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onの楽しく生きる好日

egonの楽しく生きる好日

日本で住んで行く私ーよろしく(^O^)

Amebaでブログを始めよう!
11월1일, 2일 와카야마에 다녀왔다.

10월 31일, 오사카에 있는 아이코 아버지 가게에도 다녀왔지만, 와카야마에 이틀 있다가 막 와서 그런지, 와카야마에 대한 여운이 많이 남는다.

중학교때, 나는 사랑을 했다. 어른이 된 시선으로 연예인을 사랑한다는 표현은 우습게 들릴수도 있지만, 내 인생 이이상으로 무언가에 몰두 할수 있을까 라는 표현을 감히 자신있게 쓸수 있을정도로 나는 하이도에 빠져있었다.

그가 와카야마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한번도 일본에 가본적도 없지만, 와카야마라는곳에 너무나도 가고 싶었다. 꼭. 언젠가는 가야지. 한번은 가고 말거라고 가슴속에 뜨겁게 꿈 리스트중 하나로 넣어둘 정도였다.

일본에 있으면서도 와카야마는 가기가 힘들었다. 칸사이라고 해도 오사카에서 가는 버스도 없고, 전철로 1시간 이상은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이 칸사이라고 해도, 쿄토와 오사카와 달리 특별히 관광지도 아니고 특출나게 뛰어난 볼거리도 없어서, 존재감이 옅은 곳이라고 할수있다.

오사카에서 전철을 타고 한시간, 와카야마에 도착한 순간 나는 온전신에 꿈속에 도착한 기분이였다. 그저 와카야마. 평범한 시골 역이지만, 중학교때의 나자신이 그렇게 그리던 곳에, 거진 15년이란 시간을 걸쳐서 온것이였다.

그저 똑같은 일본의 시골 풍경에, 특별히 다른것도 아닌데, 내눈앞에 와카야마 라는 간판이 걸린 자체로 시간을 이동한 특별한 공간에 도착한 기분이였다.

사실 하이도의 숙부가 운영한다는 프랑스 요리점에 제일 먼저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그땐 너무 피곤하고 부랴부랴 와카야마에 도착했기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급히 변경하여, 일본 팬이 하이도 성지 관광지를 모아둔 맵을 가지고 성지(?)가 많이 붙어있는곳에 나카마쯔에에 도착했다.

와카야마가 시골이라는것은 익히 들어온 사실이였다. 하지만 정말 와카야마는 시골이였다. 역도 너무 작았고, 역에 역무원 한명.. 정도. 역도 엄청 허름하고.. 정말 옛날 선조때부터 일본인들은 이렇게 살아왔구나.라는 것이 정말 잘 느껴지는 건물들이였다.

가장 먼저 발견한 성지는, 마쯔에 유치원. 어디에 있는걸까하고 한참을 들여보다 바로 코앞에 있어서 놀랬던것같다. 나카 마쯔에 바로 옆.와카야마에 도착한 사실도 신기 했지만, 정말, 여행의 목적인 성지를 눈앞에 하자 너무나도 신기했다. 아. 어릴적 내가 그렇게 그가 살았던 흔적을 가보고 싶어했는데, 바로 여기에 그가 실제로 생활했던 유치원..이라니. 사실 평범한 유치원이지만 한사람의 인물이 신비로운 건물로 느껴지게 만드는건 참 대단한것같다.

사진을 찍고 개인 운영 샾 데빌 원을 찾아간것같다.

길을 찾아가며 느끼건, 아무튼. 토니카크 이나카. 시골. 사람이없다. 사람이 없다.

데빌원은, 문이 닫혀있었는데, 그 시골풍경속에 떡하니 존재감이 다른 건물이 놓여있는데, 그 건물 디자인에서 하이도가 느껴졌다. 그렇게 성공해도 와카야마에 이런 가게를 세워놓다니.. 역시 사람은 태어나고, 자란곳이라는건 모태처럼 느껴지는걸까?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을 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하면 뭔가를 숨기고 있는것같이 느껴지는것처럼, 자신의 출생지는 자기 자신으로 느껴지는걸까?

데빌원을 지나서 초등학교를 갔다. 하이도의 본명은 타카라이 히데토. 엄마가 히데짱.이라고 불렀다고 자서전에서 읽었던것같다.

