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徒数が、激減しもうすぐ廃校しかないのかという「危機」からの脱出。
そこには、ウリハッキョを必ず守る、存続させるという強い信念と覚悟が・・・
朝鮮新報に掲載された西東京朝鮮第二学校 校長の手記を紹介します。

수업모습을 지켜보는 리정애교장(왼쪽)
学校を守りぬくこと③http://blogs.yahoo.co.jp/nyomeng60nisitk/33879656.htmlの続き ・・・・・ ■유치반은 학교의 존속, 발전의 초석 우리는 학교를 존속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중급부가 완전히 휴교에 들어가기 전에 유치원을 재건할 결심을 가지고 이악하게 사업하였습니다. 우리가 유치반재건에 주력한것은 학생수가 계속 줄어드는것을 막기 위해서는 유치반을 잘 꾸리고 원아를 받아들이는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대상어린이들의 명단을 다 찾아낸 다음 동포집을 찾아가 설득하였고 그들의 실정과 요구도 료해하였습니다. 일본유치원, 보육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우리 유치반에 받아들이는 사업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습니다. 초급학교로부터는 우리 학교에 보내기때문에 유치반에는 보내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는 아이들이란 제 동무 찾기마련인데 일본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히 그 아이들과 함께 일본학교로 가고싶어하는 법이라고 차근차근 설득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살적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린 시절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한번 생각하자고 거듭 이야기하였습니다. 통학뻐스 마련, 장시간보육의 실시, 유치원실꾸리기 등 해야 할 과제는 태산같았습니다. 그러나 교직원들의 끈질긴 노력과 학구인 총련니시도꾜 마찌다지부와 총련가나가와 쥬호꾸지부 그리고 열성동포의 고마운 협력으로 우리는 끝내 통학뻐스를 마련하고 유치원실을 정비하여 9년만에 유치반을 재건하였습니다. 설날이면 꼬마들이 조선식으로 큰절을 올려 인사하니 할아버지, 할머니, 일가친척들모두가 좋아하였고 우리 말로 이야기하고 우리 노래를 불러드리니 부모님들은 물론 동포들모두가 기뻐해주십니다. ■학구관하총련지부와 일심동체가 되여 우리는 학구관하지부와의 련계를 강화하여 기관적인 힘을 모았고 동포들이 학교사업에 관심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학생수가 감소하던 시기 총련마찌다, 쥬호꾸의 두 지부와 학교와의 련계는 결코 긴밀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부를 탓하기 전에 교원들자신이 총련지부들과 한마음한뜻으로 뭉치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두 지부의 경로모임에 정성껏 만든 선물을 가지고 찾아가 노래도 부르고 공손히 절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동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처음은 불청객이던 우리가 환영을 받게 되고 동포들은 학교를 가까이 여기게 되였습니다. 조직적으로는 두 지부의 전임, 비전임일군을 포함한 《학생인입소위원회》를 내오고 이마를 맞대고 대상에 대한 대책을 구체적으로 세웠습니다. 친척은, 동창생은, 학생시절 스승은 어떤 사람인가는 식으로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고 영향력있는 사람을 알고 사업을 짜고들었습니다. 인입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준 비전임동포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함께 인입사업에 나서 대상동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됨으로써 학교사업에 대한 기관적인 관심이 비상히 높아졌습니다. 그후 경로모임에 참가한 어르신들은 학생들이 너무도 기특하고 고맙다고 고구마밭을 마련하여 무료로 고구마캐기놀이를 마련해주었으며 학교정원의 나무정리에 자주 나오게 되였을뿐만아니라 아들딸들에게 손자손녀를 우리 학교에 보내라고 교양하게 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 과정에 총련지부와 일심동체가 되지 않고서는 학생받아들이기도, 학교운영도 잘할수 없다는것을 교훈으로 틀어잡을수 있었습니다. 통학뻐스문제로 혼자 고민하다가 당시 총련지부위원장에게 털어놓고 의논했을 때 지부위원장은 즉각 《합시다! 내가 운전도 하고 차도 준비하겠습니다.》는 대답으로 호응해주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 총련지부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오늘처럼 학교를 재생시켜내지 못하였을것이라고 돌이켜보면서 지부의 힘, 지부의 노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참으로 총련지부와 학교의 마음이 통하면 반드시 문제해결의 돌파구가 생겨난다는것, 이것은 새 세기 민족교육을 강화발전시키는데서 우리가 틀어쥐고나가야 할 중요한 고리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자가 어려운 일에 앞장서야 한다 40여년간 교원생활을 해온 저는 2003년부터 교장사업을 맡게 되였습니다. 그때는 학생수가 격감되고 운영도 어려워 페교하자는 의견도 많이 나온 시기였습니다. 이렇다 할 공적도 세우지 못했는데 교원으로서의 최고영예인 《인민교원》칭호를 안겨주신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만을 받아온 저였기에 난관앞에서 몸둘바를 모르고 잠못드는 나날이 계속되였습니다. 이러한 자신에게 《하면 된다》는 확신과 용기를 안겨준것은 다름아닌 젊은 교원들이였습니다. 비록 경험은 어려도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고이 키운 장군님에 대한 뜨거운 충성심을 지니고 애족애국의 길에 나선 교원들이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선대에 대한 의리와 후대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아글타글 애쓰는 모습에서 저는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이 교원들이 지닌 티없이 맑은 충실성과 량심을 한데 모은다면 장군님께서 바라시는대로 학교를 지키고 발전시켜나갈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단위책임자인 내가 불퇴전의 각오를 가지고 어려운 일을 맨먼저 맡아나서자는 마음으로 일에 달라붙게 되였습니다. 귀중한 우리 학교와 우리 후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아끼랴 하는 오직 한마음으로 뛰고 또 뛰였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뜻대로 사업하지 못한 문제들도 많았고 오늘도 해결을 보지 못한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어떤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아도 단위책임자의 각오와 우리 일군들의 합심만 있으면 무서울것이 없다는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하게 됩니다. 저는 앞으로도 온갖 가능성을 찾고 실천하여 학교를 중심으로 한 애족애국운동을 더 활발히 벌리며 계속 연구를 깊여 동포들의 지지를 받는 유치반으로, 학교로 꾸려나갈것입니다.(終) (리정애 니시도꾜제2초급 교장) 2009/11/27 13:3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