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インくんの昨夜のInstagramです↓

ConcreteLetter…
今studioconcreteでは新しいイベントが
9日からスタートしたようです…
この文章は
Founder엄흥식(オム・ホンシク)さん
からのメッセージですね!
文章が小さくて
instagram写真を拡大しました↓

yaigalleryでテキストをupしてくれた
方がいるので、お借りしてきました…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yaigallery
翻訳機を使用したまま、手直しなしで
ざっくりとした訳なので
詳しくは皆さんでお願いします…
☆☆☆☆☆☆☆☆
Concrete'sLetter
“내가 언제 ‘자연 따위’를 이토록 깊숙이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자연과 뜨겁게 연애하는 베리띵즈 (VERYTHINGS), 자기 자신으로 기꺼이 자연을 표현하는 작가 김훈, 자연물과 인공물의 조화를 매력적으로 담아내는 작가 신선혜를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프레임으로 세상에 내보이기 몇 달 전. 나는 이런 질문을 통해서 오늘의 전시
휴양지의 풍경으로, 집 안에서의 오브제로, 하다못해 소셜미디어에서 뽐내는 또 다른 패션으로 ‘자연을 가졌던’ 나는, 도시 남자 코스프레로 정신없이 14년을 서울에서 살아오며 ‘가면’이라는 ‘의지’ 없이도 완전히 자연스럽게 도시인임을 거들먹거릴 만큼 값비싼 욕망을 성취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연을 다른 눈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일년에 한 번씩, 권태로운 연인을 걷어차듯 이사를 즐겨 다니며 나는 더 크고, 더 높고, 더 세련되고, 더욱 새로운 냄새를 풍기는 집들을 가지고 또 버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2016년 봄.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의 어느 단계에서 ‘정원’이라는 한없이 낯선 ‘땅’을 내 집 담장 안에 품기에 이른다. 바람이 솨아~하고 창밖 정원의 버드나무를 통행하는 소리에 잠을 청하고, 그 소리에 또 깨어나는 삶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정도의 소리쯤이야 지나온 내 방 안에서도 수없이 스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의미 없거나 성가신 자연의 소리를 비로소 ‘내 집 담장 안’의 것으로 가지고 나서야 나는 그러한 자연의 소리에 허영의 가치를 매겨 귀를 기울이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 집에 대한 설렘을 안은 채 나는 그것이 꽤나 쿨한 유행인 줄을 알고 ‘어번 그린 라이프’ 어쩌고 하는 숍으로 쇼핑을 다녔다. 거기서 나는 나보다 몇 배는 더 뚱뚱하고 천장에 닿아 꺾어질 만큼 키가 큰 자마이카 나무 한 그루를 사다가 거실 한복판에 들여다 놓았다. 나는 남들이 반려견에게 그러는 것처럼 그 뚱뚱한 친구에게 ‘BoB(밥)’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물을 주고, 이름을 불러주고, 인사를 나누고,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가끔은 그것이 내게 먼저 말을 걸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밥의 풍성한 잎사귀들 위로 하얀 먼지들이 이상하리만큼 덩어리지어 쌓이기 시작했다. 그맘때쯤 밥을 향한 나의 사랑은 너무 빨리 찾아온 권태기로 성가신 감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그루 나무를 의인화하는 ‘동심의 놀이’는 그렇게 슬프지도 않은 익숙한 결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밥’에게 쌓인 그것들은 덩어리진 먼지가 아니라 겨울잠을 자다 뿌리에서 기둥을 타고 올라온 ‘흰손깍지벌레’였다. 그래도 남은 애정으로 ‘그것’에게 약을 치고, 햇빛에 내어다 놓고, 또 들여다 놓고, 세찬 빗줄기에 씻어내라고 다시 쫓아내기를 몇 번 반복했다. 얼마 안 가 나는 결국 그 친구와 흰솜깍지벌레들을 그들이 처음 있던 청담동으로 되돌려 보냈다.
밥은 나의 집에 구겨 넣어졌다가 쿠션, 화병, 접시 따위로 ‘교환’되었다. 당당한 ‘환불’ 요구가 거절당한 후였다. 그가 온 곳은 청담동의 콜렉트 샵이 맞는 것일까. 그보다 더 전에, 그전보다 더 전에, 그는 어디에 있었을까.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그와 내 집에서 나눈 대화를 기억한다. 그리고 은밀하게 간직할 것이다.
다른 일로 밤을 꼴딱 새웠더니 전시가 하루 남은 아침이다. 버드나무가 뽑힌 자리 위로 울려 퍼지는 조경공사의 소음을 맞이하며 나는,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지난 내 친구에게
움직임을 멈춰야 비로소 다른 것을 바라보게 되는 모순을 품고,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진리를 알려주지 않는 천지만물 앞에서 초라하게 애정을 갈구하는 나는 그것들 다 ‘자연’이라고 하기로 했다. 충분히 ‘힙’한 자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만하면 꽤 그럴듯한 나만의 ‘어번 네이처’ ‘어번 라이프’가 아닌가
버섯은 관상용 자연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징그러운 생물들일지도 모르는 버섯빌리지를 만들며 내게 이런 고해를 가능케 해준 베리띵즈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겸양과 순수함’이라는 사랑스러운 덫에 걸려 자신들을 마음껏 세상에 뽐낼 줄 모르는 그들을 내 손으로 치켜세우고 싶다. 그들이 이 도시에서 하게 될 위대한 일들의 한 조각을 스튜디오 콘트리트가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무척 영광이다.