엄마 손을 잡고 초등학교를 다녔던 어린이 히데짱이 그려졌다. 숱들이 많고 강가에 놓여진 초등학교였다. 안에 들어가서 운동장에 갔는데, 초등학생들이 나를 슬금 슬금 쳐다보더니 야구하던 어린이가 콘니찌와. 하고 인사를 하였다. 일본인들은 참 .. 인사성이 밝다. 한국은 절대 인사 안하는데..

이래저리 둘려보다 토끼를 발견했다. 아. 역시 초등학교. 와카야마에 와서 찾아온 이 초등학교에서 만난 토끼에게 만나게된 것에 작은 감동을 느꼈다.

인사를 하고 곧바로 중학교로 이동. 조금 날이 어두워져서 깊이 볼수는 없었지만, 초등학교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정말 한동네에 오래 살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안에 용기를 내서 들어갔는데, 여학생들도 있었다. 여기 남녀공학이구나. 역시나 학생이 아닌 내가 있으니 힐끔 힐끔 쳐다봐서 나도 그냥 조금만 보고 나왔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지만, 공부자체에 흥미가 없었다던 중학생 히데짱.
교실을 밖에서 바라보며 저 교실안에서 수업시간 그림을 그리던가, 졸고 있는 히데짱이 그려졌다.

그리고는 음악생활을 했다는 스타지오 아이.에 도착. 가장 가보고 싶었던곳.
정말 허름한 건물. 뭔가 하이도가 음악생활 했던 건물 그대로, 변하지 않았을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에도 아직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이 느껴졌다. 밖에 자판기가 있었는데, 음악을 하고 잠시 쉬로 여기서 음료를 뽑아 먹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음악의 꿈을 키웠구나..와카야먀 청년이 정말, 크게 됐구나.등등.

괜히 한번 건물에 손을 대보고 가슴속에 깊이 새겨두고 이동.

그뒤로는 핸드폰 밧데리도 아슬아슬하고, 피곤도했고, 때마침 게스트하우스가, 하이도가 알바했던 곳이랑 엄청 가까워서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

와카야마시역에서 버스를타고 혼마치2쵸메에 내려서, 때마침 비가와서 힘들게 갔던것같다. 어플이 가르쳐주는 도착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던것같다.

3층으로 올라가서 도착. 오너인 히라이케상이 계셨다. 사진이랑 인상이 달라서 놀랬따. (수염...) 청소 하시는 중이셔서, 전화를 한번 할걸 그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중에 바지를 입으셔서 서로 뻘쭘 아닌 뻘쭘;;

이 게스트하우스를 혼자 하시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혼자서가? 혼자 밥먹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기에, 혼자서 경영하시냐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딱히 사람도 없었고, 이틀동안 지켜본 결과, 혼자 하시는듯했다.

아무튼 충전을하고, 넓은 방을 소개받고나서 부라쿠리쵸 상점가를 돌아다녔다.

바로옆에 take off 악기점이있었다. 아. 여기도 흥분 해버린다. 이곳에서 알바라..

인형같은 미모에 여리여리한 체격의 남자애가 악기점에 있었으면 신비로웠을것같다.

하지만 가게에는 그냥 아저씨가 있었다 ㅇ.ㅇ;

간판에는 테츠가 ,밑에는 유키히로 포스터가 있었다. 사진을 찍었는데 아저씨가 낌새를 눈치채고 쳐다보았다. 이런 애 처음 인가? 아무튼 흥분한채로 안에 진입.
악기들이 늘여져있고, 옆칸에는 시디가 판매 되고 있었다. 뭔가 와카야마 자체에 사람이 없으니까, 장사가 될까;라는 생각이들었다. 너무너무 사람이없다. 길을 헤메니 사람에게 물어 가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서 물을 수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없다. 다들 꿈을 향해서, 무언가를 찾아서 도시로 떠났음을 느꼈다.

도쿄에 내가 그렇게 사람이 많아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서 그곳에 있는것이였다.

아무튼 악기를 구경하다가, 3층에도 뭔가 가르쳐주는 레슨 코너가 있는것같았는데, 악기를살것도 아니고, 주인 아저씨도 나를 낌새를 좋게 보는것같지도 않고.. 그냥 나왔다.

