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점심시간에 교사 3층에서 우연히 밑을 보니 중급부 3학년 녀학생들이 웬 할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교사를 향하고있었다.
교원실에 들어오자마자 할아버지가 말하였다.
60년만에 학교를 찾은 최용덕씨
《죽기 전에 한번 찾아오고싶었소.》
할아버지는 이름을 최용덕이라고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60년전 우리 학교 초창기에 여기서 교편을 잡은 교원이였다.
그는 일본사람의 안해를 맞으면서도 평생 우리 학교를 위해 몸바쳐 사업해왔다. 그래서 82살이 된 오늘 자기가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우리 학교를 자기 눈으로 보고싶다고 몸소 가나가와현 가마꾸라에서 부인과 함께 찾아왔던것이다.
그는 아픈 다리를 끌면서도 아프지 않다며 웃으며 말하였다.
《안해는 일본사람인데 내가 조선사람이란것으로 하여 이제까지 많은 고생을 시켰다.》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이기는 하나 우리 교원들은 그를 따뜻이 맞아주고 함께 점심시간을 보냈다.
학생들은 최용덕씨를 따뜻이 맞이하였다.
차를 들고 한숨 쉬다가 할아버지는 《오늘 오기를 잘했다…》고 하는것이였다.
오직 우리 학교를 보고싶다는 일념이 그를 우리 학교에로 이끌었던것이다.
《우리 학교가 이렇게 훌륭한줄 몰랐네…》
그는 억누르지 못하는 감격에 눈시울을 적시면서 오늘 학교를 찾아와서 정말로 좋았다고 계속 말하였다.
《공부의 방해가 될가봐 올것을 망설였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하게 꾸려진 학교가 있고 마음껏 배우는 아이들이 있으니 정말로 기뻤소.》
그가 흘리는 눈물을 보고있으니 나도 눈물이 났다.
60년전에 그가 그렸던 미래야말로 바로 오늘 목격한 학생들의 씩씩한 모습이였다.
60년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광경이 그리고 60년전에 바라고 바라던 광경이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지고있는것이였다.
그가 말하기에는 학교모습은 자기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교원실을 찾은 후 그는 중급부 교사를 돌아보았다. 마침 음악시간이였던 중급부 3학년 학생들은 할아버지를 위해 교가를 불렀다. 그는 잠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사색에 잠기고있었다.
그후 교장실에서 신길웅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60년전의 교직동명부에 그의 이름이 실려있는것도 확인하였다.
나는 최용덕선생님이 흘린 눈물을 절대 잊지 말고 오늘 우리 학교가 훌륭하게 서있는것처럼 앞으로 60년후에도 훌륭한 우리 학교가 서있도록 학생들을 떳떳한 조선사람으로 키워갈 결심을 가슴깊이 새기였다.
(배영희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교원)
2009/01/27 13:39:00