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결심
♣김경미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
여행용 트렁크는 나의 서재
지구 끝까지 들고 가겠다
썩은 치아 같은 실망
오후에는 꼭 치과엘 가겠다
밤하늘에 노랗게 불 켜진 보름달을
신호등으로 알고 급히 횡단보도를 건넜으되
다치지 않았다
생각하면 티끌 같은 월요일에
생각할수록 티끌 같은 금요일까지
창틀 먼지에 다치거나
내 어금니에 혀 물린 날 더 많았으되
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
목차들 재미없어도
크게 서운해하지 않겠다
너무 재미있어도 고단하다
잦은 서운함도 고단하다
한계를 알지만
제 발목보다 가는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의 고양이처럼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도 길러보겠다
<김용택의 시의적절한 질문의 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플러스』 위즈덤하우스>
♧ 김용택 시인의 말
오늘은
자신을 위해
어떤 생각과 결심을
하셨나요?
내가 단단해지면
언젠가는 다른 이를 위해
결심하게 되는 순간도
찾아올 것입니다.
나를 위한 시
<오늘의 결심>과
소중한 사람을 위한 시
<나의 노래>를
비교하며 읽어보세요.
나의 노래
♣타고르
내 노래는 다정한 사람의 팔처럼
당신의 주위를 감싸리라
축복의 입맞춤으로
당신의 입가에 가닿고
당신이 혼자일 때 곁에 앉아 속삭이고
군중 속에 있을 때는 울타리가 되리라
내 노래는 꿈속에 한쌍의 날개가 되어
당신을 미지의 땅으로 데려가리라
어두운 밤이 당신을 뒤덮으면
머리 위 성실한 별이 되어주리라
내 노래는 당신의 눈동자에 젖어들어
만물의 마음속으로
당신의 시선을 인도하리라
그리고 죽어서 내 목소리가 침묵할 때
내 노래는 살아있는
당신의 가슴속에서 이야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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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미의 시 「오늘의 결심」
김경미의 「오늘의 결심」은 일상에서 과도한 욕심이나 기대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시이다. 시인은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고 말하며,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태도를 드러낸다.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는 구절은 불필요한 과시나 과도한 노력을 경계하는 의지로 읽힌다. 여행용 트렁크를 서재로 삼아 지구 끝까지 들고 가겠다는 표현은 자신의 삶과 경험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일상에서 겪는 실망과 상처를 썩은 치아, 창틀 먼지, 어금니에 혀를 무는 일 등 구체적이고 소소한 이미지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목차가 재미없어도 크게 서운해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기대를 낮추고 일상에 만족하며 살아가려는 의지이다. 너무 재미있어도, 잦은 서운함도 모두 고단하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한계를 알지만 제 발목보다 가는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 고양이처럼,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을 길러보겠다는 결의로 시는 마무리된다. 이 시는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상처에 무너지지 않고 긍정과 애정의 태도를 지키려는 자기 다짐의 시이다.
♧ 김경미의 시 「오늘의 결심」과 타고르의 「나의 노래」
김경미의 「오늘의 결심」은 자기 자신을 위한 다짐의 시이고, 타고르의 「나의 노래」는 타인을 위한 헌신과 위로의 시이다. 「오늘의 결심」은 일상에서 겪는 실망과 상처, 반복되는 평범함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고 단단해지겠다는 의지를 담는다. 시인은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고 말하며,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려는 태도를 보인다. 일상에서 오는 크고 작은 실망과 상처를 구체적인 사물로 표현하면서도, 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에는 갈색 고양이처럼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을 기르겠다는 결심으로 시를 마무리한다.
반면, 타고르의 「나의 노래」는 자신의 노래가 다정한 사람의 팔처럼 타인을 감싸고, 축복과 위로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담는다. 시인은 노래가 상대방을 보호하고, 외로울 때 곁에 머물며, 꿈과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노래가 사랑하는 이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기를 바란다.
두 시 모두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다루지만, 「오늘의 결심」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 성장하려는 내향적 결의이고, 「나의 노래」는 타인을 위로하고 감싸려는 외향적 사랑이다. 김경미의 시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자기 다짐을 표현한다면, 타고르의 시는 상징적이고 포근한 이미지로 타인에 대한 헌신을 노래한다.
♧ 저자 : 김경미(金慶美, 1959~)
김경미(1959년 6월 24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쉿, 나의 세컨드는』, 『고통을 달래는 순서』, 『밤의 입국심사』,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등 다수의 시집을 발표했다.
김경미의 시는 일상적이고 소박한 소재, 반어와 역설, 블랙유머, 그리고 외롭고 낮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녀는 슬픔과 고독, 일상의 상처를 유쾌하게 전복하거나, 소소한 삶의 순간에서 자기 성찰과 위로를 길어 올린다.
노작문학상, 서정시학 작품상, 김종삼문학상 등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밤의 입국심사』는 시 전문지에서 올해의 시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에세이집으로는 『바다, 내게로 오다』, 『행복한 심리학』, 『일상생활의 심리학』, 『그 한마디에 물들다』,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등이 있다.
방송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하여 KBS 1FM 등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의 원고를 집필했고, 방송작가협회 라디오작가상을 수상했다. 한라대학교, 경희사이버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며, 2008년에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여했다.
김경미는 일상과 내면의 경계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현대 한국시에서 자기만의 목소리와 미학을 구축한 시인이다.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