막 데뷔했을때 공주님 컨셉의 하이도가 그곳에 서있는것을 상상하였다.

그리고 알바 끝나고 바라 혼텐이라는 카레집에서 카레를 자주 먹었다는데 어플 주소로 갔을땐 존재하지 않았고, 웹에서도 폐점이라 되어있어서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바라혼텐이있었다. 주소를 이동했는지...마지막날에 여행 끝 마무리로 먹었는데 , 코코이치방이랑 다르게 , 뭔가 수수하고 담백한, 정말 가정집 카레 같은 깔끔한 맛이였다.
나는 이쪽 카레가 좀더 취향이엿다. 정말 담백한 맛이였다. 고기도 정말 담백했다.
아무튼 60년 전통이라고 써져있었고, 흑백 사진도 있느거보니, 전통을 자랑하는 카레집이라 옛날부터 지켜온 맛이겠지.하이도도 이 맛을 먹었겠구나 즐기며 먹음.

(이건 2일날 밤에 일어난일)

테이크오프를 보고 나서 브라쿠리 쵸를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내일 어떻게 할건지 구상을 짰다. 와카야마 너무 시골이라서, 음식점도 찾기 힘들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계쏙 편의점으로 때웠던날. 계란이 먹고싶어서 계란 하나사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다.

아저씨가 있었다.

나는 히라이케 아저씨가, 뭔가 쓸쓸해보였다.

계속 담배를 피는데, 담배피는 옆모습이 쓸쓸해보였다.

와카야마가 시골이란건 잘 알고 있는데, 이틀동안 손님이 두명이였다. 이렇게 해서 장사가될까..라는 괜한 남걱정. 할일이 없어서 그런가, 계속 담배를 피고, 술을 먹었다.

내가 혼자가 되어봐서 아는데, 술담배는 혼자 있을수록 더욱더 하게 된다.

아무도 없으니까. 외로우니까. 외로움을 잊을려고. 그리곤 아무도 없으니 더더욱 하게 되는.

가족도 안계신가.. 자신의 방에서 티비를 보시는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릴때 외할아버지 집에 갔었을때, 할아버지는 항상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늘 같은 공간에, 늘 누워서 텔레비젼을 보셨다.

나는 정지된 채로 시간만이 흘러간다는 기분이들었다.

히라이케상이 방안에서 티비를 틀어서 누워있는데, 티비소리만이 흘러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은 노년을 이렇게 보내고 계시는구나..

아무튼, 뭐..남걱정이라는게 제일 쓸모 없는거라지만, 좋으신분 같은데 내 추측으로 가족도 없는것같고, 손님도 안오고. 그냥 쓸쓸히 티비만 보는것같아서 마음이 좋진 않았다.

그렇게 있는데, 여자 손님이 오셨다. 오사카에서 요트 타러 왔다고.

요트 이야기로 둘이 타오르시길래 나는 할말도 없어서 그냥 씻으러 갔다.

그리고 다음날 가덴파크에 하이도가 던킨도너츠에서 알바했던곳이 가깝다고 해서 가덴파크버스정류장을 가르쳐주셨다. 버스를 타고 갔는데, 웹에서 폐점이라고 되어있어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폐점되어 미용실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투벅투벅 걸어서 숙부가 하신다는 가게에.
11시 30분 오픈이라서, 한시간 일찍 온 바람에 하이도가 다닌 사카에 보육원을 구경했다.
하이도 아기 사진에 옷에 사카에라고 적혀있어서, 본명이 사카에가 아닌가 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사카에 보육원을 다녔기에 사카에..였던것.

여전히 시골 풍경에 평범한 보육원이였다. 아가 히데짱.너는 커서 음악으로 야망을 품고 밴드로 대박쳐서 예쁜 마누라랑 토끼같은 아들을 두고 아직도 팬심 부여잡고 음악하는 성공인......이 되었구나.