또한 경고한다. 그 어떤 미학과 철학으로 무장한 최신의 예술도 자연이라는 완전한 예술 앞에서 감히 거들먹거리지 않기를.
결코 완전치 못한 우리, 저마다 다른 이해들, 저마다 다른 욕망들, 그럼에도 자연 안에서 그저 자연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모든 모순과 관계로 직조된 ‘우리’라는 ‘자연’을 기어코 다시 ‘완전한 모순’으로 드러나는 전시
“우리가 ‘자연’을, ‘우리가 그 안에 있음’을 단 한 번이라도 깊숙이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그들은 산다. 우리는 산다
(翻訳機使用)
「私はいつ「自然など」をこのように奥深くまでのぞき見たことがあったっけ。」
自然と熱く恋愛するベリーチンジュ(VERYTHINGS)、自分自身で喜んで、自然を表現する作家キム・フン、自然物と人工物の調和を魅力的に表わす作家シンソンヒェをスタジオコンクリートのフレームに世に送り出し見える数ヶ月前。私はこのような質問を介して、今日の展示
リゾートの風景で、家の中でのオブジェとして、せめてソーシャルメディアで誇るもう一つのファッションで「自然を持っていた」私は、都市の人コスプレで精神なしに、14年をソウルに住んでいるきて「仮面」という「意志」がなくても、完全に自然に都市であることをゴドゥルモクたてるほど高価な欲求を達成して初めて自然を他の目に覗かれた。
年に一度、グォンテロウン恋人を蹴るように移動を楽しんで通って、私はより大きく、より高く、より洗練された、より新しい匂いを放つ家を持って、また捨て生きてきた。そして2016年の春。終わりの見えない欲望のどの段階で「庭園」という限りなく見知らぬ「地」を自分の家の塀の中に耐えるに達する。風がスァア〜して、窓の外の庭の柳を通行する音に眠りを誘って、その音にも目が覚める生活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だ。多分その程度の音くらいは過ぎた自分の部屋の中でもすることができず、かすめ生きてきたのか知らない。意味ないか迷惑な自然の音を初めて「我が家の塀ない」のことで持って出なければ、私はそのような自然の音に虚栄心の価値を付け耳を傾けるようになったかもしれないことである。
新しい家のときめきを抱えたまま、私はそれかなりクールな流行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る「アーバングリーンライフ」どうしてするショップで買い物を通った。そこで私は私よりも数倍は脂肪質および天井に触れて折れなるほど背の高いジャマイカ一本の木を買って、リビングルームの真ん中に見て置いた。私は他の人が伴侶犬に行うように、脂肪の友人に「BoB(ご飯)」という名前もつけた。水を与え、名前を呼んでくれて、挨拶を交わし、とめどなくそれ見て思索にふけることもあった。時にはそれが私にまず言葉をかけるもしたが、いつからかご飯の豊かな葉の上に白いほこりが異常なほどの塊建てたまり始めた。グマムテぐらいご飯を向けた私の愛は、あまりにも早く訪れた倦怠期に迷惑感情がされて行っていた。一本の木を擬人化する「同心の遊び」は、そのように悲しくもないおなじみの結末を準備していた。
「ご飯」に積もったそれらは、塊状ほこりがなく、冬眠を寝根から柱に乗って上がってきた「フインソンポッド虫」だった。それでも残りの愛情に「それ」に薬を打って、太陽の下で私の語だ置いて、また見ておいて、激しい雨で洗って出せ再び追い出しを数回繰り返した。やがては私最終的には友人とフインソムポッド虫を、彼らが最初いた清潭洞に戻した。
ご飯は私の自宅にしわ入れられたが、クッション、花瓶、皿などに「交換」された。堂々とした「払い戻し」の要求が拒否された後であった。彼は来たところは、清潭洞のコレクトショップが合うのだろうか。それよりも前に、その前に比べてより前に、彼はどこにあったのだろうか。どんな姿だったのか。
私は彼と私の自宅での会話を覚えている。そして密かに大事にするだろう。
他の日の夜をコルタクセウォトたら展示が一日の残りの朝である。柳が選ばれた桁上に鳴り響く造園工事の騒音を迎え、私は、残っているすべての力を尽くして、過去の私の友人に
動きを停止しなければ、初めて他のものを眺めるようにされている矛盾を抱いて、いくら見てみても、真理を教えていない天地万物の前でみすぼらしく愛情を渇望する私それらすべて「自然」とすることにした。十分に「ヒップ」した自然なのかは分からない。しかし、これではかなりもっともらしいだけの「アーバンネイチャー」「アーバンライフ」ではないか
キノコは、観賞用自然ではない。誰かはただいやらしい生物かもしれないキノコ村を作って私は、この叩解を可能にしてくれたベリーチンジュに深い感謝の意を送る。 「謙譲と純粋さ」という愛らしい罠にかかって、自分たちを存分に世に誇ることのないそれらは私の手におだてたい。彼らはこの町ですることになる偉大なことの一部をスタジオコンクリートが皆さんに紹介できるようになって非常に光栄である。
また警告する。そのいくつかの美学と哲学で武装した最新の芸術も自然という完全な芸術の前であえてゴドゥルモク飛び出るないこと。
決して完全でなかった私たち、それぞれ他の理解と、それぞれ他の欲望に、それにも自然の中で、ただ自然に生き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私たち、すべての矛盾との関係で製織された「私たち」という「自然」をついに再び「完全な矛盾」にあらわれる展示
「私たちは「自然」を、「私たちがその中にあること」を一度でも奥深く覗いたことがあったっけ。」
彼らは住んでいる。私たちは住んで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