떻게 씻간. 안에 들어가서 씻는 건 없나?) 심지어 장마당에는 어린 아이들이 직접 나와 농산물이나 각종 상품을 파는 장면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녹취> 장마당 어린이 : "(호박 1킬로그램에 얼마 하니?) 1킬로그램에 1500 부릅니다. (1500부르니? 학교를 안 가니 넌?)"
한 어린 꽃제비는 CD를 들고 와 흥정을 하기도 합니다.

<녹취> 북한 꽃제비 : "(그 어디서 났니? 제목이 뭐이가?) 제목은 몰라요 (거 뭐 제대로 돌아가겠나. 얼마니?) 한 알에 2천원,"
아마도 최근 북한에서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 등이 담긴 CD로 보입니다.
장마당에서 CD가 거래되는 걸로 봐서 한류를 비롯한 외국 문물이, 북한 정부의 눈을 피해 내부에 들어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 북한 정부는 한국 드라마 동영상을 배포한 주민들을 공개처형하기도 했습니다.
장마당 이외에 북한의 시장경제를 짐작하는 데는 시내 거리의 아파트에 걸린 상점 간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시내에 위치한 국영상점에는 중국산 장남감과 의류와 가정용품을 비롯해 고가의 생활용품들이 진열돼있고, 점원들이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녹취> 국영상점 직원 : "(치마 얼마하나?) 어우, 난 골이 아파라. (저기 이 증폭기(스피커) 얼마하나?)"
이곳은 지방 도시의 한 기찻길. 북한 주민들이 기찻길 위에 떨어진 석탄을 줍고 있습니다.
수출용 석탄 운송기차가 지나갔던 자리에서 남겨진 석탄을 주워 모아 생계를 위해 내다 파는 것입니다.

<녹취> 북한 주민 : "(이렇게 주워다 때도 돼요? 하루?) 하루 두어 양동이 (주워요) (한 양동이 5천원이면 만원은 벌겠구만) 5천원씩"
열차가 역에서 빠져 나오면, 적재함에서 석탄을 떨어트린 다음 그걸 줍습니다.
역 안은 보위대가 쫓아오기 때문에 그곳까지는 주민들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배급을 받지 못하고, 굶주린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떨어진 석탄까지 주워 모으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1인 우상화’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도시까지 북한 사회 깊숙이 사상 교육을 벌이고 있지만,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는 점차 와해되고, 시장경제가 주민들 생활을 실질적으로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실생활 밑바닥부터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북한 시장경제 변화의 바람이 앞으로 북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됩니다.

--------------------------------------------------------------------------------------

■ [北朝鮮映像] 양산도=ヤンサンド ⇒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PAGE_NO=&SEARCH_NEWS_CODE=2760179

[북한영상] ‘양산도’

여성 독창   女性独唱


[この記事はKBSからの引用です。著作権はKBSが所有し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