그러고 11시 20분쯤에 숙부 가게 들어갔다. 11시 30분 오픈이라는건 알지만 가게에 오픈 간판이 있길래 그냥 들어갔는데 아직 오픈은 아닌데 ..라며 그냥 들어오세요 라고 말해주시는 분이 아 이분이 ..!라는 감동보다, 가게 들어가자마자, 하이도 사진이랑 메구미 사진이있어서 깜딱..놀랬다. 아니 대놓고 하이도 친척이라는걸 어필하는구낭.ㅇ;;;;

꽤나 옛날 사진으로 보이긴 했지만, 뭐랄까, 가슴속에 정말 하이도로 장사하는구나; 라는 불편한 마음이 없진 않았다. 그리고 혼자 왔다니 허름한 카운터 자리를 주었다.

딱히 말안해도, 팬이라는걸 알겠거니 하고 말 안했는데,. 그래도 전달하고 싶다 느껴서 나중에 부인으로 보이는 분에게 한국인 팬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뭐랄까, 두분으로 일하시는데 너무 부랴부랴 바빠서 제대로 말할 기회는 없었다.

그닥 먹고 싶은 메뉴가 보이지 않아서 가장 싼 런치를 주문했다.

뭔가 주르르 계속 나오는데, 솔직히. 맛있진 않았따 ..ㅡ;ㅡ;;; 마쯔야도 맛있게 먹는 내가..
프랑스 요리점도, 라르크가 프랑스어니까 노려서 한건가? 기분도 들고.

가게도 시각한지 13년정도 라니 정말 라르크로 대박치고나서 만들어낸 가게인듯.

가게 포스트도 타카라이가 아니고 왜 요시노?인지? --;;아무튼 그래도 뭐 정말 하이도 본인이 사진찍은거 보면 정말 가족이긴 가족이겠...지만요

앞에 하이도 사인도 있고, 인형도 있어서 찍어도 되냐고 물었는데 잘못 알아 들었는지 사진첩을 들고 오셨다.

거기서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_-;;;;;;;;;;;;;;;;;;;;;;;;;;;;;;

정말 눈을 의심...이런거 봐도 되는건지.

정말 사생활 하이도.

메구미랑 같이 자기 아이들 딸 아들이랑 찍은것같은데, 금발 하이도인걸 보니 아마...
2002년? 개인 솔로 활동 할때 즈음인것같다. 하이도도 하이도지만 메구미 진짜 개여신..
이렇게 이쁜 여자 있을까? 할정도로 정말 너무 미인. 하이도도 일반인 만들어버리는 눈부신 미인.....ㅠㅠ 이시하라 사토미가 제일 이쁘다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이세상에 오오이시 메구미가 제일 이쁠지도 몰라. 하이도도 발라버리는구나..쌩얼이긴 했지만..

너무 이뻐서 하이도도 발라 버리고 옆에 일반인 친척 꼬마인대도 안예뻐 보였다..

그리곤 연예인 하이도. 여전히 사촌들이랑 찍은건데 이야.. 얼굴 ..눈이 정말 왕눈이..
아주머니하고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마네킹인줄알았다. 그리고 살이 잠시 붙었던 적이랑, 완전 너무 살을 뺀 하이도가 있었는데, 쌩얼인지.. 그래도 합성같았다...

보육원부터 시작해서 유치원, 초등 중등, 알바한곳, 음악한곳.. 다 찾아보다 사촌끼리 찍은 사진까지보니까 정말 그냥 마누라 있고 부모님있고 아들 있고 친척있고 성공한 와카야마 남자였음..

그리고 하이도가 음악 생활하면서 자기 프로필을 전부 비밀로 공개 하지 않았던 시기가있었는데,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이 시골.. 그리고 그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않아서 바보들만 간다는 니시고등학교 자퇴.

이런걸 알리고 음악생활을 했으면, 라르크 하이도를 보는게 아니라, 편견이 들어갔었을것같다.

사실 음악만 하면 그 밴드안에 보컬로서만 봐주는게 사실제일 바람직 한것이니.

중학교때 라르크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을보엿는데 이젠 밴드로 대박친 시골 청년으로 보이니..

둘이 그렇게 바쁘더니, 2시 가까이 되서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아무리 생각해도 일러스트가 별로라서 건너지 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걸가지고 못그렸다니 버리든, 내가 마음을 전해야겠다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들어서 일러스트를 건넜다;
사실 그렇게 기뻐보이진 않았다 ㅡㅡ;;그래도 난 여기까지 온 이상 내 할일을 할뿐 그뒤로는 너희들 알아서해 ㅋㅋㅋㅋ--;;;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하이도가 앉았던 자리라고 가르쳐주셨는데, 기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많이 기쁘진 않았다. 난 지금 하이도는 흥미가 없기 때문이다 ㅡ;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아이코니 하이도니 매달리고 있는것도, 좋아하고 흥분할것을 억지로 내가 놓지 않을려고 아둥바둥하는 기분이 든다.

전에는 진심으로 그들이 좋앗는데.. 지금은 100프로의 기분이 아니다. 전엔 2000프로 의 기분이였다.

인사를 하고 밖에 나왔는데 콘센트를 잊어서 다시 돌아감. 그랬는데 폰 화면이 꺼졌다.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였다 -_- 거짓말이겠지 라고 계속 켰는데 화면이 죽었다.

이게 어떻게 된일이냐.. 하이도 가게 나오자마자 폰이 사망하다니. 이게 무슨 운명이냐고..

소프트뱅크에 갔는데 애플스토어에 가야한다는데 와카야마에는 애플 스토어가 없어서 오사카까지 가야한단다.. 처음엔 너무 어이가 없었는데, 그렇게 사람이 없는곳에 애플 스토어를 세울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 이성이 찾아오고 나서)

그리고는 와카야마역에 돌아와서 이데쇼텐에서 와카야마 라면을 먹고, 카다역에 있는 아와시마 신사로 갔다. 니시 고교에 가고 싶었는데, 폰도 죽어있었고, 피곤도 했고.. 그냥 바다가 보고 싶어서 아와시마 신사로 갔다.

카타 역인줄 알았는데 카다 역이였다. 그곳에 간건 잘한 선택이였다. 화장실이 푸세식이여서 깜짝 놀랫....지만. 20분 정도 걸었는데, 정말 바닷가에 할아버지 할머니 뿐이였다.

도착하니 데토라폿토가 있었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정말. 가장 좋았던 순간이였다. 아와시마 신사에 가니 인형들이 놓여져있는데, 사진을 찍고 싶어도 폰이 고장나서 안되었다. 그리고 와카야마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갔다. 오너상이 혼자있었다. 생각을 해봤는데, 3연휴에도 손님 두명있는데 평일에는 장사가 될까;;; 난 또 남걱정을 하였다. 나나 잘하지.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느낀건, 모든것은 지나가버리는것이니 항상 나자신을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걱정이 제일 쓸모 없고, 남을 욕하는것도, 과거를 욕하는것도 의미가 없다는것. 남에게 의지를한다는것은 자신을 잃는다는것.. 나자신이 있고나서 남을사랑할수 있다는것. 그리고 나와 인연이 없는 사람들을 다 놓아줘야한다는것. 지나간것은 지나간것이라는것. 그리고 힘들어도 지나간다는것. 놓아주기. 그래서 사람은 혼자만의 길을 걷게 되는것. 그래서 외로운것..

게스트하우스 오너상을 보면서도 느낀게 많았다. 도쿄 30년을 일해도 와카야마에 돌아오던 오너. 난 부산에 돌아간다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여기서 10년은 일해보고싶다. 아직까지 돌아갈순 없다. 난 지금부터니까. 10년은 해보고, 그때 뒤를 한번 돌아보자.

그리고 10년이든 20년이든 30년이든.. 고향이라는곳은 돌아갈수 있는곳. 이라는것도 알았다.

지금은 이곳에 있어야할때. 고향도 소중히. 지금 있을수 있는 지금도, 이 순간도 소중히 여기자. 그냥 나를 믿자. 믿어주는 일 밖에 할수가 없으니까.

want 라는 인생의 모티베이션이 된다.

꿈은 인생의 큰 워크프러세스가 된다.

바라는 인생을 살자. 결국 흙으로 돌아갈것이니까.

하이도를 보내고, 이제 내 삶을 채워나가자. 남을 미워하는것에는 의미가 없다.

나를 가지고 있자.

와카야마에서 과거의 나를 보내고 앞으로의 나를 맞이한 기분이 들엇다.

하이도. ありがとう。これからは自分の夢を描き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